제동 걸린 ‘고발 사주 의혹’ 수사…스텝 꼬인 공수처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10.2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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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준성 영장 기각…‘키맨’ 신병확보 실패하면서 수사 난항 예상
국민의힘 대선 후보 확정 전까지 尹 개입 여부 규명 어려울 듯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10월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첫 국정감사에 출석해있다. ⓒ 연합뉴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10월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첫 국정감사에 출석해있다. ⓒ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고발 사주' 의혹 수사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 대한 영장 청구가 기각되면서다. 공수처는 조직 출범 이후 피의자에 대한 첫 구속영장 청구로 승부수를 띄웠지만,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핵심 인물에 대한 신병확보 단계에서부터 스텝이 꼬인 공수처는 수사의 최종 종착지였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연루 여부를 밝히는 데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당초 공수처는 손 검사에 대한 신병을 확보한 뒤 추가 수사에 속도를 내려 했지만, 분기점으로 여겨지던 야당 대선 경선 후보 확정일 전까지는 수사의 큰 줄기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늑장 수사' 또는 '부실 수사'라는 정치권의 거센 공세가 예고되는 등 이중고에 직면했다.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10월27일 오전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대기하던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10월27일 오전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대기하던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첫 단추부터 삐끗…핵심 증거 확보 못했나 

27일 법원에 따르면, 이세창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공수처가 손 검사에 대해 청구한 사전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손 검사의 방어권 보장을 고려했을 때, 이 권한의 범위를 넘어 그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또 구속 필요성 뿐 아니라 상당성도 부족하다는 점을 영장 기각 사유로 적시했다. 공수처의 영장 청구가 무리한 판단이었음을 법원이 인정한 셈이다. 

손 검사는 영장 실질 심사에서 공수처의 영장 청구로 '방어권'이 훼손된 점을 적극 항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공수처가 구속영장을 청구하고도 피의자 측에 전달하지 않은 점, 체포영장 기각 직후 구속영장을 청구한 점 등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손 검사 측은 공수처의 구속영장 청구 사실을 법원에 접수된 뒤 이틀이 지난 25일 오후 언론 보도를 통해 파악했으며, 영장청구서도 법원 심리 16시간 전에야 받았다고 한다. 또 방어권 보장을 위해 심문 연기를 요청했지만 이 역시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기관은 통상적으로 방어권 보장을 위해 구속영장 청구 당일 피의자 측에 통보하는데, 공수처가 이를 깨트린 점이 영장 기각의 단초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공수처가 손 검사를 한 차례 소환조사도 하지 않고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한 이례적 상황도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는 손 검사가 수차례 소환조사 일정을 바꾸는 등 회피하고 있어 영장 청구가 불가피 한 상황이었음을 강조했지만, 이 역시 법원의 기각으로 힘을 못받게 됐다.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이 기각되자 이틀 만에 전격 구속영장을 청구한 점도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영장 기각은 공수처의 '부실 수사' 비판에 한층 더 기름을 끼얹을 가능성이 커졌다. 법원은 손 검사에 대한 구속 필요성과 상당성 모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공수처가 제시한 증거 만으로는 손 검사의 범죄 연루가 명확히 소명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법원은 기각 사유에 '수사 진행 경과'를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손 검사 측은 심사에서 공수처가 구속영장에 고발장 최초 작성자를 '성명 불상자'로 적시한 점을 문제 삼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10일 압수수색 영장 집행 당시에도 '성명 불상자'로 기재된 고발장 최초 작성자가 본격 수사를 개시한 지 40여 일이 넘는 동안에도 특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0월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고(故) 김영삼 대통령 묘역 참배를 마친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0월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고(故) 김영삼 대통령 묘역 참배를 마친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尹 개입 규명, 野 대선후보 확정 뒤로 밀릴 듯

공수처 수사의 최종 종착지로 여겨지던 윤 전 총장을 향한 수사도 계획대로 진행되기 어렵게 됐다. 윤 전 총장 관여 여부를 규명하기 위한 첫 단추를 꿰지 못하게 된 공수처가 주요 고비에서 넘어지며 전반적인 수사 전략 수정도 불가피해졌다. 핵심 인물들에 대한 신병 확보와 수사가 지연되면서 의혹 규명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확정되는 내달 5일 이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공수처는 불구속 상태로 손 검사를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손 검사 측에서 내달 2일이나 4일 출석 의사를 표명한 만큼 조만간 일정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고발장이 대검에서 정치권으로 건네진 징검다리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받는 김웅 국민의힘 의원도 이르면 이번주 내 출석해 조사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법원 심리가 있던 26일에도 대검 정보통신과 서버를 추가 압수수색하며 증거보강에 전력투구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손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도 판단할 계획이다. 

여당은 공수처에 '신속 수사'를 주문해왔지만, 현재 상태라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확정되는 내달 5일까지 마무리 수순을 밟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은 공수처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이며 반격에 나섰다. 

윤 전 총장은 공수처를 '공작처'로 지칭하며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을 겨냥한 공수처의 수사에 대해 "야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에게 상처를 입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당선시키겠다는 치졸한 수작"이라고 깎아내렸다. 

이어 "야당 경선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정치적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며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정권의 충견 노릇만 하면 공수처는 더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비판했다. 대장동 사건에 대한 검찰의 부실 수사도 함께 거론하며 "검찰과 공수처가 그야말로 환상의 콤비"라며 "'문재명(문재인+이재명) 정권 2기' 창출을 위한 환상의 정치공작 복식조로, 국민의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법원이 범죄혐의 유무에 대해서는 전혀 시비를 걸지 않았다"며 "(손 검사의) 혐의가 인정된다는 뜻"이라고 상반된 평가를 내놨다. 그는 "(공수처에) 출석을 촉구라하는 취지로 보여진다. 철저히 수사에 협력해 사상 초유의 총선개입 국기문란 사건의 진상을 밝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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