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다양성’으로 페이즈4 열었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9 09:15
  • 호수 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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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위도우》 《샹치》 《이터널스》가 관통한 키워드
디즈니플러스와 함께 본격적인 캐릭터·세계관 확장 예고

오리지널 어벤져스 멤버가 빠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를 누가,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그것을 걱정하는 것은 마블이 지금까지 쌓아온 서사를 부정하는 것과 같을 터다. 무려 13년 동안 탄탄하게 올려온 서사는 MCU의 영역을 무한대로 넓혀가고 있고, 남아있는 히어로들과 새로운 히어로들이 그 넓은 범위를 받쳐내고 있다. 2008년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2010년부터 매년 1편 이상의 영화를 선보여왔던 마블이 멈춰섰던 것은 지난해. 2020년 《블랙 위도우》로 페이즈4의 서막을 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영화 제작사의 계획이 수정되면서 개봉은 미뤄졌다. 작년 12월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었던 《완다비전》도 마찬가지. 2020년은 마블의 공백기가 돼버렸다.

그렇게 미뤄진 작품들이 2021년에 찾아왔다. 이제야 MCU는 새로운 시대, 페이즈4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페이즈1~3까지 ‘인피니티 사가’를 마무리한 이후 시작되는 페이즈4에는 샹치와 이터널스 등 MCU를 이끌 새로운 히어로들이 등장한다. 영화뿐만이 아니다. 영화에 등장했던 캐릭터들과,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다룬 드라마 시리즈도 진행 중이다. 미즈마블, 쉬헐크와 같은 새로운 캐릭터들도 페이즈4에 진입한다. 《블랙 위도우》가 시작점을 찍고, 《샹치》가 문을 열었다면 《이터널스》는 본격적으로 페이즈4의 스토리를 펼쳐냈다.

《블랙 위도우》ⓒ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여성과 아시안계로 그려낸 시작점

《블랙 위도우》는 마블의 계획보다 1년 이상 미뤄진 지난 7월 개봉했다. 강력한 전투 능력과 명민한 전략을 겸비한 마블의 영원한 히어로. 마블 페이즈1~3을 관통하며 활약한 어벤져스 원년 멤버, 블랙 위도우의 솔로 무비다. 초능력 없이도 히어로로 등극한 블랙 위도우는 MCU가 구성하는 슈퍼 히어로의 세계관에 사실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왔다. 영화의 시점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사이. 사실상 시점은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가 아니지만 《엔드게임》 이후 다시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블랙 위도우의 솔로 무비를 통한 귀환, 나타샤에서 옐레나로의 바통 터치는 마블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이벤트로 충분했다.

특히나 《블랙 위도우》에서 강조된 것은 여성 히어로의 정체성이었다. 《아이언맨2》에 등장한 블랙 위도우, 나타샤는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블랙 위도우 역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은 인터뷰를 통해 “《아이언맨2》를 촬영할 때는 정말 즐거웠지만, 블랙 위도우가 마치 물건이나 소유물처럼 그려진 것은 사실”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과거 히어로 영화에서 남성 히어로 곁에 있던 매력적인 여성의 존재, 여성 히어로의 외적인 매력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유머 코드는 수없이 많았다. 스칼렛 요한슨이 “지금은 시대가 변하고 있다. 변화의 흐름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놀랍고도 멋진 일”이라고 강조했던 것처럼, 10년의 시간을 거쳐 솔로 무비에 등장한 블랙 위도우는 ‘여성 히어로’가 아닌 ‘히어로’였다. 실용적인 조끼를 입고 단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블랙 위도우는 화려한 웨이브 머리를 하고 몸매가 강조된 오피스룩을 입었던 과거의 나타샤와 대비된다.

“나타샤가 《아이언맨2》에서 남성의 리액션 역할을 수행하는 캐릭터였다면,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에서는 점차 주체적이고 다른 면모를 드러냈고, 《어벤져스》에서는 나타샤라는 인물이 완벽히 형성된 캐릭터로 등장하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했다.” 《블랙 위도우》의 케이트 쇼트랜드 감독의 설명이다. 그는 흑인 히어로 영화인 《블랙 팬서》와 대표적 여성 히어로 영화 《원더우먼》을 언급하면서 “이 같은 영화들이 있었기에 우리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백인 남성 히어로 외에 다양한 히어로 영화에 대한 요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기 때문”이라고도 강조한 바 있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이 다양성의 가치는 새로운 히어로들의 등장과 연결된다. 마블이 내놓은 첫 아시안 히어로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다. 마블의 오랜 팬이라면 알 수 있듯, MCU의 설계자 케빈 파이기가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영화는 《아이언맨》과 연결고리를 지닌다. 토니 스타크를 납치해 무기 개발을 강요했던 테러리스트 조직이 바로 텐 링즈다. 그동안 할리우드는 다양성이라는 소재를 수용해 아시안 캐릭터를 작품에 녹여왔지만, 그들은 조연이나 주변부 인물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샹치》는 아시안 캐릭터를 본격적으로 주연 자리에 올려놨다는 데 의미가 있는 영화다. 그동안 마블이 보여줬던 고도화된 기술, 슈트, 무기, 초능력을 쓰는 인물이 아닌, 수련을 통해 익힌 동양의 무술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인물을 히어로로 설정했다.

주인공만 아시안계 인물로 설정한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에 동양적 문화를 수용했다. 주작, 해태 등 동양 문화권 상상 속 동물의 모습을 한 생물들이 등장하고, 용이 활약을 펼친다. 서양의 관점에서 해석한 동양의 이미지 대신, 동양 자체의 문화를 녹여낸 작품이다. 스케일이 큰 ‘마블스러운’ 액션이 아닌, 무술을 기반으로 한 역동적인 액션이 영화를 뒷받침했다. 마블의 페이즈4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영화가 아시안계 인물과 동양의 문화를 다룬 작품이라는 것은 마블이 추구하는 다양성의 가치를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샹치 역을 맡은 배우 시무 리우는 “《샹치》는 아시안계가 큰 스크린에서 우리의 영화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고 언급했다.

《이터널스》ⓒ마블스튜디오 공식 페이스북

《이터널스》는 ‘정치적 올바름’의 집약체

그렇다면 《이터널스》는 어떨까. MCU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벤져스를 모이게 하기 위한 빌드업을 했고, 그 역사를 마무리한 것이 《엔드게임》이었다면, 《이터널스》는 마블의 페이즈4를 구성하기 위한 빌드업의 시작인 셈이다. 마블은 이 빌드업을 시도하면서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 정치적 올바름을 집약시켰다. 7000년을 살아온 《이터널스》의 히어로들은 다양성을 응축하고 있다. 여성, 유색인종, 10대 소녀 히어로에는 인종과 성별, 연령대의 다양성을 담아냈다. 리더의 역할을 부여받은 것은 동양계 여성이고, 그 후임 역시 동양계 여성이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한 힘을 보여주는 인물은 동양인 남성이다.

천재성을 가진 위대한 발명가는 흑인 남성으로, 그는 동성인 남편과 함께 아들을 입양해 가족을 꾸렸다. 청각장애가 있어 수화로 의사소통을 하는 히어로도 등장하는데, 실제 청각장애인 배우 로런 리들로프가 연기한다. 이 같은 다양성의 가치에 대해, 에이잭 역을 맡은 배우 셀마 헤이엑은 “많은 사람이 눈에 띈다고 느낄 것이고, 그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터널스의 목적을 위해 정말로 가족을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를 선택한 방식이다. 영화의 목적을 위해 (다양성을) 강요당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다양성에 더해 보여주는 것은 연대라는 가치다. 히어로의 약점을 다른 멤버가 보완해 가는 방식으로 전투신을 보여준다.

《이터널스》에서는 자오 감독 특유의 서정성과 감수성, 인류를 대하는 태도가 짙게 묻어난다. 기존의 마블 시리즈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다양성과 연대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스릴과 전투신, 캐릭터의 매력은 아쉬웠다는 평이 나온다. 해외 영화 전문지들은 “세계관과 비주얼로 찬사를 받았지만 마블 액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은 것 같다” “최근 수년간 나왔던 마블 영화 중 가장 야심 찬 영화지만 《토르: 다크 월드》 이후 가장 약한 영화 중 하나” 등의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분명 액션의 강렬함보다는 새로운 세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기존 히어로들과의 연결고리가 없는 작품이기에, 《어벤져스》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이터널스》는 낯선 영화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의 가치를 담아내면서 MCU를 구성할 새로운 히어로들을 등장시켰다는 사실만은 긍정적으로 비친다. 케빈 파이기는 “《이터널스》는 MCU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 앞으로 펼쳐질 MCU의 방향을 제시할 작품”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없는 마블의 페이즈4는 어떻게 채워질까. 디즈니플러스와 멀티버스를 장착한 마블은 이전보다 더 많은, 새로운 히어로들의 서사를 페이즈4를 통해 펼쳐갈 계획이다.

 

# 마블 히어로들은 페이즈4에 대기 중

현재 많은 마블 히어로가 페이즈4에서 기다린다. 기존 마블의 계획과 달리 또 한 번 영화들의 개봉이 늦춰졌다. 세계관에 따라 유기적으로 이야기가 연결되는 마블 영화의 특성상 한 편의 개봉이 늦춰지면 다른 영화 출시에도 영향을 미친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속편이자, MCU 최초의 호러 무비가 될 《닥터 스트레인지: 인 더 멀티버스 오브 매드니스》는 내년 5월 개봉한다. 케빈 파이기가 “우리가 생각해낸 가장 위대한 타이틀”이라고 자부한 작품으로, 무서운 시퀀스가 포함될 것이라 예고됐다. 토르도 2022년 7월 페이즈4에 합류한다. 2013년 《토르: 다크월드》 이후 MCU에서 볼 수 없었던 나탈리 포트만이 9년 만에 복귀해 《토르: 러브 앤 썬더》로 토르와 재회한다.

2022년 11월 개봉하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기존 캐릭터와 와칸다를 탐구하는 스토리를 펼친다. 블랙 팬서를 연기한 채드윅 보스만에 대한 추모, 관객에 대한 위로가 담길 예정이다. 내년 2월 공개될 《더 마블스》에서는 캡틴 마블을 주축으로 여성 히어로들이 뭉친다. 2021년 말 디즈니플러스에 공개될 드라마 《미즈 마블》과 연결될 전망이다. 미즈 마블은 최초의 무슬림 히어로로, 파키스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10대 소녀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는 2023년 5월, 양자역학으로 멀티버스의 시작을 연 《앤트맨과 와스프》의 후속작 《앤트맨과 와스프: 퀀터매니아》는 2023년 7월 관객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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