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자민당 금권 스캔들, 또 터졌다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25 07:30
  • 호수 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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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파 구니미쓰 의원, 선거 유세장에서 현금 살포한 의혹 불거져
週刊文春 특종 “참석자 1인당 5000엔 제공하고 영수증까지 받아”

지난 10월31일 실시된 일본의 중의원 선거에서 이바라키 6구에 당선된 자민당의 구니미쓰 아야노(42)가 선거운동 당시 선거유세에 참가한 유권자에게 현금을 제공한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구니미쓰 의원은 기시다파(기시다 총리를 회장으로 하는 파벌)에 소속된 의원으로 기시다 총리와 아베 전 총리가 직접 그의 지원유세에 나서 주목을 받았다. 구니미쓰가 유권자에게 현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은 기시다 등의 지원유세와 관련된 안내장과 영수증이 공개되면서 제기됐다.

기시다 일본 총리(왼쪽 세 번째)가 총선을 닷새 앞둔 10월26일(현지시간) 도쿄에서 집권 자민당 후보를 지원하는 가두 유세에 나서고 있다.ⓒEPA연합

일본 정계의 고질적인 ‘정치와 돈의 문제’

주간지 슈칸분순(週刊文春) 1월18일호에 따르면 자민당 지원단체인 ‘이바라키현 운수정책연구회’는 기시다와 아베가 구니미쓰의 선거운동을 지원하는 연설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각각 1인당 5000엔(약 5만5000원)을 주겠다는 안내장을 발송했다. 안내장을 받고 연설 장소에 나간 시민들은 며칠 뒤 현금 5000엔과 함께 영수증을 수령했다. 공개된 영수증에는 ‘구니미쓰 아야노 중의원 의원 가두연설 일당’이라고 기록돼 있었다. 슈칸분순과의 인터뷰에서 한 시민은 “나도 해당 선거구의 유권자인데 이래도(현금을 받아도) 되나 싶었다”는 심정을 밝혔다. 해당 의혹과 관련해 구니미쓰 의원 사무소에서는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현직 총리나 관방장관의 지원에 힘입어 당선된 자민당 의원이 선거운동 당시 현금을 살포했다는 의혹을 받은 사건은 이전 아베 내각과 스가 내각에서도 발생했다. 먼저 지난해 6월, 아베 당시 총리의 측근으로 알려진 가와이 가쓰유키 중의원 의원과 가와이 안리 참의원 의원 부부가 매표 혐의로 체포됐다. 2019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공천을 받아 히로시마 선거구에 입후보한 안리의 선거유세 당시, 아베 총리와 스가 관방장관은 800km나 떨어진 히로시마를 방문해 응원연설을 하는 등 안리 후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의 전폭적 지지를 등에 업고 안리는 당선됐으나 같은 해 10월말, 선거운동 과정에서 가와이 부부가 히로시마현을 포함한 지방자치단체 의원 94명에게 현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선거운동 당시 현직 의원이던 남편 가쓰유키가 직접 현금봉투를 건네면서 아내를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건넸다는 것이다. 당시 가쓰유키는 법무상을 역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직 법무상과 그 아내의 매표 스캔들로 일본 사회가 떠들썩했다. 가와이 부부는 결백을 주장했으나 결국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올해 6월에는 스가 당시 총리의 측근으로 알려진 스가와라 잇슈 전 경제산업상이 지역구(도쿄 9구) 유권자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중의원 의원직을 사임했다. 스가와라는 2006~07년에 지역구 주민에게 멜론·명란젓과 같은 선물을 제공했으나, 이를 줄곧 부인해 왔다. 또한 2019년에는 스가와라의 비서가 지역구 유권자의 빈소가 차려진 장례식장을 찾아가 부의금을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국회의원 자신이 직접 조문하지 않고 비서 등을 통해 부의금만 전달하는 행위를 ‘부당한 기부행위’로 보고 이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간주한다. 스가와라는 부의금 의혹 보도 직후 경제산업상 자리에서 물러났으나, 중의원 의원직은 계속 유지해 왔다. 그러나 올해 6월 일본 검찰이 스가와라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한다는 방침을 밝히자 스가와라는 결국 의원직을 사퇴했다.

현직 총리가 지역구민에게 향응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은 사례도 있다. 아베 전 총리의 ‘벚꽃을 보는 모임’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아베는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고급 호텔에서 벚꽃을 보는 모임의 전야제를 열고 지역구 지지자들을 초청해 약 1만1000엔(약 12만원)의 식사를 제공하면서 참가비로는 5000엔(약 5만5000원)만 받는 수법으로 지역구 지지자에게 불법적으로 향응을 베풀었다는 의혹을 받아 검찰에 고발됐다. 일본 검찰은 아베가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아베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을 내렸으나, 아베의 비서는 100만 엔(약 1100만원)의 벌금을 받았다. 결국 아베는 “회계 처리에 대해 내가 모르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지만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죄했다.

일본에서는 정치인의 매표 의혹이나 뇌물수수 같은 금권 문제를 ‘정치와 돈의 문제(政治とカネの問題)’라고 한다. 1955년 자민당 창당 이후 현재까지 중간의 약 6년을 제외하면 자민당 장기집권 체제가 계속되고 있는 일본 정치의 특성상, 정치와 돈의 문제는 끊임없이 지적돼 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90년대엔 국회에서 부패방지책을 논의하거나 중의원 선거제도를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비례대표제 병립제로 전환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 국민의 70%는 국회의 문제 해결 노력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올해 10월의 기시다 내각 출범 당시에도 금품수수 의혹을 받던 아마리 아키라가 자민당 권력 2인자인 간사장으로 기용돼 논란이 됐다. 기시다의 아마리 기용에 대해 일본 국민의 절반 이상(54%)이 평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스캔들 반복돼도 자민당이 지지받는 이유

역대 자민당 정권이 장기집권의 ‘부의 유산’인 정치와 돈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데도 선거에서 계속 승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자민당 내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극우부터 중도-진보까지 넓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자민당은 장기집권 과정에서 안정적인 과반 의석 확보를 위해 무소속 후보를 당선 후에 자민당에 입당시키는 전략을 취해 왔다. 또한 보수정당임에도 환경 문제나 사회복지 문제 같은 진보적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유연성을 보여왔다. 지난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한 4명의 후보가 동성결혼이나 부부별성 문제, 여성의 왕실 승계 같은 젠더 이슈에 대해 각자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었던 점은 자민당 내에 다양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의원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당내에 복수의 파벌이 존재한다는 점도 자민당의 장기집권에 기여하고 있다. 특정 파벌 출신 정치인에게 정치와 돈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다음 선거에서 다른 파벌 출신 정치인이 총리·관방장관 등 요직을 차지하게 되면 ‘유사 정권교체’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대안의 부재’를 들 수 있다. 2009년 민주당 정권 탄생 이후 오키나와 주일미군기지 이전 문제, 동일본 대지진 등에서 민주당의 정권 운영능력 부족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를 계기로 야당에 대한 실망과 함께 자민-공명 연립 외에 정권 운영능력을 가진 정당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돼 자민당에 대한 지지가 계속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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