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떠난 두 동기…전두환‧노태우의 엇갈린 노년 [전두환 사망]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1.11.2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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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동기로 시작된 두 사람의 비슷한 행보…역사의 평가는 ‘극과 극’, 왜?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향년 90세로 숨을 거뒀다. 지난달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한 지 29일 만이다. 이로써 42년 전 12‧12 군사 쿠데타의 주역 2명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1980년대 대한민국 현대사의 굴곡을 함께했던 두 동기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두 전직 대통령은 군사반란부터 구속 수감, 생을 마감한 시기까지 평생 비슷한 길을 걸어왔으나, 두 사람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왜 달라진 것일까. 두 전 대통령의 일생을 되짚어봤다.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이 1996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연합뉴스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이 1996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연합뉴스

70년 전 육사 동기서 군사반란 동지 되기까지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모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군인 출신 정치인이다. 두 사람은 1951년 입교한 육사 제11기 동기생이다. 이들은 육사 재학 시절 영남 출신 생도들을 중심으로 ‘오성회’란 친목모임을 만들었고, 이 모임이 훗날 군내 최대 사조직인 ‘하나회’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회는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와 이듬해 5‧17 내란을 주도했다. 전 전 대통령은 하나회의 회장이었고, 노 전 대통령은 핵심 일원 중 한 명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1979년 10‧26 피살사건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으로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을 맡다 2달가량 뒤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을 장악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때 육군 제9보병사단장으로서 휘하 부대를 동원해 반란을 지원했다.

이후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신군부 인사들은 1980년 5월17일 정권 장악을 위해 비상계엄 확대조치를 발동했고, 이튿날 광주에서 벌어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다. 그 뒤 전 전 대통령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을 축출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소집해 제11대 대통령직에 올랐으며 12대까지 연임한다.

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정무 제2장관과 체육부·내무부 장관, 1988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2인자 자리에 오른다. 이후 1985년 치러진 제12대 총선에서 집권당(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에 당선된 노 전 대통령은 정치인으로 변모, 전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로 낙점된다. 

1987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대표(왼쪽)가 전두환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하는 모습 ⓒ 연합뉴스
1987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대표(왼쪽)가 전두환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하는 모습 ⓒ 연합뉴스

‘5공 청산’으로 틀어졌지만 구속도 투병도 ‘비슷’

평생을 동지 관계로 지낸 두 사람의 인연은 노 전 대통령 집권 이후 틀어지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국정기조의 하나로 ‘5공 청산’을 내걸면서다. 노 전 대통령 지시로 출범한 5공비리특별수사본부는  장세동 전 안기부장과 차규헌 전 교통부 장관, 김종호 전 건설부 장관 등 5공 인사 47명을 구속시켰다. 민심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전 전 대통령은 1989년 11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강원 인제의 백담사에 칩거하기도 했다.

다만 두 사람은 결국 역사의 죄인으로 동일한 법의 심판을 받았다. 두 전직 대통령은 12‧12 군사반란과 5‧17 내란을 주도한 혐의 등으로 함께 구속 기소돼 1997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같은 해 12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 의해 특별 사면됐다.

두 사람이 노년에 희귀병을 앓았다는 점도 비슷하다. 전 전 대통령은 악성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을 앓아왔고, 노 전 대통령도 장기간 소뇌위축증이라는 희소병을 앓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시기도 노 전 대통령은 10월26일, 전 전 대통령은 11월23일로 불과 29일 차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 ⓒ연합뉴스

5‧18에 끝내 사과 않고 떠난 전두환…“죽음마저도 유죄”

그러나 두 사람의 인생 궤적은 비슷하지만, 두 사람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정반대이다. 결정적 이유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사과 여부이다. 노 전 대통령은 아들을 통해 사과 의사를 밝혔으나, 전 전 대통령은 끝까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23일 전 전 대통령의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5‧18 민주화 운동 무력 진압에 대한 사죄 여부와 관련해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며 언성을 높이는가 하면, 5‧18 발포 명령에 대해서도 “전 전 대통령의 책임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1980년 이후 41년이 지나도록 전 전 대통령 측의 공식 사과는 나오지 않은 셈이다. 5‧18 관련 단체인 오월어머니회는 이날 시사저널과 인터뷰에서 “노태우는 최소한 노력이라도 했으니 전두환보다는 낫다. 전두환이 사람이라면 이렇게 가면 안 된다”며 허탈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전 전 대통령의 사망과 관련해 “죽음마저도 유죄”라는 비판이 나온다. 추모 분위기도 조성되지 않았다. 주요 정치인들과 여야 대선주자 모두 전 전 대통령의 빈소에 조문을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노 전 대통령 사망 당시에는 국민의힘은 물론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역사의 죄인이지만 전두환과는 다르다”며 애도의 뜻을 전달한 바 있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가장으로 치러졌지만, 전 전 대통령의 경우 국가장이 치러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故 노태우 전 대통령 영정 ⓒ연합뉴스
故 노태우 전 대통령 영정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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