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솨이 성폭행 사건, 미-중 갈등 화약고 되나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30 11:00
  • 호수 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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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베이징올림픽 정치적 보이콧 시사
중국은 IOC까지 동원하며 사태 진화에 급급

11월21일(현지시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흥미로운 사진과 함께 새 소식을 올렸다. 최근 실종설·연금설 등이 제기됐던 중국의 여자 테니스 스타인 펑솨이(35)가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영상통화를 했다는 것이다. IOC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영상통화는 약 30분 동안 진행됐고 엠마 테르호 IOC 선수위원장과 리링웨이 중국 IOC 선수위원이 함께했다. 통화에서 펑솨이는 “현재 베이징의 집에서 안전히 잘 지내고 있다”면서 “사생활을 존중받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너무나 사랑하는 테니스는 계속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IOC는 이런 사실을 홈페이지의 뉴스 코너가 아닌 조직 소식을 통해 발표했다. 게다가 바흐 위원장과 펑솨이가 통화하는 사진만 내걸고 통화 동영상은 공개하지 않았다. IOC와 중국 당국이 주관한 이번 ‘이벤트’는 펑솨이의 신변 안전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펼쳐졌다. 11월1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회담 직후 인터뷰를 가졌다. 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 여부를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가 검토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펑솨이(사진)가 장가오리 전 공산당 상무위원으로부 터 당한 성폭행 사건이 국제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REUTERS

너무나 이상했던 펑솨이의 재등장 과정

바이든 대통령이 베이징동계올림픽의 보이콧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인권침해 때문”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 문제는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미국이 대외관계에서 중점을 둔 분야다. 특히 중국·러시아 등과의 관계에서 미국의 입장은 어느 때보다 강경하다. 바이든 대통령의 참모들은 집권 이전부터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을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행위’라며 강력히 비난해 왔다.

그런데 11월2일 펑솨이가 전 부총리이자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던 장가오리(75)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폭로했다. 상무위원은 9500여만 명인 중국공산당원 중 단 7명뿐인 최고지도부다. 장 전 부총리는 2012년 시진핑 국가주석과 함께 상무위원이 되어 이너서클을 이뤄 5년 동안 중국을 호령했다. 비록 2017년 은퇴했지만,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중국 당국은 퇴임한 고위 공직자에게 적어도 2년 이상 현직과 똑같은 대우를 해준다. 실제로 현직에 있을 때처럼 사무실·비서·차량·의전 등이 제공되고 기본급을 그대로 받는다.

따라서 펑솨이의 ‘미투(Me Too)’는 중국 당국에 아주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권력을 이용해 스포츠 스타를 성폭행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중국 당국은 이를 숨기기에 급급했다. 펑솨이가 성폭행 사실을 폭로한 웨이보의 포스트는 20여분 만에 삭제됐다. 그 뒤 펑솨이는 종적을 감추어 연금설까지 떠돌았다. 최근 중국에서는 펑솨이 외에도 사라졌던 유명 인사가 여럿 있다. 마윈·자오웨이 등이 그들이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의 창업주 마윈은 지난해 10월 포럼에서 당국의 금융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 뒤 마윈은 수개월 동안 실종 상태에 처해졌다. 활발하던 SNS 활동도 중단되어 일각에서는 사망설까지 제기했다. 결국 석 달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으나, 중국 당국에 찍힌 마윈과 알리바바는 지금까지 압박을 받고 있다. 마윈과 친했던 《황제의 딸》의 히로인 자오웨이는 지난 8월 출연했던 모든 영화와 드라마에서 기록을 말살당했다. 또한 온라인동영상플랫폼(OTT)에서 상영되는 대다수의 동영상도 삭제됐다. 같은 달 27일 자오웨이는 도피하듯이 전세기를 타고 프랑스로 출국했고, 현재까지 행방을 알 수 없는 채 해외에서 은둔하고 있다.

이들과 달리 펑솨이가 모습을 빨리 드러낸 것은 바이든 대통령이 베이징동계올림픽 보이콧 가능성을 언급한 직후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까지 펑솨이 사건을 거론하며 올림픽 보이콧 가능성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에 맞서 중국이 펑솨이의 신변을 드러내는 과정이 이상했다. 중국 언론인이 나서서 서구 SNS인 트위터를 이용했다. 먼저 11월19일 관영매체인 CGTN의 한 기자는 트위터에 “펑솨이의 친구로부터 받았다”며, 방 안에서 쉬고 있는 펑솨이의 사진 여러 장을 공개했다.

다음 날에는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편집인 후시진이 나섰다. 후시진은 트위터에 “펑솨이가 코치·친구들과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모습”이라며 동영상을 공개했다. 11월21일에는 펑솨이가 베이징에서 열린 유소년테니스대회 결승전 개회식에 참석한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러나 세계여자테니스협회(WTA)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WTA는 펑솨이의 미투 이후 이를 가장 먼저 공론화했던 단체다. WTA 대변인은 “펑솨이의 최근 영상을 보게 돼 다행”이라면서도 “펑솨이의 안전에 대한 우려를 거두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말했다.

WTA의 이런 입장은 중국 내 상황을 살펴보면 이해가 된다. 영상통화가 공개된 이후에도 중국에서는 펑솨이와 관련된 뉴스나 보도가 전혀 없다. 모든 포털사이트와 SNS에서는 펑솨이의 소식이 검색되지 않는다. 미투를 감행했고 팬들과 소통했던 펑솨이의 웨이보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따라서 펑솨이가 IOC와 가진 회견이나 중국 언론인이 대신 전하는 펑솨이 소식이 중국 당국에 의해 대외적으로 기획된 ‘이벤트’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펑솨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공개했던 SNS가 중국에서는 접속이 봉쇄된 트위터라는 점도 그 증거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11월21일 스위스 로잔에서 펑솨이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REUTERS

WTA “펑사이에 대한 안전 우려, 거두기 어려워”

이번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미국과 중국의 역학관계다. 바이든 대통령, 백악관 대변인, 국무부 장관 등 미국 행정부 책임자는 그 누구도 공개 석상에서 펑솨이를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의 가장 큰 약점인 위구르족 탄압 문제를 고리로 인권을 내세워 베이징동계올림픽 보이콧 가능성을 띄웠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영국·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외교장관이 나서 펑솨이의 이름을 꺼내면서 중국을 압박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집권 이후 미국과 서구의 동맹국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앞세워 중국을 압박하는 형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위구르족 문제로 중국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튀르크민족이자 무슬림인 위구르족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이진 않았다. 그저 위구르족을 지렛대로 중국에 압력을 가했을 뿐이다. 그에 반해 바이든 대통령은 이슬람교에 관용적인 리버럴 가톨릭 신자다.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이 위구르족 탄압을 ‘제노사이드’라고 줄곧 비판하는 배경이다. 따라서 펑솨이 사건은 베이징동계올림픽 개최 전까지 중국의 발목을 계속 잡을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래 중국 곳곳에서 인권침해 양상이 더욱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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