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드라마 보니 기존 드라마 못 보겠네”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27 11:00
  • 호수 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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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시대에 지상파 드라마 입지 확 줄어
K콘텐츠 제작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 요구하는 목소리 커져

‘OTT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OTT가 콘텐츠 소비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자리하면서, 이를 경험한 시청자들이 기존 플랫폼 콘텐츠들에 느끼는 체감도 달라졌다. 특히 최근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새로운 요구들은 OTT로부터 생겨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리산은 망했지만, 네파는 네팝니다.’ 최근 삼성전자 임직원몰에 올라온 네파 패딩 판매 포스터에는 다소 충격적인 문구가 등장했다. 여기서 ‘지리산’은 최근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지리산》을 말한다. 이 광고문구는 네파가 《지리산》에 간접광고(PPL)를 했다는 걸 드러내면서 동시에 드라마는 잘 안됐지만 그래도 네파의 품질은 여전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물론 이 포스터는 논란이 커지자 삭제됐다. 하지만 이 광고가 충격적인 건, 이른바 PPL의 영향력과 여기에 대해 느끼는 시청자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인가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PPL은 이제 그 광고가 들어간 콘텐츠의 완성도까지 ‘디스’할 정도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런 PPL에 대한 시청자들의 피로감 또한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지리산》 PPL에 쏟아지는 불만 

드라마 《지리산》은 특히 PPL에서 시청자들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산속 대피소에서 유명 샌드위치를 먹고, 갑자기 레인저들이 피부관리를 위해 콜라겐을 먹는다. 게다가 등산복 제작을 지원한 네파는 거의 도배 수준이다. 그래서 산행 장면들은 주연배우들이 마치 의상 광고를 하는 듯한 느낌을 시청자들에게 줬다. 네파 역시 충격적인 문구까지 걸어 판매할 정도로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였다. 그럴수록 시청자들은 더 피로감을 느끼게 됐다. 

물론 과한 PPL에 대해 시청자들의 불만이 쏟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더 킹: 영원의 군주》 같은 작품에서도 너무 과도한 PPL로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김치부터 뷰티 마스크, 치킨, 배달 앱 등등 엄청나게 많은 PPL로 항간에는 홈쇼핑을 보는 것 같다는 비아냥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리산》에 쏟아진 불만들을 보면, 눈에 띄는 것이 《오징어 게임》과의 비교다. 만일 《오징어 게임》을 넷플릭스가 아닌 기존 플랫폼들에서 제작비를 지원받아 만들었다면 PPL로 도배됐을 거라는 추측이 나왔다. “한국이 투자해 《오징어 게임》을 만들었으면 공유는 딱지치기 전에 카X 커피 권하고, 게임 참가자들 배급식사는 서XXX 샌드위치 주고, VIP는 바XXXX 안마의자에 누워서 게임 지켜봤을걸?” 국내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와 화제가 된 이 글은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뼈아픈 국내 제작 방식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넷플릭스

소재·표현 수위·분량도 문제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OTT 드라마인 《오징어 게임》과의 비교다. 알다시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들은 광고나 PPL이 존재하지 않는다. 구독료로 운영되는 것이고, 따라서 구독자들이 지불한 구독료에는 일종의 ‘광고나 PPL 안 볼 권리’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광고를 안 보는 데 돈을 낸다는 사실은 우리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공짜가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게 해준다. 광고를 보는 것이 그 비용인 셈이다. 유튜브가 프리미엄으로 돈을 내면 광고 없는 영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를 내놨고, 적지 않은 사람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현실.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콘텐츠에 달라붙어 있는 광고나 PPL을 이제는 달리 보게 만든다. OTT 콘텐츠들이 만들어낸 소비자들의 변화다. 

물론 《지리산》은 중화권 OTT인 아이치이에 방영권을 팔았다. 즉 tvN에서 방영되지만 아이치이 OTT에서도 서비스되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리지널이 아니고 방영권만 여러 곳에 파는 《지리산》 같은 작품의 경우 기존 드라마 제작 방식을 그대로 활용한다. 그래서 사실상 아이치이와 tvN으로부터 제작비를 상당히 회수(이미 방영 전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했음에도 PPL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렇게 기존 방식으로 제작돼 PPL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작품들이 티빙이나 웨이브 같은 토종 OTT에서도 서비스된다는 사실이다. 넷플릭스 같은 OTT가 구독료를 받음으로써 광고와 PPL로부터 시청자들을 해방시켜주고 있는 반면, 토종 OTT에 올라가는 드라마들은 여전히 PPL이 붙어있기 마련이다. 구독자들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똑같이 구독료를 내는데 어째서 여기서는 PPL을 여전히 감수해야 하느냐는 불만이다. 물론 이건 넷플릭스에서도 오리지널이 아닌 방영권을 사서 틀어주는 작품에 똑같이 해당되는 불만사항이다. 하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통해 PPL 없는 작품들을 이미 경험한 시청자들은, 이제 PPL이 들어간 작품에 대해 불편함을 더욱 느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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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지옥》의 한 장면ⓒ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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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D.P.》의 한 장면ⓒ넷플릭스

OTT 드라마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경험들과 이로써 생겨난 시청자들의 변화는 단지 PPL에만 해당되는 사안이 아니다. 소재나 표현 수위에 대해서도 변화를 요구하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생겨나고 있다. 즉 넷플릭스가 방영한 《킹덤》 《인간수업》 《스위트홈》 《D.P.》 《오징어 게임》 《지옥》 같은 모든 오리지널 시리즈를 보면 그것이 지금껏 기성 플랫폼에서는 소재 자체가 허락되지 않았던 콘텐츠들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폭력 수위가 높거나 청소년 성매매, 군대 내 폭력 같은 뜨거운 이슈를 다루거나 때론 만들어보지도 않고 성공 가능성이 없다는 선입견과 편견에 의해 제작 자체가 되지 않은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성공은 거꾸로 기성 플랫폼 콘텐츠들이 얼마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가를 드러내는 면이 있다. 이미 이런 소재와 높은 표현 수위를 가진 작품들을 경험한 시청자들로서는 기존 드라마들이 밋밋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표현 수위의 자유로움은 작품의 신선함이나 완성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상상력을 좀 더 펼칠 수 있는 데서 새로움이 탄생하고, 좀 더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는 데서 완성도 또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소재나 표현 수위보다 더 심각한 건 기존 드라마들의 고정화된 방송 분량의 문제다. 지상파와 케이블의 드라마들은 통상적으로 과거 미니시리즈를 16부작으로 상정하고 있고, 회당 분량도 60분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물론 회당 분량은 케이블 드라마들의 등장과 함께 변화했다. 과거 지상파 기준에서는 방송3사가 경쟁하면서 일종의 구두합의에 의해 60분 전후로 분량을 정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방송 분량은 광고 수와도 직결돼 있기 때문에 이러한 합의 방식이 암묵적인 관행처럼 여겨져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3사 구도에서 벗어나 있는 케이블 드라마들은 회당 방송 분량을 60분에서 90분까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제작자들 입장에서는 케이블 드라마가 갖는 이러한 분량의 자유로움에 훨씬 호감을 표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상파나 케이블 모두 그 방송 분량은 (심지어 자유도가 주어진다 해도) 줄이기보다는 늘리는 쪽으로 변화한 게 사실이다. 이것은 다분히 더 많은 광고를 넣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넷플릭스 같은 광고 없는 플랫폼들은 방송 분량과 회차를 늘리기보다는 줄이는 정반대 흐름을 보인다. 16부작 정도의 스케일도 아닌데 괜히 횟수를 늘리는 일이 없었고, 회당 방송 분량도 60분 아래로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실제로 《킹덤》의 경우 시즌1이 6부작으로 마무리됐고, 시즌2가 다시 6부작으로 방영됐다. 방송 분량도 회마다 달라 어떤 경우에는 1시간 가까운 분량을 채우지만 어떤 경우에는 40분 남짓한 분량으로 채워지기도 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상업적인 목적을 위한 무의미한 늘리기가 없다는 것이고, 그만큼 드라마들이 압축돼 있다는 뜻이다. 시청자들은 그래서 훨씬 깊은 몰입감과 속도감을 느끼게 된다. 한꺼번에 몰아보기 방식으로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이러한 압축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킹덤》의 한 장면ⓒ넷플릭스

시청자들의 인식 변화 따라 잡으려는 노력 필요 

이와 같은 OTT 드라마를 경험하고 나면, 기존 16부작이라는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춰져 있는 듯한 방송사의 드라마들이 너무 지지부진해 보이는 느낌을 갖기 마련이다. 특히 스릴러 같은 장르의 경우, 하나의 일관된 사건으로 16부를 결코 채우기 어려워 여러 곁가지 사건들이 채워지는 것을 과거에는 감내해야 했지만 OTT 드라마의 군더더기 없는 전개를 경험한 시청자들은 이제 이를 감내하기 어려워진다. 너무 느리거나 변죽만 울리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토종 OTT에서도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같은 작품은 기존 플랫폼 드라마들이 직설적으로 건드리지 못했던 정치 풍자를 좀 더 과감하게 다루고 있다. 방송 횟수도 12회고 분량도 회당 30분에서 40분 내외로 줄어들었다. 광고와 상관없으니 가능해진 선택이다. 티빙 오리지널 《술꾼도시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총 12부작인 이 드라마는 기존 플랫폼에서는 할 수 없었던 술을 소재로 내세웠고 표현 수위도 욕이나 베드신이 등장할 정도로 과감해졌다. 방송 분량도 회당 30분에서 40분 안팎으로 짧아졌다.

물론 이건 OTT 오리지널 드라마가 그 플랫폼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내놓으면서 생겨난 변화다. 하지만 현재 상당수 시청자가 OTT로 드라마를 시청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플랫폼에 최적화된 콘텐츠와 기존 플랫폼 시스템에 맞춰진 콘텐츠의 차이는 좀 더 극명하게 체감되고 비교될 수밖에 없다.

이미 OTT 시대에 접어든 마당에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 같은 기성 플랫폼들 역시 이러한 시청자들의 변화를 좀 더 예민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지금은 K드라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네 드라마들이 글로벌하게 주목받는 상황이다. 더 완성도 높고 신박한 드라마들의 탄생을 위해 과거의 방식들에서 과감히 탈피하려는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필요하다면 투자 방식 같은 근본적인 제작 시스템의 변화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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