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586 운동권 출신 기업인, 어쩌다 자본주의 화신이 됐나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1.12.09 10:00
  • 호수 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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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범 SG그룹 회장 노조 탄압·부당 지원·사택 거주 의혹 추적 

한때 자본주의에 맞서 노동자와 민중 해방을 외쳤던 586 운동권 청년이 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이 청년은 자본권력의 정점에 있는 기업인이 됐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깨끗이 지운 것 같았다. 노동자를 위해 싸웠던 그가 지금은 그 누구보다 주도적으로 노동자를 탄압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의 경영 방식은 그동안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여느 재벌 총수와 다르지 않았다. 바로 이의범 SG그룹 회장 이야기다.

‘노동조합 만들었더니 부당해고! 부당전직! 인권탄압! 부당노동행위 자행하는 이의범 회장님! 우리는 SG그룹 직원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매타버스(매주 타는 버스) 일정에 맞춰 골프클럽 아름다운CC(SG그룹 계열사) 노동자들은 11월21일 충남 보령시 한국중부발전 본사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였다. 아름다운CC 노동자들은 SG그룹이 조직적으로 노조 탄압을 일삼고 있다고 이 후보에게 호소했다. 이날 이 후보는 직접 노조 측 입장을 청취한 뒤에 “해당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아름다운CC 노동자들은 사측의 노조 탄압과 비정규직 강제 전환에 맞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사측은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용역회사를 설립해 시설관리, 청소 노동자 등을 외주업체 직원으로 강제 전환했다. 이에 반발한 직원들은 지난 5월 노조를 설립해 자회사 강제 전환 중단과 단체교섭 등을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사측은 제대로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

ⓒ시사저널 박은숙
경기도 성남시 판교 소재 SG타워와 이의범 SG그룹 회장ⓒ시사저널 박은숙

운동권 출신 이의범 회장, 노조 탄압했나

이후 아름다운CC의 행태는 ‘노조 파괴’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강제 전환을 거부한 직원들에 대해 징계와 회유·협박 등을 일삼았다. 아울러 노조 설립을 주도한 차영민 세종충남지역 민주노총 아름다운CC 지회장을 징계해 해고까지 했다. 차 지회장과 직원들은 ‘부당 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하며 맞받아쳤다. 지난 8월18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아름다운CC의 부당해고 행위를 인정하며 차 지회장의 복직을 명령했다.

하지만 사측의 노동자 탄압 정황은 계속됐다. 복직 명령을 받은 차 지회장을 원래 근무했던 아름다운CC(충남 아산시)가 아닌 왕복 3시간 거리에 있는 SG그룹 본사(경기도 성남시)로 강제 인사발령을 냈다. 골프장 코스 영상을 관리했던 차 지회장에게 고유 업무를 배제한 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업무들을 떠넘겼다. 차 지회장 자리에 CCTV까지 설치해 실시간으로 그를 감시했다. 이는 사측이 회사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노조 지회장의 근로 의욕을 꺾어 자진 퇴사를 유도해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오늘날 기업의 노동자 탄압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아름다운CC의 노사 분규가 더욱 주목받고 있는 건 한때 노동자를 위해 싸웠던 586 운동권 출신인 이의범 SG그룹 회장이 노조 탄압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차 지회장은 “이 회장은 평소 자신이 ‘운동권 출신’이라는 이력을 자랑하고 다녔다”며 “하지만 이제는 그 누구보다 악랄하게 노동자를 괴롭히고 탄압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실 이 회장과 SG그룹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스크린 골프업계 3위인 SG골프와 5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세계물산·충남방적(현 SG글로벌)을 계열사로 둔 중견기업집단(상장사 3개, 비상장사 29개)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이 회장은 과거 학생운동을 하다가 무기정학까지 당할 정도로 열혈 운동권 출신 기업인으로 유명하다(하단 기사 참조). 하지만 이 회장의 현재 경영 행보를 보면 그가 운동권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찾아보기 힘들다. 노조 탄압 의혹을 비롯해 경영 과정에서 각종 탈법과 불법 의혹 등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실 계열사에 350억원 자금대여, 왜?

먼저 이 회장은 사실상 껍데기밖에 없는 자회사에 수백억원의 자금을 초저리에 빌려주면서 계열사 부당 지원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의혹의 중심에 선 기업은 SG그룹 계열사인 서울인이다. 지난 1월19일 SG세계물산은 사업 다양성 및 역량 제고 목적 등으로 서울인을 6억6100만원(지분 100%)에 인수하면서 계열사로 편입했다. 서울인은 2019년 5월 금융컨설팅업과 골프장 투자유치 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SG세계물산은 세 차례에 걸쳐 총 350억원의 회삿돈을 서울인에 대여해 줬다. SG세계물산 재무제표에 따르면, 먼저 1월19일 60억원을 대여해 준다. SG세계물산은 1월21일, 26일에도 각각 160억원과 130억원을 서울인에 자회사 운영 및 투자자금 등 명목으로 금전대여를 결정했다. 담보내역은 나타나지 않았다.

문제는 SG세계물산이 서울인에 자금을 대여할 때 지나치게 낮은 이율을 적용한 것이다. 1차 자금대여 이율은 확인되지 않지만, 2·3차 자금대여 당시 모두 1.44% 이율을 적용했다. 이는 개별 정상금리로 인정받고 있는 당좌대출이자율(4.6%)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법인자금을 대여할 때 1%대 이자율을 적용하는 건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SG세계물산의 저리 대출은 계열사 부당 지원 행위에 속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특수관계인 또는 계열사와 가지급금·대여금·인력·부동산·유가증권 등을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를 불공정 거래라고 명시하고 있다. 한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는 “이렇게 낮은 이율로 자금을 대여해 주는 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다”며 “부당하게 특정 회사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공정위는 현격히 낮은 저리 대출을 규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G세계물산이 사실상 껍데기밖에 없는 서울인에 거액의 자금대여를 결정한 배경도 석연치 않다. 현재 서울인은 이렇다 할 영업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서울인은 설립 당시인 2019년(8억원)과 2020년(2억원) 매출액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올해 매출액은 0원이다. 분기순손실은 8억668만원을 기록하면서 사실상 돈만 까먹고 있다.

서울인 자금 지원 배경에는 이 회장이 자리하고 있다. SG그룹 안팎에서는 이아무개 서울인 대표가 이 회장의 최측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두 사람은 대전고 선후배 사이다. 이 대표는 2009~19년 SG세계물산 사외이사로 재직했으며, 사임 만료 이후 그는 2019년 서울인을 설립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두 사람은 특수관계인으로도 엮여 있다. SG세계물산은 서울인을 인수한 이후 공시를 통해 “상기거래 상대방(이 대표)은 현재 대주주에 속하지 않지만, 최근 3년간 대주주(특수관계인으로 2019년 3월 사외이사 임기 만료됨)에 속해 있던 자”라고 명시하면서 이 대표가 SG세계물산의 이해관계자라고 밝혔다. 여기서 대주주는 이 회장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름다운CC 제공
아름다운CC 노동자들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일정에 맞춰 11월21일 한국중부발전 본사 앞에서 피 켓시위를 벌였다. 이 후보가 이날 노조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청취하고 있다.ⓒ아름다운cc 노조 제공

상장사 소유 사택에 10년 가까이 거주

더군다나 SG세계물산은 지난 3년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85억원을 기록하면서 수익률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SG세계물산은 자기자본(2048억원)의 17%에 달하는 금액인 350억원을 초저리에 매출이 0원인 사실상 껍데기 계열사에 대여해준 것이다.

한 회계 전문가는 “사업다각화를 위해서라면 SG세계물산이 목적 사업을 추가하거나, 법인을 새로 만들 수도 있었다”며 “그런데 왜 굳이 이런 부실한 회사를 수억원이나 주고 샀으며, 유상증자가 아닌 자금대여로 350억원을 저리에 빌려줬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을 둘러싼 경영 난맥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가 상장 계열사 소유 사택에 10년 가까이 거주한 사실을 두고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법인 소유 주택을 이 회장이 사적 용도로 사용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SG그룹 상장 계열사인 충남방적은 2009년 2월27일 성남시 분당에 있는 아파트 로얄펠리스(0동 1XXX호)를 18억원에 매입했다. 해당 아파트는 전용면적 224㎡(약 73평)로 분당에서 고급 아파트로 유명하다. 이후 이 회장은 충남방적이 매입한 로얄펠리스 아파트에 입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SG그룹 계열사들의 법인등기를 종합하면, 이 회장은 2009년 4월20일 로얄펠리스(0동 1XXX호)로 주소를 변경했다. 이 회장은 전세 혹은 월세 형태로 충남방적이 소유한 아파트에 거주했을 것으로 보인다.

9년 뒤 이 회장은 충남방적이 소유한 로얄펠리스를 9년 전 가격으로 되샀다. 그는 2018년 12월 11일 충남방적으로부터 18억920만원에 로얄펠리스를 매입했다. 2009년 18억원에 매입한 아파트를 충남방적은 사실상 아무런 시세 차익도 남기지 못하고 넘겼다. 반면, 현재 이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로얄펠리스의 실거래가는 20억~25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이 사실상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법인 주택은 통상 업무 용도나 임직원 복지 목적으로 사용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오너가 법인 사택에 거주하게 되면 각종 세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 배임죄까지 성립될 수 있다. 한 세무 전문가는 “법인 오너가 유상 임대를 했더라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특수관계인과의 거래로서 세금을 부당하게 적게 내려고 한 부당행위계산부인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SG그룹 측 “적법한 절차에 맞게 진행” 

애초에 이 회장이 각종 세금 문제 때문에 충남방적을 통해 법인 주택을 구매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수많은 기업인이 법인 주택을 부동산 규제와 각종 세금 회피의 통로로 활용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남 분당구청 세무과는 세 차례(2006~2014년)에 걸쳐 이 회장이 과거 소유했던 아파트에 가압류를 걸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런 의혹들에 대해 SG그룹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먼저 노조 탄압 의혹에 대해 SG그룹 관계자는 “노조 지회장이 다른 회사 감사로 등재된 게 확인돼 겸직 금지 위반으로 징계를 한 것일 뿐”이라며 “노조가 아름다운CC 앞에서 시위를 격하게 해서 골프장도 피해가 막심하다. 현재 노조 측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며, 원만하게 해결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계열사 부당 지원 의혹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SG그룹 관계자는 “현재 SG세계물산이 서울인을 통해 골프장 인수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자금대여가 이루어졌다”며 “궁극적으로 두 회사는 합병할 계획이다. 회계적으로 문제 없이 처리했다”고 해명했다. 

충남방적 사택에 거주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SG그룹 관계자는 “당시 이 회장이 해당 회사 사택에 거주한 건 맞지만, 사업상 귀빈들을 대접하는 장소로도 쓰였다”며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 회장이 사택을 매입했다”고 설명했다.   

이의범 SG그룹 회장은 누구인가

이의범 SG그룹 회장을 중심으로 최근 노조 탄압과 경영상 각종 난맥상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 그가 강성 586 운동권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목이 더욱 집중된다.

1982년 서울대 계산통계학과에 입학한 이 회장은 독재정권 타도와 노동자 해방을 위해 띠를 두르고 시위현장에 나섰다. 밤에는 구로공단에서 노동자를 대상으로 야학 교사를 했고, 방학 때면 위장취업을 했다. 이 과정에서 옥살이도 여러 차례 했다. 결국 이 회장은 대학 입학 2년 만에 무기정학을 당했다.

이 회장은 졸업 후 한국통신(KT)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했으며, 1991년 생활정보지 가로수를 창업해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당시 생활정보지가 지방에만 있고 서울에는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 정보지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IMF 외환위기가 닥쳐 어려움을 겪었으나, 온라인화로 위기를 극복하며 2000년 가로수닷컴(현 SG&G)을 코스닥 시장에 상장시켰다.

가로수닷컴 상장은 SG그룹의 모태가 됐다. 이 회장은 가로수닷컴을 통해 GM대우의 시트를 생산하는 KM&I와 고려피혁(2003년), 세계물산(2005년), 충남방적(2007년) 등을 인수·합병(M&A)해 사세를 확장했다. 현재 SG그룹은 상장사 3개와 비상장사 29개를 보유한 중견기업집단이다. SG그룹의 전체 매출 규모는 1조20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 회장은 2001년 오마이뉴스에 7억원을 투자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현재도 그는 계열사를 통해 오마이뉴스 지분 13.65%(4만7122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장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 1964년생 동갑내기로 같은 운동권 출신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외에 서울대 운동권 출신이라는 이력 때문에 이 회장의 상장사들은 종종 정치인 테마주로 분류되기도 했다. 과거 SG그룹 상장사들은 유시민·안희정·이재명 테마주 등으로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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