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불법으로 얼룩진 제약 재벌의 민낯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1.12.15 10:00
  • 호수 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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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이트·비자금·주가조작 등으로 ‘융단폭격’
제약사 2·3세 오너 경영, 시험대에 올라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로 급격한 성장세를 타고 있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최근 오너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각종 불법과 탈법이 감지되면서 제약사들이 외형 성장에만 치중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3세 경영인 체제로 넘어가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코로나19 경구 치료제 ‘피라맥스’를 개발하고 있는 제약사 신풍제약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현재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신풍제약이 2000년대 중반부터 10년간 의약품 원재료 납품업체와 허위로 거래한 뒤 원재료 단가를 부풀려 25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 최준필
최근 오너 리스크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신풍제약· 대웅제약·일동제약의 사옥 모습ⓒ시사저널 최준필

코로나19로 승승장구하는 제약사들의 이면

여기에 오너 일가가 해당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사건이 확대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신풍제약 고위 임원이 사채시장을 통해 자금을 세탁한 후 창업주인 고(故) 장용택 회장 일가에 전달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현재 신풍제약은 장 회장의 아들인 장원준 전 대표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장 전 대표도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한 경찰 수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개인의 일탈로 치부했던 제약업계의 관행이 사실상 오너 자금까지 연결된다는 의혹이 짙어지면서 수사의 칼날이 점차 윗선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신풍제약 오너 2세인 장 전 대표는 그동안 각종 불법 의혹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장 전 대표는 지난 2011년 5월18일 불법 리베이트와 분식회계 파문으로 대표이사를 사임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바 있다. 당시 증권선물위원회는 매출채권을 과대 계상하는 등 회계처리기준 위반 혐의로 검찰 고발 조치와 함께 대표이사 사임을 권고했다. 장 전 대표는 지난 2015년 부동산 임대업을 영위하는 송암사를 설립하고 신풍제약 주식을 대량 확보해 회사의 최대주주 역할을 해왔다.

신풍제약은 지난해 대표적인 ‘코로나19 테마주’로 꼽히며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국산 16호 신약인 말라리아 치료제 피라맥스를 약물재창출 방식을 통해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하면서 주식시장에서 크게 각광받았다. 2019년 6000원대 였던 주가는 지난해 20만원대로 치솟았다. 아울러 코로나19 팬데믹 1년 만에 시가총액 10조원, 유가증권시장 30위권 기업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올해 신풍제약은 피라맥스 임상 2상 실패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12월8일 종가 기준으로 신풍제약 주가는 3만4050원이다.

대웅제약 역시 오너 일가의 일탈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윤영환 대웅제약 명예회장의 막내딸인 윤영 전 대웅제약 부사장의 이른바 ‘결혼식장 난동 사건’이 대표적이다(시사저널 1655호 ‘인륜대사에 몰려와 축의금 쓸어가는 게 말이 되나’ 기사 참조). 서울강남경찰서는 최근 윤 전 부사장을 공동공갈 및 공동강요,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윤영 전 대웅제약 부사장에게 갑질 피해를 당한 채무자 A씨가 6월25일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시사저널 최준필

오너 일가, 비자금·주가조작·갑질로 구설

윤 전 부사장은 지난해 2월 서울 송파구 한 호텔에서 열린 초등학교 동창이자 채무자 A씨의 딸 결혼식장에 찾아가 변제 명목으로 축의금을 가져간 혐의를 받는다. 경찰 조사에서 윤 전 부사장은 사전에 축의금 중 일부를 받기로 약속하고 찾아간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A씨는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측은 돈을 주지 않으면 윤씨가 결혼식장에서 난동을 피울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주장했지만,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실제 난동 상황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CCTV에는 A씨가 축의금 상자에서 봉투 일부를 꺼내 윤 전 부사장에게 건네는 모습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부사장과 결혼식장에 동행했다가 A씨로부터 고소당한 일행 8명 중 6명은 혐의가 인정돼 윤 전 부사장과 함께 검찰에 송치됐다. 나머지 2명은 불기소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으로 오빠이자 윤 명예회장의 장남인 윤재승 전 대웅제약 회장의 과거 갑질 논란도 함께 회자되면서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윤 전 회장은 지난 2018년 직원들에게 심각한 수준의 폭언과 욕설을 하는 내용이 녹취로 공개돼 비판을 받았다. 이 일로 대웅제약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일동제약의 경우 오너 일가가 주가조작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과거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윤웅섭 일동제약 부회장의 경영권 확보를 목적으로 인위적인 시세조종을 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윤 부회장은 일동제약 창업주인 고 윤용구 회장의 손자이자 윤원영 일동홀딩스 회장의 장남으로 오너 3세다.

지난 3월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는 일동홀딩스와 일동제약 본사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이사회 및 주주총회 보고서 등이 담긴 문건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웅섭 일동제약 대표와 임원들의 휴대폰, 이동저장매체 등도 압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일동제약은 지주사 전환을 위한 기업 분할을 단행했다. 투자사업 부문은 지주회사인 일동홀딩스가, 의약품 사업은 일동제약이 맡는 구조였다. 이후 일동제약그룹은 지주회사 조건(상장 자회사 지분율 20% 이상)을 충족하기 위해 일동제약 주식을 일동홀딩스 주식으로 교환하는 공개 매수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윤 부회장 등 일동제약 오너 일가가 개인투자자의 적극적인 공개 매수 참여를 막기 위해서 시세조종을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일동홀딩스 지분을 사들이면, 그만큼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낮아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일동제약 측은 “윤웅섭 부회장의 경우 검찰 조사 과정에서 혐의 없음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2·3세 승계 과정에서 악재 터져 ‘곤욕’

‘아로나민 시리즈’ 등 피로회복제와 종합비타민제 시장 강자인 일동제약은 현재 지주회사인 일동홀딩스가 지배하는 구조다. 일동홀딩스의 최대주주인 씨엠제이씨는 윤 부회장과 윤원영 회장이 각각 90%, 10%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검찰 수사로 3세 경영을 본격화하고 있는 윤 부회장의 리더십이 타격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약사들이 잇따라 각종 불법 의혹으로 구설에 오르자 업계는 긴장하는 분위기다. 특히 이들 기업은 오너 2·3세에 대한 승계 작업의 기틀을 닦고 있는 와중에 오너와 관련된 악재가 터지면서 더욱 당혹스러운 모습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 오너 경영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현재 많은 제약사에서 오너 2·3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섰지만, 실적이 형편없다”며 “이런 와중에 오너 리스크까지 터지면서 제약사들이 난감한 상황이다. 경영 승계 과정에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끊이지 않는 제약업계 ‘불법 리베이트’ 관행
공정위·국세청·복지부의 ‘철퇴’도 잇따라 

최근 제약사들의 잇따른 ‘리베이트’ 의혹에 대해 정부나 사정기관의 제재가 이어지고 있다. 제약업계의 자정 노력에도 통행세와 리베이트 등 불법영업이 여전히 끊이지 않는 모습이다. 제약업계에서 사용되는 리베이트는 의료인에게 부당한 경제적 혜택을 주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와 건강보험 재정에 돌아가 사회적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공정위는 최근 서울 중구 한국화이자제약 본사와 서울 서초구 제일약품 본사를 찾아 현장조사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와 두 제약사 모두 구체적인 조사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리베이트와 관련한 조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국세청도 제약사의 불법영업에 대해 칼을 빼들었다. 국세청에 따르면 A약품도매업체는 거래처 병원장에게 리베이트를 몰래 제공할 목적으로 병원장 자녀 명의로 법인을 설립했다. 이후 약품 거래에 끼워넣어 자녀 명의 법인에 ‘통행세’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A사가 병원장 자녀 명의 법인에 약품을 저가에 공급하면, 해당 병원에 고율 마진으로 약품을 납품하면서 수익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은 이를 변칙적 리베이트 제공 방식으로 보고 엄정하게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달부터 의약품 리베이트에 대한 과징금 제도를 시행한다. 약사법에 따라 제약사의 리베이트 제공 행위가 적발된 약제에 대해서는 요양급여 상한 금액이 최대 20% 감액된다. 5년 내 재적발 시에는 최대 40% 감액, 다시 5년 내 재적발될 경우 요양급여 적용이 정지되는 이른바 ‘삼진아웃제’가 시행되고 있다. 대체 의약품이 없는 경우 복용 중이던 환자가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이유로 요양급여 적용 정지 대신 연간 요양급여비용 총액의 최대 6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된다. 복지부는 5년 내 재적발 시에는 최대 350%까지 부과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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