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은 친DJ 인재영입, 김병준은 친노 메가 정책
대통령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콘셉트’가 있어야 한다. 콘셉트는 대선 승리로 가는 길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주창하는 이른바 ‘세대 포위론’(60대 이상 전통 지지층과 2030세대를 결합하는 선거전략)이 바로 콘셉트다. ‘선대위’라고 줄여 부르는 선거대책위원회는 후보의 일정과 메시지, 인사 등을 통해 이 콘셉트를 대선 기간 내내 국민에게 전달하는 플랫폼이다. 선거 콘셉트는 구도와 인물, 이슈라는 선거의 3대 요소를 감안해 당과 후보, 진영의 모든 역량이 동원돼 숙의에 숙의를 거쳐 전략적으로 정해진다.
김종인-김병준-김한길로 尹 약점 보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12월6일 선대위 발족식에서 남은 대선 90여 일을 어떻게 보내겠다는 ‘대선 콘셉트’를 밝혔다. 핵심 열쇳말은 ‘반문(反문재인) 빅텐트’다. 구체적인 메시지는 세 문장으로 요약 가능하다.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사라질 수 있다”(정권교체 필요성 역설) → “백 가지 중 아흔아홉 가지가 달라도 정권교체의 뜻 하나만 같다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반문 빅텐트) → “중도와 합리적 진보로 지지 기반을 확장해 이들을 대선 승리의 핵심 주역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반문 빅텐트의 방향성 제시). 한마디로 정권교체라는 대의 아래 반문의 보수·중도 대연합을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문제는 구체성이다. 그동안 윤 후보의 ‘반문’은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이를 뒤집겠다는 추상적인 말에 그쳤다. 국민 대다수는 아직도 ‘윤석열의 대표 공약’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실제 윤 후보는 여태껏 정제된 대표 공약 하나 내놓지 않았다. 현재 윤 후보 지지율은 정권교체 여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정권교체에 동의하는 유권자라도 정권 심판론만 내세우는 윤 후보에게 만족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대선은 회고적 성격뿐만 아니라 미래 지향성도 함께 담고 있다.
윤 후보는 여기에 대한 답도 냈다. 정책 역량의 상대적 열세를 감안해 ‘후보 경쟁력’ 대신 높은 정권교체 여론이란 ‘구도’를 앞세우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그러려면 남은 90일간 윤 후보 대신 싸워줄 중량급 참모가 필요하다. 윤 후보는 12월6일 페이스북에 “정치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적 수사를 걷어내고 보면 ‘사람들’이란 표현 안에는 윤 후보의 약점을 보강해줄 핵심 조력자들이 자리한다. 바로 중도와 합리적 진보로 지지 기반을 확장해줄 인물들이다.
선대위 지도부인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전 민주당 비대위원장),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전 노무현 정부 청와대정책실장), 김한길 새시대준비위원장(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이 대표적이다. 이들도 반문 인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윤 후보 측은 이 3명이 상징하는 대선 전략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선 승리는 물론 집권 이후까지 내다보는 전략이 담겨 있다는 ‘김종인-김병준-김한길 삼각편대’는 과연 어떤 콘셉트를 그리고 있을까. 셋의 밑그림이 서로 충돌하진 않을까. 시사저널이 분석해 봤다. 두 번째 분석은 김병준, 김한길의 영입으로 친DJ와 친노를 끌어안겠다는 전략이다.
“DJ처럼 과감한 西進 정책으로 국민 통합”
“‘윤석열의 반문’은 그저 문재인 대통령을 반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친DJ(김대중)+친노(노무현)’ 그리고 ‘국민 통합’이라는 키워드로 읽어야 한다. 윤석열 선대위를 관통하는 전략과 인사, 메시지와 일정의 한 축이 바로 여기에 있다.” 흔히 ‘윤핵관’이라 부르는 ‘윤석열 후보 핵심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선대위의 전면에 나선 ‘김종인-김병준-김한길’이라는 ‘삼각편대 지도부’가 바로 이 상징이라고도 했다.
우선 세 사람은 모두 민주당 출신 인사다. 김종인 총괄위원장은 2016년 더불어민주당의 선대위원장과 비대위원장을 맡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김한길-김병준’ 위원장이다. 두 사람은 민주정부 1기(김대중 정부)와 2기(노무현 정부)에서 각각 상징적 역할을 했다. 김한길 새시대준비위원장은 DJ의 야당 총재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다. 김대중 정부에선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했다. 김병준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활동했다. 노무현 정부의 핵심사업이었던 ‘세종시 설계자’가 바로 그다.
윤석열 선대위에서는 ‘국민 통합’이라는 깃발 아래 두 위원장을 고리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장점을 계승하고 실천하겠다는 행보를 내보일 계획으로 전해졌다. 특히 김한길 위원장은 친DJ와 친노 색깔을 가진 인재와 세력 영입, 김병준 위원장은 친DJ와 친노 색깔을 가진 메가 공약과 정책을 선보이며 윤 후보의 중원 진격을 도울 예정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에서는 이들을 향해 ‘철새’ ‘배신자’ 프레임으로 맹공을 펼치고 있지만, 윤석열 선대위에서는 이들이 중도 확장에 결정적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기엔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두고 민주당과 대결 구도를 펼치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는 복선이 깔려 있다.
실제 윤 후보는 ‘김대중’이라는 열쇳말로 한동안 ‘국민 통합’을 강조하는 일정을 소화하고 메시지를 발신해 왔다. “국민 통합이라는 김대중 정신을 새겨 저를 반대하는 분들을 다 포용하고 국민으로 모시는 국가정책을 펼칠 것”(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 “대통령이 된다면 한·일 관계 개선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재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겠다”(페이스북) 등이 대표적이다. 11월19일 신동아 인터뷰에서는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DJ를 꼽았다. “김 전 대통령은 그렇게 탄압을 많이 받았는데도 화해와 용서를 통해 국민 통합을 이끌어냈다”고 했다.
윤 후보는 DJ 서거 12주기인 지난 8월18일 야권 대선주자 중 유일하게 DJ 묘역을 참배했다. 박주선·김동철·장성민 전 의원 등 DJ 청와대 출신 인사들을 잇따라 품기도 했다. 연출자(캠프·선대위)의 기획대로 윤 후보가 이를 얼마나 충분히 소화해 냈는가는 별개의 문제지만, 윤 후보가 이런 전략을 받아들이고 수행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윤 후보의 이런 전략적 행보는 그의 약점을 희석하고, 강점은 부각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윤 후보는 보수정권이 탄생시킨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켰 다. 어찌 보면 보수를 초토화시킨 장본인이다. 그런데 마침 이준석 열풍이 불었고, 탄핵의 강을 건너 새로운 보수를 세우자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윤 후보가 내세우는 새로운 보수의 가치가 바로 ‘국민 통합’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이 나라를 두 동강 냈으니 이제 그만 편가르기를 멈추고 ‘국민 통합’을 하자는 논리다.
“통합의 마지막 퍼즐은 호남”
그의 국민 통합에는 ‘친문’ 빼고 다 포함된다. ‘민주당’이 아니라 ‘친문’만을 제외한다는 식이다. 친DJ와 친노를 끌어당겨 중도 확장을 노리는 것은 물론 경쟁자인 이재명 후보를 ‘친문+친이재명’이라는 틀에 가두는 역포위 전략인 셈이다. 단순히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김대중·노무현 정신이 담긴 정책이 제시될 수 있다. 김병준 위원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세종시처럼 노무현 정신이 담긴 메가 공약이 있나’라는 질문에 “필요하고, 곧 제시될 것”이라고 했다.
조수진 선대위 공보단장은 “윤 후보가 강조하는 통합의 마지막 퍼즐은 호남”이라며 “1997년 DJ가 과감한 동진 정책으로 통합의 씨앗을 뿌렸듯 윤 후보는 적극적인 서진 정책으로 그 열매를 맺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