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신고했지만”…‘신변보호’ 여성 가족 습격 또 발생
  • 변문우 디지털팀 기자 (sisa4@sisajournal.com)
  • 승인 2021.12.13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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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송파서 보호 여성 가족 피습
어머니는 사망, 동생은 중환자실서 치료 중
교제했던 여성의 집을 찾아가 가족을 살해한 이모씨가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제했던 여성의 집을 찾아가 가족을 살해한 이아무개 씨가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의자에게 성폭행 당한 후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의 가족이 피살당하는 참극이 발생했다. 이에 경찰의 초동 수사와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13일 서울 송파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 오후 2시26분경 피의자 이아무개(26)씨는 전 여자친구인 A씨의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자택을 찾아 A씨의 어머니와 남동생을 흉기로 찌른 혐의(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이씨는 범행을 저지른 직후 옆 건물 빈집으로 달아났지만 A씨의 아버지의 신고로 체포됐다. 병원으로 이송된 어머니는 결국 사망했고 동생은 중환자실에서 현재 치료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범행 4일 전인 지난 6일 A씨의 아버지는 “딸이 감금당해 있는 것 같다”며 서울 강남경찰서에 신고했고, 경찰은 이씨 주거지 관할이었던 충남 천안서북경찰서와 공조해 이날 저녁 대구에 있는 이씨와 A씨를 발견했다.

A씨는 당시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은 A씨와 이씨의 진술이 상반된 점과 이씨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핸드폰을 제출한 점 등을 고려해 긴급체포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이씨의 신병을 확보하지 않은 채 귀가시켰다.

다음날인 7일 A씨는 아버지와 함께 경찰서에 방문해 신변보호를 요청했고, 경찰은 A씨를 112 긴급 신변보호대상자로 등록한 후 스마트 워치를 지급하는 등 관련 조치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씨는 사전에 흉기 등을 준비한 후, 10일 A씨의 자택으로 찾아가 가족들을 습격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다음날인 11일 오후 9시경 이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서울동부지법은 12일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도주 우려가 있다”며 이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날 법원에 모습을 드러낸 이씨는 기자들이 범행 동기 등에 대해 질문하자 “죄송하다”는 말로 일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이미지 ⓒ연합뉴스
경찰 이미지 ⓒ연합뉴스

해당 사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성폭행 신고가 들어왔을 당시 제대로 된 초동수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동거·연인·혼인 여부와 무관하게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면 경찰은 적극적으로 수사를 해야 한다”며 “A씨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는데 경찰이 해바라기센터 등 보호단체 등과 연계해 원치 않은 성관계가 있었는지 증거 확보를 위해 노력했는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시 이씨가 휴대폰 등을 적극 제출하는 등의 행동을 했다면 경찰 입장에서 긴급체포할 법적 요건이 불충분해 어려웠을 수 있다”면서도 “성범죄 사건은 피해자 뿐 아니라 가족, 신고자, 주변인 모두가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 당시 피해자·가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와 가족에 대한 보호조치가 왜 안 됐는지는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또 승 위원은 해당 사건에 대해 “A씨가 감금 등을 동반한 성폭행을 당했다면 스토킹 범죄와는 다른 또 다른 차원의 정말 죄질이 나쁜 범죄”라며 “이걸 스토킹 범죄라고만 말한다면 범죄의 심각성을 낮추는, 오히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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