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시간·장소·형식·소유’ 개념 사라진 ‘4無 시대’ 열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12.21 10:00
  • 호수 1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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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영상 콘텐츠 생산·소비 방식 완전히 뒤바꿔
TV 시대 막 내릴까

과거의 TV는 위대했다. 사람들의 귀가 시간을 앞당겼고, 생활 패턴까지 바꿨다. 일명 ‘안방극장’의 스크린이 돼 가족들을 한곳에 모이게 했다. 유명 TV 프로그램은 사람들 간 대화의 주된 주제였다. 드라마와 예능의 흥행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TV 시청률. 그리고 그 시청률은 곧 대중성으로 해석됐다. TV 편성표는 신문의 한 면을 당당하게 차지했고, TV 광고는 당대 최고의 스타에게만 허락된 영광처럼 여겨졌다.

지금은 무엇이 TV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까. OTT다. TV의 독보적인 위상이 몰락한 시점은 OTT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와 맞물려 있다. 올 한 해 가장 뜨거운 콘텐츠들은 OTT에서 탄생했다. TV 시청률은 제작사와 방송사에‘만’ 중요한 지표가 됐다. 시청률이 높은 TV 드라마보다 지금 뜨겁게 소비되고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대중에게 회자되면서 문화 현상을 만들어내고, 스타를 탄생시킨다. 이제 OTT가 만들어낸 콘텐츠의 흐름 속에서 시간과 장소의 개념은 무의미해졌고, 정해진 형식의 틀은 깨졌으며, 소유의 개념은 흐려졌다. OTT는 어떻게 콘텐츠 트렌드를 바꿨을까. 지금의 OTT가 대중에게 ‘미디어의 혜택’을 선사하며 새로운 콘텐츠 시대를 열 수 있었던 배경은 뭘까.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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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장소 제약 없어지며 시작된 ‘시청의 혁명’

‘본방사수’가 필요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영상을 재생할 수 있다.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스가 지면의 TV 편성표를 81년 만에 없앤 것은, ‘실시간 재생의 시대’에 편성의 역할을 재고하게 한 계기였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우리는 확고하게 스트리밍의 시대에 와 있다. TV 편성표는 더 이상 사람들의 시청 방식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신문사들도 TV 편성표를 지면에서 지우기 시작했다. 일부 신문사가 고정 독자들의 항의를 받아 편성표를 다시 게재하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OTT 코너 등을 따로 꾸리는 등 콘텐츠 트렌드에 맞게 지면을 대폭 개편하는 모양새다.

TV와 OTT의 가장 다른 점은 뭘까. 콘텐츠를 감상하는 ‘시간’이 자유롭다는 점이다. 그동안 방송과 영화관 등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장소에는 ‘편성권’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마치 콘텐츠 업계의 가장 큰 권력처럼 여겨지던 편성권을, OTT는 시청자들에게 안겨줬다. 100만의 시청자가 있다면 그들의 시청 행태와 취향에 따라 100만 개의 편성표가 그려진다. 여기에 더해 OTT는 ‘장소의 제약’을 풀었다. 기존에 존재했던 IPTV와의 차별점이었다. IPTV는 VOD를 통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 덕에 콘텐츠 시장의 강자로 자리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단점이 된 한 가지 필수조건이 있었으니, 바로 셋톱박스다.

결국 셋톱박스를 설치해둔 거실에서, TV를 통해 콘텐츠를 감상하는 시청 행태가 IPTV 시대에는 지속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OTT(Over The Top)는 말 그대로 셋톱박스 위에 군림한다. 인터넷에 연결만 돼있으면 어떠한 전선 없이 모바일로, 태블릿PC로, TV로, 노트북으로 콘텐츠를 재생할 수 있다. 진정한 ‘방구석’, 혹은 길 위, 혹은 그 어딘가에서도 콘텐츠를 보는 것이 가능한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실제로 OTT로 콘텐츠 소비 형태가 전환되면서 미국에서는 유료방송을 해지하는 ‘코드 커팅’ 현상이 심화했는데, 시장조사기관 이마케터는 2024년까지 미국 가정의 3분의 1이 유료방송을 해지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IPTV는 해외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요금으로 운영되고 있어 당장 코드 커팅 현상이 가시화할 우려는 적지만, 갑자기 ‘올드 미디어’가 돼버린 IPTV로서는 공생의 그림을 급히 그릴 수밖에 없었다. 고객의 이탈을 막아 ‘규모의 경제’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 자사 플랫폼 안에서 OTT 시청자들을 잡을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IPTV를 운영하는 통신사들은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의 앱을 다운받아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체제를 탑재하는 ‘셋톱박스 전쟁’에 나서게 됐다.

또 하나 없어진 것은 ‘재생 시간’이라는 개념이다. 보통 드라마 한 편을 TV로 보는 데는 대략 60분, 광고를 포함한다면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를 보자. 상영관의 러닝 타임이 곧 콘텐츠 재생 시간이다. 그동안의 시청 방식이 러닝 타임을 정할 수 없는 수동적인 방식이었다면, OTT에서는 시간을 조절하는 ‘능동적인 재생’이 가능하다. 온라인으로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나 시도했던 ‘1.5배속의 마법’을,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보면서 시전할 수 있다. 부족한 시간을 속도로 극복하면 대여섯 편에 이르는 오리지널 시리즈를 단시간에 정주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미 유튜브 콘텐츠를 보면서 ‘10초 앞으로 가기’를 애용하고, 온라인 콘텐츠의 ‘광고 건너뛰기’ 버튼을 누르는 것이 익숙한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OTT의 재생 방식은 일종의 해방감을 준다. 수동적 시청을 해야 하는 TV보다, 보다가 얼마든지 중단할 수 있고, 놓친 장면을 다시 돌려 보는 것도 가능한 OTT 콘텐츠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시청의 자율성’이라는 전제가 있다. ‘몰아보기’가 가능한 OTT 오리지널 콘텐츠의 업로드 방식 역시 그것을 뒷받침한다. TV 드라마의 스토리가 끊기는 것이 싫어 VOD로 몰아보기를 하는 시청자들은 IPTV 시대부터 이미 존재했다. 한 번에 공개되는 OTT의 시즌제 콘텐츠는 몰아보기를 하는 시청자들에게는 확실한 선택지다. 애플TV+의 《닥터 브레인》, 쿠팡플레이의 《어느 날》과 같은 콘텐츠가 1주일에 1~2편씩 공개되자 이용자들은 실망했다. 이미 익숙해진 ‘시청의 자율성’을 배반했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에는 33분 짜리 회차도, 63분에 이 르는 회차도 존재한다.ⓒ넷플릭스

왜 OTT 형식은 6부작·12부작 등 다양할까?

OTT의 경쟁력은 오리지널 콘텐츠다. 각 플랫폼이 투자해 만들어낸 오리지널 콘텐츠는 가입자를 유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넷플릭스의 《킹덤》을 필두로 최근의 《오징어 게임》과 《지옥》까지, 이슈가 되는 콘텐츠들이 등장하는 시점에 가입자가 대폭 늘어난다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한다. 그렇다면 이 오리지널 콘텐츠들은 드라마일까, 영화일까. ‘몇 부작’의 형태를 띠고 있기에 드라마라고 판단하지만, 영화와 유사한 특성도 감지된다. 공개일에 전체 스토리가 공개되는 ‘개봉’의 형식을 취하고 있고, 전체 촬영이 끝난 후에 작품이 공개된다. 노골적인 PPL이 없다. 시청자들의 반응에 따라 스토리의 방향이 바뀌지도 않는다는 점도 영화와 유사하다.

오리지널 콘텐츠들에서 이러한 ‘형식의 파괴’는 더욱 부각된다. 최근에는 영화감독들이 드라마라 불리는 OTT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 《부산행》과 《반도》로 화제를 모았던 연상호 감독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을 선보였고, 《도가니》와 《수상한 그녀》의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 게임》을 통해 OTT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차이나타운》의 한준희 감독은 《D.P.》의 연출을 맡았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김지운 감독은 애플TV+ 《닥터 브레인》의 연출을 맡았다.

실제로 한국 드라마 최초로 골든글로브의 ‘TV 드라마’ 부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오징어 게임》은 미국 독립영화 시상식에서도 수상하는 등 드라마와 영화 두 장르에서 모두 부각되기도 했다. 특히 《승리호》나 《서복》 등 영화 작품들이 OTT에 단독 공개, 혹은 동시 개봉 형태로 등장하면서 콘텐츠의 경계선은 더 흐릿해졌다. 불과 몇 년 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옥자》의 영화관 상영이 논란이 됐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제 OTT 플랫폼은 하나의 상영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OTT가 파괴한 다른 형식은 ‘N부작’이라고 불리는 회차다. 기존 방송사는 60분 내외의 16부작을 기본 포맷으로 드라마를 제작했다. 이렇게 제도처럼 굳어진 드라마의 형태에는 광고 삽입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가 존재했다. 충분히 많은 광고를 드라마에 담기 위한 장치. 그것이 16부작이라는 형태로 발현됐다. 초반에 PPL을 많이 싣지 못한 드라마는 방송 말미에 폭격처럼 제품 광고를 퍼붓기도 했다. 그동안 드라마에 등장하는 뜬금없는 PPL은 콘텐츠의 내러티브를 방해하고 몰입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빈축을 샀다. 이 문제는 굵직한 작품들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올 초 인기를 끌었던 《빈센조》는 과도한 중국 제품 PPL로 지적을 받았고, 최근 TV와 티빙에 동시 공개됐던 《지리산》 역시 개연성 없는 PPL로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TV를 통해 《오징어 게임》이 방송됐다면 공유가 딱지치기를 하기 전에 카누 커피를 권할 것이고, VIP는 바디프랜드 안마의자에 누워서 게임을 지켜봤을 것”이라는 네티즌의 글이 단순히 우스갯소리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제작자 위에 광고주가 있다’는 불편한 현실, 그래서 드라마에는 필연적으로 PPL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문제 때문일 것이다. 일명 ‘PPL프리’로 성공한 콘텐츠가 늘어난 상황에서, 이제 시청자들은 ‘내가 돈을 내고 보는 드라마에서 광고까지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됐다. 중간 광고나 PPL을 보지 않을 권리가 구독료에 포함된다고 믿게 됐다. 시청자들에게 무엇이 통할까. PPL로 점철된 드라마와 광고 없이 몰입감을 선사하는 오리지널 콘텐츠 사이에서 시청자가 향할 곳은 자명하다.

이런 시청 행태는 이미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광고를 보지 않는 것에 돈을 내는 유튜브 프리미엄 요금제처럼, 이전까지의 시청자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 당연하지 않게 됐다. ‘떼고 볼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이 OTT 시대에 생겨났다. PPL을 덜어내자 분량과 회차는 줄어들었고, 이는 작품의 내용과 구성에 따라 자유로운 포맷을 구성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킹덤》은 시즌1·2를 6부작으로 구성했다. 9부작인 《오징어 게임》에는 33분짜리 회차도, 63분에 이르는 회차도 있다. 티빙 오리지널 《술꾼도시여자들》은 27~47분 등 다양한 분량으로 2회씩 총 12회를 공개했다.

《술꾼도시여자들》은 27~47분의 다양한 분 량으로 총 12회를 공개 했다.ⓒ티빙

‘소유’가 아닌 ‘공유’로 계정 활용…OTT 입장은

그렇다면 이제 OTT를 이용하기 위한 조건을 보자. TV와 달리 OTT에 존재하는 것. 계정이다. 계정을 ‘소유’해야만 OTT를 볼 수 있다. 그런데 계정을 ‘공유’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계정 소유의 개념이 없어진 것은 다인용 요금제 등장과 맞닿아 있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대다수 OTT 플랫폼은 동시접속 이용자를 허용하는 요금제를 운영 중이다. 넷플릭스는 최대 4명까지 동시접속이 가능한 요금제를 1만7000원에 운영하고 있고, 티빙(1만3900원), 왓챠(1만2900원) 등 토종 OTT에도 최대 4명이 이용할 수 있는 프리미엄 요금제가 있다.

한 계정을 4명이 공유할 경우 혼자서 OTT 서비스를 이용할 때보다 비용 부담이 대폭 줄어든다. 1인이 접속 가능한 넷플릭스 요금제는 9500원이지만, 4명이 공유하면 4000원대로 OTT를 이용할 수 있다. 여기에 프리미엄 요금제는 HD, UHD 화질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인용 요금제가 비용적으로 유리할 뿐 아니라 콘텐츠 재생의 퀄리티까지 높여준다는 것을 알게 된 이용자들은 ‘공유’에 나서기 시작했다.

실제로 OTT 이용자들은 2~3개 OTT를 동시에 구독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6월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OTT를 2개 이상 이용하는 소비자는 53.6%에 이른다. ‘미드는 넷플, 영화는 왓챠’라는 말처럼 OTT별로 강점이 있는 분야가 있고, 각각의 오리지널 콘텐츠는 ‘가입해서라도 볼 만한 콘텐츠’이기에, 하나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금액으로 여러 플랫폼의 계정을 공유해 콘텐츠의 다양성을 누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등에는 계정을 공유할 ‘팀원’을 찾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여러 명이 계정을 공유해 월 구독료를 나눠 내는 것을 중개하는 플랫폼까지 등장했다.

본래 이 요금제가 생겨난 배경은 한 브라운관에서만 콘텐츠를 시청해야 하는 제약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한집의 가구원들이 TV, 모바일, 태블릿 등 기기에서 다양하게 접속해 동시에 콘텐츠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대다수 OTT 플랫폼은 계정 공유가 공식적으로 ‘가족에 한해’ 가능하다고 약관을 통해 공지하고 있으며, 타인과의 계정 공유를 금지하고 있다. 약관을 위반할 경우 회원의 서비스 사용을 종료시키거나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최근 이렇게 계정 소유의 개념이 희석되는 것에 대한 OTT 업계의 입장은 어떨까. 왓챠 관계자는 “원래 계정 공유 서비스는 가족 공유를 목적으로 제공된 것이다. 서비스 이용자들의 니즈(욕구)가 생겨나면서 (계정 공유 플랫폼 등) 서브 서비스가 생기는 상황을 이해하고 있고, 시장이 성장하면서 생성되는 다양한 서비스에 대해 모니터링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복수의 프로필은 한집에서 여러 명의 가족이 동시에 다른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가족 구성원이 아닌 개인과 공유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약관을 통해 분명히 안내하고 있으며, 서로 알지 못하는 타인과의 계정 공유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도 “타 플랫폼의 서비스 및 향후 제재 계획 등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제재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전문가들 역시 이 같은 계정 공유 현상에 대해 업계가 관망하는 단계라고 진단하고 있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은 “당장 OTT 플랫폼들이 계정을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거나 계정을 정지하는 등의 제재를 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구독 시장의 경쟁이 치열하고, 구독자 유치가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라며 “다만 경제적 이익을 위해 계정을 공유하는 사례 등이 만연해진다면 향후 OTT 업체들이 법적 조치나 기술적 조치를 할 여지도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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