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두 인터뷰] “부채 상황 심각…日과 단순 비교는 매우 위험”
  • 김종일·이원석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24 16:00
  • 호수 168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년 인터뷰]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②
“양극화 줄여야 국민통합…기회 보장할 ‘사다리 복지’ 필요”
“부채 문제 심각…美 금리 인상發 ‘금융위기’ 대비해야”

“두 번째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새로운 전염병 등으로 또 다른 재난이 닥쳐왔을 때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인프라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는 대선후보가 없다. 지금은 50조원, 100조원 공약을 막 내놓을 때가 아니다.” 

서강대 석좌교수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의 시선은 ‘내일’을 향해 있었다. 지금껏 대통령선거 때마다 유력 대선후보의 경제 과외교사로 호출되곤 했던 그는 이번 20대 대선을 ‘코로나 대선’이라고 정의하며 ‘코로나 복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코로나 복지’에는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 ‘내일의 위기’를 대비하는 방편을 확실히 세우는 것이 포함돼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일자리와 성장 전략이 담겨 있었다. 

오래 고민한 듯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의 말은 거침없었지만 그 안에는 오랜 고민과 성찰이 담겨 있었다. 몸에 좋은 약은 쓴 법이다. 아직 내년 대선까지는 70여 일이 남았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또 중요한 과제는 무엇일까.

“국민통합이다. 정치적 분열도 심하지만, 결국 근저엔 양극화가 깔려 있다고 본다. 양극화를 어떻게 완화시킬 것인지는 지금 세계적 과제이자 고민이다. 코로나19 이후 자산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엄청나게 풀린 돈이 부자들에게 흘러갔고, 그 돈 대부분이 자산시장으로 갔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사람들과 코로나바이러스로 피해를 본 이들은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 이재명 후보가 초기에 이 지점을 잘 공략했다.”

양극화 해결을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 먼저 부자들의 것을 뺏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자는 방식이 있다. 복지를 늘리자는 이야기나 지금 100조원 공약이 남발되는 흐름과 맥이 닿는다. 다른 방식은 시스템을 만드는 접근법이 있다. 지금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앞으로 더 잘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데 집중하는 방식이다.”

과도한 부의 쏠림 현상은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부자들 돈 뺏어서 가난한 사람들 주는 건 쉽다. 그런데 국가 전체는 어떻게 될까. 그럼 부자들은 불안해진다. 당장 투자를 줄인다. 우리 자본시장은 열려 있다. 기술력 좋은 우리 기업의 대주주로 외국인이 더 많이 들어오게 된다. 전체적으로는 일할 의욕이 떨어진다. 열심히 일해서 소득을 많이 얻고 부를 축적하겠다는 원칙이 훼손되면 효율성이 확 떨어진다. 이게 바로 1970년대까지 동구권에서 진행됐던 사회주의의 실험이다. 결과는 역사가 증명한다. 국민이 함께 못살게 된다.”

 

“건강·교육·여성 양극화 해결이 ‘희망의 투자’”

그럼 양극화 해소를 위한 다른 방식은 무엇인가.

“당장 생존권을 위협받는 이들을 위한 복지는 필요하다. 다만 생존권 차원에만 그치면 안 된다. 그들이 미래에 더 잘살 수 있게 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 그걸 잘하는 나라들이 북유럽에 있다. 바로 계층 간 이동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나는 이걸 ‘사다리 복지’라고 부른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건강(헬스케어)과 교육, 여성 문제에 집중하는 거다. 하나씩 보자. 가난하다고 어릴 때 제대로 된 영양 섭취가 이뤄지지 않아 아프게 되면 불가역적 피해를 본다. 계층 차이가 평생 고착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부가 모든 국민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전폭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교육은 계층 이동의 핵심 사다리다. 그런데 부모의 부에 따라 교육 환경은 천차만별이다. 이런 차이는 없애야 한다. 왜 북유럽 국가들이 대학까지 교육비를 무료로 하겠나.”

특히 한국에선 여성이 불리한 게 많다는 지적이 있다.

“그렇다.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래서 보육이 핵심이다. 북유럽에서 보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이유다. 여성들이 보육 때문에 사회에 진출하지 못하는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파트타임 일자리 제도가 아주 발달해 있다. 8시간 일하는 정규직과 4시간 일하는 파트타이머의 임금 차별이 없다. 정확히 절반을 받게 된다. 고용 유형도 매우 다양하다. 우리도 시급히 제도도 바꾸고 필요한 곳에 투자를 해야 한다. ‘죽지 않을 만큼 밥은 먹여줄게’ 식의 복지만 할 게 아니라 ‘꿈조차 꿀 수 없다’고 좌절하는 지금의 환경을 바꾸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 대선후보들은 ‘오늘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 지도자는 ‘내일의 이야기’ ‘미래’를 말해야 한다. 그래서 ‘희망’을 줘야 한다.”

대선후보들이 보다 관심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건강·교육·보육에 투자하는 게 일자리와 연결돼 있다는 점을 더 강조해야 한다. 실제 이 분야는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가령 디지털 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오프라인 인프라 구축과 온라인 소프트웨어 개발이 모두 필요하다. 얼마나 많은 자원이 필요한가. 그리고 이게 다 내수 수요다. 일자리로 연결된다. 요양 산업도 마찬가지다. 지금 간병인이라 부르는 분들의 질적 도약을 도울 투자를 한다면 그게 다 신산업이 될 수 있다. 이들이 기본적 의료 상식은 물론 심리적 도움을 줄 수 있게 교육을 시키고, 요양 컨설팅까지 할 수 있게 만든다면 생각보다 산업 규모가 커질 수 있다. 여기에 디지털 산업을 연계해 노인들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데 매칭시킨다면 하나의 중요한 산업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선후보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는 뭔가.

“다음 정부가 골치 아플 게 바로 부채 문제다. 아주 힘들 거다. 최근 국제결제은행은 한국의 부채 상황을 ‘주의(Warning)’에서 ‘경고(Alert)’로 단계를 조정했다. 부채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도 12월13일 보고서를 내고 우리의 부채 증가 속도가 선진국 평균 대비 너무 빠르다고 우려했다.”

부채가 많으면 정확히 어떤 점이 문제인가.

“부채가 많으면 사람 몸이 무거운 것처럼 된다. 일어나야 할 때 잘 못 일어나게 된다. 한 번 넘어지면 일어나기 힘들다. 경제도 똑같다. 부채가 많으면 경제 사이클이 내려갔다가 올라올 때 힘들게 된다. 보통 부채가 일정 범위 내에 있으면 경제 사이클이 2~3년 내려가면 또 2~3년이면 올라온다. 그런데 지금 같은 상황이면 다시 올라오는 데 5년 이상 걸리게 된다.”

무서운 이야기다.

“그러니 지금 대선후보들이 100조원 이야기를 쉽게 던질 때가 아니다. 우리한테 그런 여유가 없다. 역사적으로 지난 50년간 경험을 분석한 보고서들을 보면, 부채가 늘어나면 반드시 금융위기가 온다. 사람마다 분석이 다르지만, 나는 미국 금리 인상 시점부터 긴장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은 내년 세 차례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국제 금융 시스템은 전부 연결돼 있다. 우리가 괜찮아도 어떤 국가에 문제가 생기면 다 파급효과가 생긴다. 2007년과 유사한 상황이 올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2월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김 광두 부의장(오른쪽)과 입장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우리 부채 상황 심각…日과 단순 비교는 매우 위험”

우리 상황은 어떤가.

“경제주체 중 가계와 기업은 부채가 엄청 늘었다. 국가는 세금을 더 걷는 방법 등으로 부도가 안 날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어느 나라든 가계와 기업 부채에 문제가 생기면 구조조정 과정에서 국가가 돈을 대준다. 그러려면 국가가 여유가 있어야 한다. 과거엔 재정 상황이 좋았다. 지금 우리가 그럴 수 있을까. 우리의 지금 부채 상황을 고려하면 과거처럼 가계와 기업에 부채 문제가 생겼을 때 여력이 얼마나 될지를 고민해야 한다. 50조원, 100조원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위기에 대응할 여력을 지금부터 준비하자는 얘기다.

“이렇게 말하면 ‘일본은 국가부채가 GDP 대비 200%인데도 괜찮다. 우리는 50%도 안 되는데 대체 뭐가 문제냐’라고 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건 구조를 몰라서 함부로 말하는 거다. 일본은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swap·교환) 1군 동맹에 가입해 있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일본은 미국과 달러화와 엔화를 언제든지 교환할 수 있다. 달러 부족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다.” 

한·미 통화 스와프가 올해 말로 종료되는데. 

“일본과 우린 사정이 다르다. 고령화 속도도 고려해야 한다. 일본은 이미 고령화 수치가 최고치다. 우린 세계에서 제일 빠른 속도다. 고령화는 필연적으로 복지 지출 수요를 늘리게 한다. 여기에 엄청난 예산이 든다. 일본이 한국의 현재 고령화 수준일 때 국가부채가 어땠나. 우리보다 낮았다. 이런 구조를 생각하지 않고 수치를 단순 비교하면 안 된다. 대선후보들이 여기까진 못 가더라도 부채 문제에 대한 고민과 의식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선후보들에게 당부의 한마디를 한다면.

“과거 DJ(김대중 전 대통령)나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소명의식이 있는 스테이츠맨이었다. 일생을 민주화에 바쳤고, 국민통합을 늘 염두에 뒀다. 고민에 깊이가 있었다. 그러니 말의 무게가 있었다. 그래서 그분들이 말하는 ‘변화’나 ‘개혁’이라는 대의에 무게가 실렸다. 그런데 지금은 말의 무게는커녕 변화나 개혁 같은 얘기도 나오지 않는다. 말에 내용이 없어서 그렇다. 핵심은 현재만 보지 말고 미래도 함께 보는 접근법으로 국정운영을 고민해 달라는 것이다. 현재의 만족에만 초점을 맞추면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준비 없는 미래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1947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광주일고와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서강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 미국 하와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로 활동하며 국제통상학회와 국제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냈다. 현실 참여형 학자로서, 유력 대선후보들의 ‘경제 과외교사’로 불리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인 ‘J노믹스’를 설계했으며 2017년 5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으로 일했다. 현재는 국가미래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