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잉원의 도박에 긴장감 더 커진 대만해협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06 07:30
  • 호수 1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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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총통, 친미 노선 노골화한 국민투표 승리로 정권 입지 강화
중국과의 관계는 악화일로 예상

지난 12월27일 대만 신주시 칭화대학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차이잉원 총통이 참석했다. 행사는 반도체 관련 대학원인 ‘중점 과학기술 연구학원’ 개원식이었다. 이는 2021년 9월 대만 정부가 대만대학·칭화대학·양밍교통대학·청궁대학 등 4개 국립대학에 반도체 대학원 설립 계획을 밝히면서 시작됐다. 계획에 따르면 2022년부터 해마다 400여 명의 학생을 뽑아 전문교육이 진행된다. 또한 설립 주체에 TSMC·파워칩·미디어텍·에트론 등 대만의 주요 반도체 업체가 참여했다. 이에 따라 지난 12월24일 대만대학에 첫 연구학원이 개원했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이날 개원식에 참석한 차이 총통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최근 자신이 처한 정치·경제적 상황이 연임에 들어간 2020년 5월 이래 가장 좋기 때문이다. 전날인 지난 12월26일 신베이시 한 호텔에서 열린 핑둥(차이 총통의 고향) 동향회 총회에서는 속내를 숨김 없이 드러냈다. 그는 총회 치사에서 “대만이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도 “민주주의가 잘 발전했고 국제경제적 측면에서 대만이 갖는 의미가 커지고 있다”고 자부심을 표출했다. 또한 “2021년 경제성장률이 6% 이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11년 만에 최고치”라고 자랑했다.

ⓒREUTERS
차이잉원 대만 총통(가운데)이 2021년 12월11일 대만 신타이베이시에서 열린 국민투표 부결을 지지하는 집회 에서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REUTERS

위험한 승부수 던져 압승한 차이잉원

정치적으로 보면 차이잉원 총통을 괴롭혔던 문제들이 지난 12월18일 실시된 국민투표를 통해 한꺼번에 해결됐다. 국민투표에 부쳐진 4개 안건이 모두 부결됐기 때문이다. 4개 안건은 △락토파민을 함유한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 △제4원전의 상업 발전 개시 △타오위안 해안에 건설 중인 천연가스 도입 시설의 이전 △국민투표일의 대선일과의 연계 등이었다. 이 중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는 차이 총통의 발목을 줄곧 잡아왔던 골칫거리였다. 시작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 수입하던 돼지고기에서 락토파민 성분이 검출되면서 대만인들의 거부감이 커졌던 것이다.

락토파민은 사육 동물의 체지방을 줄여 살코기 비율을 늘리는 성장촉진제다. 사실 적당히 사용하면 문제가 없지만, 기준치 이상 투여하면 그 고기를 섭취한 인체에 위협이 된다. 그래서 대다수 국가는 락토파민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나, 미국 등 20여 국가에서는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엄격한 잔류 기준치 범위 내에서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허용한다. 미국이 FTA 체결의 전제조건 중 하나로 락토파민을 함유한 자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대만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국민적 거부감과 축산농가 보호를 위해 수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런 현실을 잘 아는 차이잉원은 집권 이전에는 수입을 반대했다.

하지만 2016년 집권한 이후에는 입장을 바꿨다. 중국의 과도한 경제적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면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락토파민을 함유한 미국산 돼지고기를 반드시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를 위한 기반을 다지던 차이 총통은 연임 이후인 2020년 8월 미국산 돼지고기와 소고기 수입 규제를 완화하는 행정명령을 전격 발표했다. 그러자 대만 정계와 민심이 요동쳤다. 야당인 국민당은 격렬히 저항했다. 2020년 11월27일에는 국민당 의원들이 입법원(의회) 의사당에서 집권당인 민진당 의원들에게 돼지 내장을 던지며 항의했다. 그해 11월22일에는 타이베이시에서 5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수많은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반대 시위도 잇따랐다. 그로 인해 행정명령을 발표하기 이전에 60~70%대 지지율을 자랑하던 차이잉원 총통의 인기는 급속히 식었다. 특히 그해 11월말 지지율은 43%까지 떨어졌다.

이렇듯 야당과 여론의 반대가 심하고 2021년 들어서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차이 총통은 승부수를 던졌다. 2021년 8월 다른 3개 안건과 함께 국민투표에 부친 것이다. 사실 국민투표는 차이 총통 입장에서는 아주 위험한 도박이었다. 국민투표가 실시된 지난 12월18일 직전까지 4개 안건 모두의 찬성 여론이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민투표 직전까지 진행됐던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투표일을 총통 선거일과 연계하는 안건을 제외한 나머지 3건은 찬성률이 반대를 줄곧 압도했다. 게다가 제4원전의 상업 발전이 개시되고 타오위안 해안에 건설 중인 천연가스 도입 시설의 이전이 이뤄지면, 차이 총통이 밀어붙였던 반원전 정책은 치명타를 맞게 된다. 연임 2년 차에 정국 주도권을 잃고 조기 레임덕을 맞는 셈이다. 따라서 국민투표 직전까지 차이 총통은 적극적인 캠페인을 벌이면서 “4개 안건을 모두 부결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이런 차이 총통의 노력은 국민투표를 통해 열매를 맺었다. 이전 여론조사 결과와 국내외 예상을 뒤엎고 4개 안건의 반대율이 모두 높았던 것이다. 차이 총통에게는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그 배경에는 중국의 대만 침공설에 따른 위기감과 그에 따른 미-중 갈등이 있었다. 국민투표 부결은 대만인들이 중국보다는 미국과의 협력 강화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차이 총통의 집권 이전까지 대만 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하지만 독립 성향이 강한 차이 총통과 민진당을 압박하기 위해 중국은 각종 경제 보복 조치를 취했다. 이에 대만 정부는 중국에 진출한 자국 기업의 리쇼어링(본국 회귀)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고, 동남아 진출을 도왔다.

 

‘대만이 홍콩 전철 밟을 수 있다’ 위기감 돌아

무엇보다 차이잉원은 친미 노선을 명확히 하면서 미국과 밀착해 갔다. 따라서 차이 총통과 민진당은 이번 국민투표를 ‘미국이냐 중국이냐’는 선택 구도로 몰고 가면서 대만인들의 반중 감정을 자극했다. 대만인들은 이미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사태, 2020년 중국의 홍콩국가보안법 시행 등을 거치면서 중국이 내세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 체제)의 허상을 여실히 목도했다. 따라서 만약 대만이 중국에 예속된다면, 홍콩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이에 대만인들은 이번 국민투표를 계기로 자국이 향후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양국 관계가 더욱 밀접해지길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중국의 심경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대만 침공설이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은 상황에서 대만의 노골적인 친미 일변도 행보는 동북아 정세의 또 다른 화약고가 될 전망이다.

대만 경제의 호황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각종 전자제품과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자, 대만이 그 수혜를 가장 많이 입었다. 특히 전 세계적인 시스템 반도체 품귀 현상이 일어나면서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TSMC의 위상이 높아졌다. TSMC의 매출 60%는 미국에서 나온다. 그 덕분에 2020년 대만의 경제성장률은 3.4%를 달성했다. 선진국으로서는 유일한 플러스 성장이었다. 2021년에는 기록적인 수출 증가로 경제성장률 6% 이상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대만 정부는 2022년에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5394달러를 달성해 한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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