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구, ‘허웅파’와 ‘허훈파’로 갈렸다
  • 김종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05 11:00
  • 호수 1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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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최전성시대 열었던 허재, 그의 두 아들이 다시 한국 농구 되살리는 첨병 나서
농구인들 “실력과 스타성 갖춘 두 형제, 보물 같은 존재”

‘그때가 좋았지….’ 농구인들 사이에서 입버릇처럼 나오는 얘기가 있다. 비인기 종목으로 전락한 지 오래된 농구의 과거 한창 인기 있던 그 시절을 회고하는 것이다. 물론 비약이 다소 심할 수도 있다. 아무리 국내 프로스포츠 시장에서 농구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다소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국내 프로농구리그(KBL)는 성행하고 있고, 미국의 NBA 역시 해외 스포츠 중에서는 인기 종목에 속한다. 하지만 그럭저럭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지금에 만족하기에는 20~30년 전 당시 농구 인기가 좋아도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농구의 인기는 1990년대 들어 절정을 이뤘고 프로 시대를 열었다. 농구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공전의 히트를 쳤을 만큼 구름 같은 10대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기도 했다. 그 인기의 원조가 바로 중앙대 돌풍의 주역이었던 ‘농구 천재’ 허재 전 감독이었다. 허 전 감독은 지금 예능인으로 변신해 방송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두 아들이 지금 한국 농구의 희망으로 그나마 자존심을 온몸으로 떠받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원주 DB의 허웅(29)과 수원 KT의 허훈(26) 형제는 아주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둘은 현재 KBL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핫 아이콘이다. 스타 기근에 목마른 국내 농구계에서 정말 오랜만에 나온 신성으로 주목받는 분위기다. 각종 매체마다 두 형제를 라이벌로 내세워 누가 더 잘하는지 우열을 비교하는 보도도 잇따른다.

ⓒ연합뉴스
(왼쪽)원주 DB의 허웅, 수원 KT의 허훈ⓒ연합뉴스

“허웅, 갈수록 성장하는 게 보여”…“허훈은 엄청난 자신감의 소유자”

스포츠가 흥행하기 위해선 잘 짜인 스토리 구도는 필수다. 팬과 언론이 필요한 분야답게 경기력·기량 등이 받쳐주는 가운데, 그러한 부분을 더욱 빛나게 해줄 화제성이 함께한다면 인기는 폭발적으로 커질 수 있다. 허웅·허훈 형제가 딱 그렇다. 각자 본인의 팀에서 토종 에이스로 활약할 만큼 기량이 빼어난 젊은 스타인 데다 외모도 출중하다.

거기에 형제가 나란히 올스타전 인기투표 1·2위를 차지할 정도로 최고의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심지어 허재 전 감독이 그의 아버지다. 김상식 전 국가대표 감독은 “대표팀 시절 코치와 감독으로 웅이와 훈이를 직접 겪어본 입장에서, 그들이 인기스타로 명성을 누리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우선적으로 본인들의 실력이 좋기 때문이다. 스타 출신 부모를 둔 자녀들은 운동하는 내내 주변의 지나친 관심과 상대적 비교로 인해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린다. 웅이와 훈이는 그것을 이겨내고 실력으로 현재의 위치에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두 형제가 화제가 되다 보니 둘을 비교하는 분위기 역시 뜨겁다. 최근에는 현역 프로감독들을 대상으로 한 ‘자신의 팀으로 누구를 더 데려오고 싶은가’ 설문조사 기사까지 나왔다. 각 팀의 간판스타인 데다 포지션까지 달라 사실상 무의미한 비교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허웅과 허훈이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얼마 전까지 10여 년가량 프로구단 사령탑으로 지냈던 추일승 전 오리온 감독과 문경은 전 SK 감독에게 필자가 똑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문 전 감독은 “감독이 추구하는 농구 스타일이나 팀 전력 구성에 따라 갈릴 것 같다. 개인적으로 허훈을 중심으로 하고 싶다. 다른 이유는 없다. 포지션 차이에 따른 개인적인 생각이다. 1번이 튼튼하면 팀의 균형이 잘 잡힌다. 포인트가드는 경기장 내에서는 또 다른 감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추일승 전 감독은 “허웅은 붙임성이 좋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 기분까지 좋게 만드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 동료들과의 관계도 좋을 것 같고 모든 면에서 성실함이 느껴진다. 허훈은 신장은 형보다 작지만 피지컬적인 측면에서 더 좋은 듯싶고 이른바 보스 기질이 강해 보인다. 만약 팀을 꾸린다면 둘 중 누구라도 환영한다. 왜냐하면 둘 다 허씨(허재 전 감독의 아들)이지 않은가. 재능이나 멘털 등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대답했다.

비슷한 포지션의 농구 선배들은 형제의 두둑한 배짱에 주목했다. 왕년의 명슈터 김훈은 슈터로서의 허웅에 대해 “시즌이 거듭될수록 실력이 늘어가는 게 보인다. 예전에 비해 개인 기술이 늘어가고 있으며 무엇보다 대범한 성격이라는 점에서 언제든지 빅샷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슈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격형 가드로 국내 1·2위를 다퉜던 김희선은 “국내 스포츠는 선후배 관계라는 게 암묵적으로 조금씩 존재해 왔는데, 허훈은 플레이에서만큼은 그러한 부분을 의식하거나 주눅 들지 않는다. 본인이 할 것을 다 한다. 신세대 가드의 대표격 선수 같다”고 성격적인 부분을 특히 높게 평가했다. 원조 톱클래스 공격형 가드로 명성을 떨쳤던 신기성 SPOTV 해설위원 또한 “공격력에 있어 자신감은 실탄과도 같다. 그런 점에서 허훈은 엄청난 양의 실탄을 장전하고 전장에 나간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흥행 이끌 스타 필요”…농구계가 방송 출연을 더 반기는 이유

허재와 더불어 중앙대 돌풍의 주역이었던 김유택 전 SPOTV 해설위원은 “허재의 피를 물려받은 아들답게 둘 다 부친을 많이 닮아있는 듯 보인다. 재미있게 표현하자면 허재가 둘로 나뉘어 한 명은 웅이, 한 명은 훈이가 된 게 아닌가 싶다. 배짱은 둘 다 두둑한 가운데 허웅은 볼을 많이 만지지 않고도 다양한 방식으로 득점을 올리는 데 능하고, 허훈은 주도적으로 볼을 많이 만져가면서 돌격대장 역할을 잘해 준다”고 평가했다. 허재의 중앙대 직속 후배인 조동기 한국유소년농구연맹 총재는 “이른바 S급을 가르는 기준은 결정적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클러치샷을 넣을 수 있는 자신감인데, 둘 다 이러한 부분을 갖췄다는 점에서 역시 허재 선배 아들이구나 싶다”는 말로 부전자전임을 확인시켜 줬다.

과거 보수적인 시대에는 농구선수가 텔레비전 등에 자주 출연하면 ‘겉멋 들었다’며 비난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농구의 인기를 위해서라도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가서 알려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다. 허웅·허훈 형제 역시 각종 인터뷰 등을 통해 “연예인은 아니지만 섭외가 들어오면 되도록 나가려고 노력한다. 농구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늘어나기를 바라는 이유가 크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ES스포츠나눔 조성훈 총감독 또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1990년대 초반 농구 인기가 한창 좋을 때도 몇몇 스타 선수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 어느 스포츠든 스타가 나와줘야 흥행이 된다. 그런 점에서 허웅, 허훈은 보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정말 오랜만에 나온 스타이니만큼 농구 인기 부활을 위해서라도 협회 차원의 꾸준한 노력이 함께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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