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 감도는 일본 정치권…기시다와 아베 ‘충돌’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04 11:00
  • 호수 1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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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총리와 거리 두기 강화하는 기시다 일본 총리, ‘아베노믹스’도 수정
공개적 훈수 두기로 불편한 심경 내비치는 아베

지난 12월6일, 일본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전 호소다파)의 회장으로 취임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취임 후 처음으로 정치자금파티를 개최했다. 정치자금파티는 정당 및 정치단체가 정치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개최하는 파티로, 참석자가 파티 참석권을 구매하는 형태로 모금이 이뤄진다. 여기에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기시다파)와 아소 다로 부총리(아소파), 다카이치 사나에 정조회장(무파벌) 등이 참석했다. 이 파티에서 기시다 총리는 “(아베파가) 기시다 내각을 한가운데에서 지지해줘 고맙다”며 화목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에 대해 아베 전 총리도 “(아베파가) 하나가 되어 기시다 정권을 지지해갈 것을 약속한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이처럼 겉으로는 친밀해 보이는 기시다와 아베의 관계에 대해 일본 주요 매체들은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는 기시다 총리 취임 이후 요직인 관방장관 및 자민당 총무회장 등에 자신과는 거리감이 있는 인물들이 기용된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은 아베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 출신으로, 중의원 선거에서 아베의 경쟁자가 되기 때문에 아베의 ‘천적’으로 불리기도 한다.

(왼쪽)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020년 8월28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오른쪽)기시다 후미오 일본 신임 총리가 2021년 10월4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Xinhua

기시다, 각종 아베 스캔들에 ‘선긋기’

내각 인사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말, 나미비아발 입국자의 오미크론 변이 감염이 확인된 직후 기시다 총리는 지난 12월 한 달간 모든 외국인의 신규 입국을 정지하는 강경 조치를 발표했다. 신규 입국 정지 발표 당시 기시다 총리는 “아직 어떤 상황인지도 잘 모르는데 기시다는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비판은 내가 모두 감당하겠다”고 밝혔다. 요미우리신문은 이에 대해 이전의 아베 내각과 스가 내각이 불충분한 방역 대책으로 비판을 받았던 것을 교훈 삼은 조치라고 평가했다. 즉, 기시다 총리가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해 강경한 코로나19 대응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의 지난 12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89%가 외국인 신규 입국 정지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자민당 내에서도 “이전에 비해 기시다 내각은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2020년 4월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일본 내 마스크 가격이 급상승하자 당시 아베 내각에서 천 마스크를 제작한 바 있다. 일명 ‘아베 마스크’라 불리는 이 마스크는 이후 배포되지 않고 쌓인 채 재고 처리가 신속히 이뤄지지 않아 보관료만 6억 엔(약 66억원) 이상 사용되면서 “세금 낭비”라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시다는 지난 12월21일 기자회견에서 희망자에 한해 해당 마스크를 추가 배분하고 남은 수량은 전량 폐기하겠다고 밝히는 등 결단력 있는 총리 이미지를 과시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전 아베 내각에서 문제시된 각종 의혹과 관련해서도 선긋기에 나서고 있다. 먼저 지난 12월14일 열린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기시다 총리는 ‘벚꽃을 보는 모임’과 관련해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초래했다”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 뒤, 아베 정권을 향한 비판이 계속된 점을 고려해 자신의 임기 중에는 벚꽃을 보는 모임을 개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사학 스캔들(모리토모학원 문제)과 관련해서는 국유지 매각과 관련해 행정문서를 조작한 재무성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기로 했다고 밝혔으며, 지난 12월16일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같은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최근 국토교통성의 건설공사 수주 통계 조작이 지난 아베 내각 시절(2013년)부터 이뤄졌던 것이 밝혀져 정부 작성 통계에 대한 신뢰성 저하와 함께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이 과대평가되었을 가능성이 지적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매우 유감이며, 재발 방지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日 언론들, ‘포스트 기시다 누구냐’ 주목

아베 내각의 간판 정책인 ‘아베노믹스’에 대해서도 기시다 내각은 수정을 시도하고 있다. 기시다는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부터 ‘새로운 자본주의’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아베노믹스로 인해 닛케이 주가가 상승하고 실업률이 떨어지는 등 일본 경제가 활기를 되찾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경제성장을 통해 대다수 국민의 삶이 개선되지 못하고 오히려 격차가 확대되었다는 한계를 강조하며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달성해 나가겠다는 취지에서 제기되었다. 즉, 아베노믹스가 성장에 중점을 두었다면 기시다 내각의 경제정책은 분배를 달성함으로써 아베 내각에서 실현하지 못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베 내각 시절 간판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아베와의 차별화 행보에 나선 기시다에 대해 아베는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먼저 아베는 지난 12월26일 BS텔레비전 도쿄의 프로그램 《닛케이 일요살롱》에서 “근본적인 방향은 아베노믹스에서 수정해서는 안 된다”며 성장을 중시하는 아베노믹스의 정책기조를 유지할 것을 요구했다. 새로운 자본주의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적인 정책이라고 인식되어 버리면 시장의 반응도 좋지 않을 것”이라며 비판했다. 일본 정치 풍토상 전직 총리가 현직 총리에게 공개적으로 훈수를 두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사례다.

외교·안전보장 정책에서도 아베의 훈수 두기는 이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베이징동계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이 강화되는 가운데 “국익의 관점에서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기시다를 의식한 듯, 아베는 일본도 빨리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며 보이콧 동참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긴장감이 감도는 양안관계(兩岸關係)에 대해서는 “대만 유사(有事)는 일본의 비상사태이자 미·일 동맹의 비상사태이기도 하다”며 대만 유사시 집단적 자위권 행사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했다. 기시다 총리로서는 아베의 이 같은 공개 발언으로 인해 신속하게 내각 차원의 대응책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아베의 공개적인 훈수 두기는 기시다의 최근 ‘脫아베성’ 행보에 위기감을 느낀 아베가 자신의 존재감을 피력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베와 기시다의 대결 구도로 인해 일본 언론계에서는 기시다 취임 3개월 만에 포스트 기시다는 누구일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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