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두나 “《고요의 바다》는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이야기”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08 13:00
  • 호수 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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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딸’로 컴백한 배우 배두나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 《센스8》 등으로 글로벌 배우가 된 배두나가 넷플릭스 시리즈로 다시 돌아왔다. 《고요의 바다》는 필수 자원의 고갈로 황폐해진 근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특수임무를 받고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로 떠난 정예 대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대한민국 시리즈물 최초로 달을 소재로 한 SF 미스터리 스릴러로, 《승리호》가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했다면 《고요의 바다》는 생경한 영역으로 남아있는 달 한가운데 버려진 발해기지를 배경으로 예측 불가한 이야기를 펼쳐 간다.

흥행 성적도 좋다. 1월5일 넷플릭스 글로벌 공식 집계 사이트에 따르면 《고요의 바다》는 공개 2주 만에 넷플릭스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공개 직후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을 받았지만 뒷심을 발휘해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배두나 역시 ‘넷플릭스의 딸’이라는 수식어답게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배두나가 맡은 역할은 우주생물학자 송지안 박사다. 송지안은 다른 대원들이 우주항공국으로부터 받은 특수임무에 매진하는 것과 달리 의문의 사고로 폐쇄된 발해기지의 비밀에 남몰래 접근하는 인물이다. 배두나는 “동명의 단편영화를 보고 감독님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모험을 좋아하고,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고요의 바다》는 2014년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통해 주목받은 동명의 단편영화가 원작이며, 단편을 연출했던 최항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짧은 이야기를 긴 호흡의 시리즈로 확장하기 위해 《마더》 《미쓰 홍당무》의 각본과 《안시성》 《키친》의 각색을 담당했던 박은교 작가가 합류했다. 덧붙여 배우 정우성이 최 감독의 단편영화 《고요의 바다》를 보고 순식간에 매료돼 2016년 개봉한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에 이어 다시 한번 제작에 나서 화제가 됐다. 배두나의 상대역은 공유다. 극 중 공유는 탐사대장 한윤재 역을 맡았다. ‘우주항공국의 레전드’로 냉철하고 절도 있는 모습을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해 냈다. 이뿐만 아니라 이준, 김선영, 이무생, 이성욱이 출연한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의 딸’로 컴백했다(웃음). 소감이 궁금하다.

“넷플릭스의 좋은 점은 콘텐츠 자체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김은희 작가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넷플릭스는 자본만 주지 작품에 관한 코멘트는 주지 않는다.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는 플랫폼이다. 조금 바뀐 게 있다면 이제 순위를 매긴다는 사실이다. 《킹덤》 때만 해도 순위가 없었는데, 배우 입장에서 조금 부담이 생겼다.”

한국형 SF물에 도전했다.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감독님의 단편영화 《고요의 바다》를 봤는데, 몰입도가 상당했다. 기술력이나 과학적인 부분보다 사람의 심리를 쫓는 데 있어 영리하게 SF 작품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한국 예산으로 만드는 SF 작품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감독님의 단편을 보고 이 사람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인터뷰에서 원작에 대한 칭찬을 많이 했다. 원작과 비교했을 땐 어떤가.

“일단 매력이 다르다. 원작은 마치 ‘시’ 같다. 넷플릭스는 시리즈물이다 보니 시보다는 소설에 가깝다. 예산, 자본이 투입됐으니 구현할 수 있는 게 늘어나서 볼거리도 더 많다.”

아무래도 근미래의 이야기, 특히 달에 간 정예 대원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상상에 기대어 연기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힘든 점은 없었나.

“예전에 해외에서 SF물을 찍은 적이 있다. 상상에 기대어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그 전에는 주로 일상 연기를 배우고 해오지 않았나. 한데 그 작품을 하면서 상상력이 필요한 연기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됐다. 덕분에 이번엔 크게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고요의 바다》는 세트 내부가 많이 구현돼 있었다. CG가 거의 없어 상대적으로 몰입하기 편했다.”

달에서의 움직임, 소리, 느낌 등이 화면으로 전달되게끔 연출됐다. 현장은 어땠나.

“달 촬영을 할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헬멧을 쓰면 소리가 안 들리고 웅웅거리기만 한다. 상대방의 대사도, 감독님의 디렉팅도 전혀 안 들린다. 그래서 이어폰을 쓰고 디렉션을 들었다. 공간과 분리되는 효과를 얻었다. 어떻게 보면 진짜 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무전하는 대원들의 이야기만 들리니까 더 몰입됐다.”

지안이라는 캐릭터를 개인적으로 어떻게 분석했는지도 궁금하다.

“애초에 내가 방향을 정하면 감독님과 작가님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서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첫 미팅 때 감독님이 그런 얘기는 한 적이 있다. 22세에 박사학위를 딴 과학자니까 논리적으로 보이게 과학적인 용어를 잘 소화했으면 좋겠다고. 그 외에 별도 디렉팅은 없었다. 혼자서 캐릭터를 상상했고, 또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오히려 모티브를 잡았다. 감독님이 말수가 없고 얼굴이 하얗다. 뭐랄까, 은은한 오타쿠의 느낌이랄까. 감독님의 그런 부분을 보면서 참고를 많이 했다. 지안은 연구실에서 연구만 하고 사회성이 없다. 아, 물론 감독님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웃음).”

《고요의 바다》는 자원 부족, 기후변화, 자원 경쟁, 계급 문제, 연구윤리 등 여러 주제를 관통한다. 작품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뭔가.

“지금 말씀하신 자원 부족, 기후변화, 자원 경쟁, 계급 문제, 연구윤리 등등 다 중요하다. 한데 저는 촬영하는 동안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북극의 빙하 감소, 지구온난화 등 이상 현상들이 일어나면서 미래를 예상할 수 없는 관측들이 있다. 이번 작품을 촬영하며 실제로 ‘지구에서 물이 없어진다면’이라는 상상을 한 적이 있나.

“당연하다. 상상하지 않으면 연기를 못 한다. 《터널》을 찍었을 때도 터널을 지날 때마다 무서웠고, 트렁크에 물을 한 박스씩 싣고 다녔다. 이번 촬영을 하면서도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만 낭비하는 것들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주는 긍정적인 영향 아닐까 싶다.”

혹평이 나온 이유 중 하나가 호흡이 긴 점을 말하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나.

“2년 전쯤 외국에 있을 때 대본을 받았다. 사실 대본을 보기 전에 단편을 보고 반해서 출연을 결심했다. 아, 혹평을 나도 봤다. 상업영화 특유의 자극적인 골든타임 공식이 있는데, 이 작품은 그런 공식을 따라가지 않았다. 이 작품은 고요하다.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영화지 외부에서 파도가 치진 않는다. 자극적인 게 좋으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열일 하는 배우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품에서 몸을 사릴 필요가 없고, 더 많이 부딪히고 경험하는 게 결국 나의 전투력이 될 거라는 생각.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많은 경험을 하고 있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찍는 이유는, 너무 재미있으니까. 각각의 매력이 있다. 해외에서 느끼지 못하는 걸 국내 작품을 하면서 느낀다. 나름 힐링이 되기도 한다. 우리 문화를 공유하는 현장을 느끼는 게 너무 좋다. 물론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는 해외의 현장도 재미있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무척 바쁘게 지냈다. 지금도 나는 장르를 가리거나 역할, 주연, 조연을 따지지 않는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걸 다 할 것이다.”

지난 20년간 한국 콘텐츠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 중심에서 그 변화를 고스란히 느끼며 함께 성장한 배우 중 한 명이다. 소회가 궁금하다.

“1999년도에 영화에 데뷔했다. 운이 좋았던 게 그때가 한국 영화계의 르네상스였다. 이후 변화가 정말 빨랐다. 앞으로 20년 뒤에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 좋은 쪽으로 발전하고 있으니 뭐든 좋다. 일본, 미국, 프랑스 등 많은 나라와 작업하면서 많은 걸 깨쳤고, 시야도 넓어졌다. 자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의미 있는 과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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