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정권에 맞선 ‘거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각계 추모 물결
  • 정성환·조현중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1.1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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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동생도 대주교도 그리고 영화 《1987》 감독도”… 조선대병원 빈소 이틀째 추모 발길
시민·사회단체 “님은 갔지만 어머니 뜻 이어받는 것이 남은 사람들의 사명”
정치권도 일제히 애도 “어머님 헌신 새기고 민주화·인권 가치 지켜나가겠다”
장례 이튿날인 10일 오전.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빈소가 차려진 광주 조선대학병원 장례식장에는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이른 아침부터 각계 인사와 추모객 발길이 이어졌다. 빈소 내부에는 문재인 대통령, 김부겸 국무총리 등이 보내온 근조화환이 자리했다. 근조 화환이 장례식장 주변에 빼곡히 늘어선 가운데 직접 빈소를 찾지 못한 각계 인사와 단체가 보낸 근조화환이 속속 도착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장례 이튿날인 10일 오전,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빈소가 차려진 광주 조선대학병원 장례식장에는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이른 아침부터 각계 인사와 추모객 발길이 이어졌다. 빈소 내부에는 문재인 대통령, 김부겸 국무총리 등이 보내온 근조화환이 자리했다. 근조 화환이 장례식장 주변에 빼곡히 늘어선 가운데 직접 빈소를 찾지 못한 각계 인사와 단체가 보낸 근조화환이 속속 도착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장례 이튿날인 10일 오전.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빈소가 차려진 광주 조선대학병원 장례식장에는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이른 아침부터  각계 인사와 추모객 발길이 이어졌다. 시민·사회단체 조문객들은 고인의 민주화투쟁 시절 고락을 같이 한 일화를 언급하며 “고인의 뜻을 이어 받겠다”고 애도를 표했다. 정치권 인사들도 빈소를 찾아 고인의 생전 모습을 회고했다. 빈소 내부에는 문재인 대통령, 김부겸 국무총리 등이 보내온 근조화환이 자리했다. 각계에서 보내온 조기와 근조 화환이 장례식장 주변에 빼곡히 늘어선 가운데 추가로 근조화환이 속속 도착했다. 

 

민주열사 유족·시민사회 “어머니의 뜻 이어가겠다”

1970년 노동환경 개선을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 씨는 이날 홀로 배 여사 빈소를 찾아 고인을 기렸다. 헌화와 분향을 마친 전씨는 상주들의 손을 맞잡거나 포옹하며 소중한 가족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의 심정을 위로했다. 전씨는 “어머니, 이제 한열이도 만나고 5·18 때 금남로와 도청을 사수했던 민주주의 혁명군도 만나시기를 바란다”며 “어머니의 힘찬 목소리를 잊지 않겠다”고 애통한 심정을 취재진에게 밝혔다. 

이어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가 빈소를 찾았다 김 대주교는 “배은심 여사께서 하늘에서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할 것”이라며 “우리나라 민주화는 민주 열사들의 피와 땀의 세례로 우뚝 설 수 있게 됐다. 장한 민주열사를 아들로 낳아주신 여사님께 삼가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 씨가 10일 배은심 여사 빈소가 마련된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배 여사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로 전날 오전 향년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연합뉴스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 씨가 10일 배은심 여사 빈소가 마련된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배 여사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로 전날 오전 향년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연합뉴스

송선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관계자도 빈소를 찾아 배 여사를 추모했다. 송 위원장은 “민주화운동을 하는 모든 분에게 힘과 용기를 주셨는데 갑자기 떠나셔서 한없이 슬프고 괴롭다”며 “남은 사람들이 어머님께서 못다 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날 황망한 소식을 접하자마자 가장 먼저 빈소에 달려온 민주열사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며 비통해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박선영·표정두·류재을 열사의 유족들은 빈소에 달려와 오열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아들 이한열 열사가 산화한 뒤 35년간 국가폭력 피해를 막고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함께 동지로 활동한 이들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과 5·18 민주화운동 박관현 열사의 누나 박행순(72)씨 등은 지난달 말까지도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셨던 배 여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박행순 씨는 “한열이가 광주에 묻혀 있어 광주를 떠나지 못하면서도 전국 어디든 어머니를 찾는 곳이면 끝까지 함께 하셨다”며 “아들 못지않게 큰일을 하고 가신 어머니를 아들이 하늘에서 두 팔을 벌려 반겨 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고인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광주NCC회장 등을 역임하며 고인과 30여년간 민주화투쟁 여정을 함께한 장헌근 목사는 “배 여사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투쟁한 거리의 어머니”라며 “님은 가셨지만 한열이 어머니 뜻을 함께 한 분들이 앞으로 연대해서 민주화 완성인 통일을 이루는 것이 남은 사람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9일 오후 고(故) 배은심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배 여사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로 이날 별세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9일 오후 고(故) 배은심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배 여사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로 이날 별세했다. ⓒ연합뉴스

정치권 일제히 애도

정치권도 일제히 고인을 추모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오후 광주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6월 민주항쟁의 상징인 이한열 열사와 아들의 못다 이룬 꿈을 이어간 배은심 여사의 희생과 헌신이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만들었다”며 “고인의 평화와 안식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각 정당 대선후보 등 정치권의 추모행렬도 이어졌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전날 오후 늦게 이한열 열사의 배은심 여사의 빈소에서 “평생 자식을 가슴에 묻고 고통 속에 사셨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며 “이제 이 세상은 우리들께 맡기고 편안하게 영생하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빈소에 머물고 있던 송갑석·이형석 의원, 이용섭 광주시장과 함께 자리에 앉아 고인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 후보는 “(배 여사님은) 저를 볼 때마다 아들 보는 것 같다고 반가워하셨다”며 “"지난번에 전화를 드렸을 때만 해도 정정하셨는데…가슴 아픈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 후보는 약 16분가량 장례식장에 머문 뒤 다음날 일정을 위해 상경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는 이날 빈소를 찾아 “어머니가 온몸으로 실현하려 했던 민주주의가 더 꽃피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추모했다. 또 고인의 염원이었던 민주유공자법 제정에 대해 "국민들께 이 법의 핵심이 전달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국회에서 유가족들의 뜻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논의하겠다"고 했다.

장례 이튿날인 10일 오전.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빈소가 차려진 광주 조선대학병원 장례식장에는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이른 아침부터 각계 인사와 추모객 발길이 이어졌다. 빈소 내부에는 문재인 대통령, 김부겸 국무총리 등이 보내온 근조화환이 자리했다. 근조 화환이 장례식장 주변에 빼곡히 늘어선 가운데 직접 빈소를 찾지 못한 각계 인사와 단체가 보낸 근조화환이 속속 도착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장례 이튿날인 10일 오전.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빈소가 차려진 광주 조선대학병원 장례식장에는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이른 아침부터 각계 인사와 추모객 발길이 이어졌다. 빈소 내부에는 문재인 대통령, 김부겸 국무총리 등이 보내온 근조화환이 자리했다. 근조 화환이 장례식장 주변에 빼곡히 늘어선 가운데 직접 빈소를 찾지 못한 각계 인사와 단체가 보낸 근조화환이 속속 도착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에 참여한 이낙연 전 대표, 김두관 의원 등도 조문했다. 야권에서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를 대신해 부인 김미경 서울대학교 교수가 권은희 원내대표와 함께 배 여사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오후에는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새로운물결 김동연 대선 후보가 빈소를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등도 이날 빈소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김창룡 경찰청장도 전날 빈소를 방문해 “고인은 생전에 경찰에 대해 질책도 하셨지만 조언도 아끼지 않으셨다”며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헌신하신 뜻을 새겨 민주·인권을 최우선시하는 경찰 활동을 정착시키겠다”고 말했다.

이날 배 여사 빈소에는 이한열 열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1987’로 인연을 맺은 장준환 감독도 찾아왔다. 제주도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진 장 감독은 이날 제작사 관계자와 함께 빈소를 방문했다. 그는 분향을 마치고 나서 1시간가량 빈소에 머물며 고인과의 추억을 되새겼다. 전날에는 빈소가 오르자마자 영화 ‘1987’의 작가 김경찬 씨, 이한열 열사 역할을 맡은 배우 강동원 씨도 이날 빈소를 찾았다.

배 여사의 아들인 이한열 열사의 모교 후배도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광주 진흥고등학교 2학년생이자 이한열 장학생‘으로 선발된 A군은 이날 담임 선생님과 함께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A군은 이 열사의 정신을 이어가는 대학생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유가족에게 다짐했다.

 

병세 악화해 향년 82세 별세…광주서 ‘사회장’ 엄수

지난 3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배 여사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7일 퇴원했다가 다시 쓰러져 이날 오전 5시 28분 광주 조선대병원에서 향년 82세로 별세했다. 배 여사는 지난 3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시술을 받은 뒤 지난 7일 퇴원해 광주 동구 지산동 집으로 돌아왔다.

딸 3명이 돌아가면서 어머니를 보살폈고 주변인과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누는 등 건강을 회복한 것처럼 보였으나 이날 새벽 다시 쓰러졌다. 배 여사의 딸이 어머니가 쓰러진 것을 발견하고 병원에 옮겼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유족들은 질병에 의한 사망으로 보임에 따라 부검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한열기념사업회와 광주전남추모연대,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사회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오는 11일 발인과 노제를 지낸 뒤 유족의 뜻에 따라 아들 이한열 열사가 묻혀 있는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이 아닌 일반묘역(제3묘역)에 있는 남편 이봉섭씨 곁에 안장한다.

6월 항쟁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이한열 열사와 함께 투쟁했고 열사의 장례식에서 영정사진을 들었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배은심 여사 장례식에서 호상(護喪)을 맡았다. 서울 이한열 기념관 3층과 연세대 한열동산에도 분향소가 마련된다.

장례 이튿날인 10일 오전.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빈소가 차려진 광주 조선대학병원 장례식장에는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이른 아침부터 각계 인사와 추모객 발길이 이어졌다. 호상을 맡은 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장례 이튿날인 10일 오전.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빈소가 차려진 광주 조선대학병원 장례식장에는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이른 아침부터 각계 인사와 추모객 발길이 이어졌다. 호상을 맡은 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민주화 시위서 아들 잃고 35년간 ‘민주주의의 어머니’로 헌신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배 여사는 아들 이한열 열사가 1987년 6월 9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것을 계기로 민주·인권 운동에 헌신했다. 이한열의 아버지이자 배 여사의 남편 이병섭 씨는 자식을 잃은 슬픔을 안고 살다가 10여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배 여사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에 참여해 민주화 시위·집회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힘을 보탰다. 그는 1998년부터 유가협 회장을 맡아 422일간 국회 앞 천막 농성을 벌여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끌어냈다.

고(故) 전태일 열사의 모친인 고(故) 이소선 여사와 고(故) 박종철 열사의 부친 고(故) 박정기 씨 등과 함께였다. 2009년에는 용산참사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가 용산범대위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배 여사는 이러한 민주화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6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고인은 지난달 말까지도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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