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호 “로맨스 사극의 인기 비결? 느림의 미학”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15 13:00
  • 호수 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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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인기의 계절’ 맞은 그룹 2PM 멤버이자 배우 이준호

그룹 2PM 멤버이자 배우 이준호(31)는 10여 년 전 예능 《강심장》에 출연했을 당시 ‘인기는 계절’이라는 발언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닉쿤, 옥택연 등 다른 멤버들에 비해 활동이 다소 적어 조바심이 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계절이 흘러가듯이, 각자가 각기 다른 시기에 주목받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내 계절은 조금 늦게 올 뿐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21세였다.

그랬던 그가 아이돌 14년 차에 드디어 ‘자신의 계절’을 맞이했다. 최근 종영한 MBC 《옷소매 붉은 끝동》(이하 《옷소매》)으로 ‘2021 MBC 연기대상’에서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거머쥔 것이다. 인생 연기라는 호평과 함께 뭘 해도 잘 풀린 행보로 ‘준호 코인’이라는 수식어까지 생겼다.

《옷소매》는 왕세손 이산(이준호 분)과 궁녀 성덕임(이세영 분)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로 강미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마지막 회가 시청률 17.4%(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순간 최고 19.4%를 기록하며 지난 2018년 10.5%를 기록한 《내 뒤에 테리우스》 이후 3년여 만에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한 MBC 드라마다. MBC의 자존심을 지켜줬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극 중 이준호는 정조 이산 역을 맡았다. 이산은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영조의 손자로 비애를 겪으면서, 자신을 위로해 주는 덕임(의빈 성씨)과의 애틋한 사랑을 보여줬다.

드라마의 신드롬과 함께 준호앓이도 심상치 않다. ‘준호 입덕 완결편’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인생 연기라는 호평 일색이지만 정작 그는 “욕심만큼 연기가 따라주지 못했다. 더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며 큰 상을 받은 직후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온라인 인터뷰를 통해 올겨울 여심을 저격한 신드롬의 주인공 이준호를 만났다.

ⓒJYP 엔터테인먼트 제공

먼저 드라마 종영 소감부터 말해 달라.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운을 느끼는 중이다. 이제야 여유가 생겨 드라마의 공식 영상들이 있는 온라인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팬 여러분의 마음을 살펴보게 된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면 괜히 공허해진다. 현장이 너무 즐거워서 더 그런 것 같다. 촬영을 하면서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혹 들기도 했었다. 과거에 언급한 ‘준호의 계절’이라는 얘기를 많이들 하시는데, 긴 시간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고, 이렇게 큰 사랑을 받게 돼 기쁘다.”

이번 작품으로 MBC 드라마의 자존심을 살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과찬이다. 감독님과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멋진 이야기를 끝까지 힘 있게 끌어주셨다. 실질적으로 자존심을 세운 건 감독님이시다.”

이번 작품을 통해 큰 상도 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칭찬이나 댓글이 있나.

“역시 그 인물처럼 보인다고 하는 댓글인 것 같다. 행복하다. 그렇게 보이려고 오랜 시간 노력하고 준비하지 않았나. 내게는 극찬이다.”

‘정조’의 세대교체와 함께 정조의 계보를 새로 썼다는 평가도 있다.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다양한 책을 통해 공부를 해도 그 사람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인물을 표현하는 건 오롯이 내 몫이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책을 통해 접한 건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선이었다.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했고, 배민정신으로 나라를 통치하면서도 스스로와 궁인들에게 엄격했던, 그러나 또 궁인들을 살갑게 챙겼던 왕이라는 정도였다. 내 성격과 닮아있는 부분을 찾으려 노력했다. 청년부터 결혼 후, 중년까지 연기해야 했기에 눈빛과 말투, 걸음걸이, 말의 속도로 차이를 주려고 했고, 말년의 정조를 표현할 땐 온몸의 힘을 뺐다.”

로맨스 사극이 주는 설렘의 크기가 일반 로맨스보다 더 큰 것 같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급하지 않다는 점! 주인공들의 동작 하나하나부터 마음을 표현하기까지의 시간이 길어서인지 연기를 하면서도 그 느낌이 강렬했다. 상대의 얼굴에 손을 댈 수 없었던 마음 또한 소중히 생각되더라. 실제로 로맨스치고는 스킨십이 적었지 않나. 서로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모습이 시청자들을 더 애타게 만드는 것 같다. 덧붙여 왕과 궁녀의 사랑이라는 점도 더 애달프게 느껴졌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로맨스 사극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많은 여성분의 근심을 잊게 해준, 시의적절한 작품이었다는 평가다.

“생각해 보면 작품으로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단순히 로맨스 사극이 주는 힘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구구절절한 사랑은 어느 시대에나 큰 힘을 가지고 있고, 더구나 실제 있었던 일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어서 더 큰 사랑을 받은 것 같다. 더 아름답게 느끼셨던 것 같다. 그런 부분 때문에 연기자 입장에서도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연기할 수는 없었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도 궁금하다.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힘이 있는 대본을 선택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자백》이 그랬다. 앞으로도 여러 장르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사극을 다시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의 경우도 대본이 주는 힘이 굉장했다. 재미있고 또 빠르게 읽혀서 마치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상대역인 이세영씨와 연말 연기대상에서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했다.

“연기하면서 정말 편안했다. 초반에 촬영장에서 ‘베스트커플상’만은 한번 타보자, 하고 농담을 했는데 진짜 결실이 이뤄져서 행복했다. 흔한 말로 케미가 잘 맞았구나, 많은 분이 사랑해 주셨구나라고 느껴졌다.”

목욕탕 신도 많은 화제를 낳았다.

“식단 조절을 열심히 했다. 한데 촬영이 연기돼 식단 조절을 더 연장해야 했는데, 나중엔 목욕신이 끝난 뒤에도 익숙해져 계속 식단 조절을 이어갔다.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는 닭가슴살과 고구마를 차 안에서 먹으며 대본을 봤다.”

과거에 비해 한층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현장에서 감정선 유지를 어떻게 했는지도 궁금하다.

“확실히 과거보단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여태까지 왜 현장에서 모두를 즐겁게 해주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을 정도다. 현장에서 집중하는 편이라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데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에 그 감정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현장에서 여유로울 수 있었던 큰 이유는 상대역인 ‘덕임’이란 인물 때문인 것 같다. 극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이다.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 산이가 편안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세영씨가 워낙 긍정적이고 웃음이 많다. 그래서 덩달아 나도 웃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옥택연씨나 황찬성씨 등 연기를 병행하는 2PM 멤버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사실 평소에는 세세하게 안부를 묻거나 연기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 단체카톡방이 있는데, ‘파이팅해라’ ‘끝나고 보자’ 식의 간단한 얘기들 위주로 하는 편이다.”

촬영하면서 멤버들이 보낸 커피차와 함께 서로 주고받은 문구들이 재미있어 화제가 됐다. 이번에 준호씨가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도 멤버들이 누구보다 기뻐했다. 2PM이 다 같이 무대에 설 계획이 있나.

“마음도 계획도 늘 있다. 한데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쉽게 약속을 드릴 수가 없다. 최대한 빨리 좋은 노래, 좋은 퍼포먼스로 나오겠다. 모든 게 완벽하게 준비됐을 때 인사드리고 싶다.”

이번 연기대상에서 ‘안녕하세요, 2PM의 이준호입니다’라는 인사말이 화제가 됐다. 2PM의 오랜 팬들에게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사실 아이돌 출신 배우들은 편견과 싸워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난 배우 인생 9년을 되돌아보면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제게는 가장 자연스러운 인사말이다. 제 머릿속에 박혀 툭 치면 저절로 나오는 말이니 큰 의미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웃음). 덧붙여 사실 저는 편견에 대해 의식하지 않는 편이다. 결국 연기를 잘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프레임과 편견을 의식하지 않고, 앞으로도 잘 해내고 싶다.”

올해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나.

“촬영을 하면서 운동을 못 해 근육이 줄었다. 잃어버린 근육을 되찾고 싶다(웃음). 일적으로는 글쎄, 잘 모르겠다. 이산을 비워낸 뒤에야 다음 스텝을 깊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공식 스케줄은 팬 미팅이다. 이준호라는 사람과 편안하게 호흡하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덧붙이자면, 지난해 너무 큰 사랑을 받았고, 이제야 내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 열심히 해왔다. ‘코인’이란 말을 해주셨는데 좋은 말이면서도 무섭기도 하다. 좋은 ‘와인’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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