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거장이 그려낸 사랑과 욕망이라는 파국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16 11:00
  • 호수 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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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리들리 스콧의 《하우스 오브 구찌》

할리우드 두 거장 감독의 신작이 1월12일 나란히 공개됐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리들리 스콧 감독의 《하우스 오브 구찌》. 두 작품 모두 가장 솔직한 형태의 사랑과 욕망의 서사시라는 공통점이 있다. 과연 감독의 이름값이 아깝지 않은 작품들이다.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한 장면ⓒ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사랑은 분열을 봉합할 수 있을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도 아직 ‘처음’이라는 게 존재한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감동 드라마, 호러, SF 등 장르 불문 걸작을 만들어온 그의 첫 뮤지컬 영화다. 동명 원작은 1950년대 말 브로드웨이 초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명작 뮤지컬로 손꼽히는 작품이며, 1961년 로버트 와이즈와 나탈리 우드의 주연으로 한 차례 영화화된 바 있다.

이야기의 골자는 1950년대 말 뉴욕 웨스트 사이드의 지역 갈등이다. 산후안 힐과 링컨 광장을 중심으로 백인들과 푸에르토리코 출신을 비롯한 이민자들 사이의 신경전은 공권력 개입이 무색할 정도로 극에 달해 있다. 지역 토박이인 백인 청년 집단 ‘제트파’와 푸에르토리코 청년 집단 ‘샤크파’ 사이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무력충돌이 일어난다. 여기에 고전 러브 스토리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사가 결합한다. 원수지간인 캐플릿과 몬태규 두 가문의 남녀가 비극적 사랑에 빠졌듯, 제트파의 핵심 인물 토니와 샤크파 대장 베르나르도의 여동생 마리아 역시 서로에게 강렬하게 이끌리고 만다.

원작 뮤지컬이 처음 등장했을 때 어퍼 웨스트 사이드 지역은 노동자, 저소득층과 동의어 같았다. 작곡가 레너드 번스타인과 작가 아서 로렌츠는 당시 신문 기사에서 중요하게 다룬, 일종의 갱단을 조직하는 청년들의 사회문화 현상에 착안해 이 작품을 썼다. 스필버그 감독은 젊은 시절 자신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이 뮤지컬의 핵심 키워드들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민자 혐오, 그릇된 애국심, 문화적 갈등은 오히려 60년 전보다 오늘날 더욱 문제적으로 느껴지는 소재들이다. 분열을 통합하고 충돌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 새로운 세대를 위한 재해석이 필요한 때라는 감독의 판단은 스스로 리메이크 영화의 메가폰을 잡게 만들었다.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한 장면ⓒ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한 장면ⓒ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한 장면ⓒ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한 장면ⓒ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실제로 《엔젤스 인 아메리카》 등 걸작 연극들의 각본과 더불어 《뮌헨》(2005), 《링컨》(2012)으로 스필버그와 작업했던 극작가 토니 쿠슈너가 합류한 이번 영화는 시대 변화에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제트파는 아예 푸에르토리코 국기가 그려진 벽화를 훼손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웨스트 사이드는 이민자들을 향한 인종 차별이 만연할 뿐 아니라 젠트리피케이션 역시 심각해진 재개발 지역으로 묘사된다. 이 때문에 공간 배경은 미국 뉴욕을 떠나 유럽의 분열적 상황과 지역 갈등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상당 분량을 차지하는 스페인어 대사를 의도적으로 번역하지 않은 점, 1961년 버전 영화에서 아니타를 연기한 리타 모레노에게 원작에는 없는 발렌티나 역을 맡겨 두 갈등 집단의 방만을 꾸짖고 화해를 중재하는 인물로 삼은 점, 원작에서 톰보이로 묘사된 제트파의 애니바디스를 트랜스젠더 캐릭터로 바꿔 논바이너리(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이분법에 속하지 않음) 배우 이리스 메나스가 연기하게 했다는 점 등의 변화가 눈에 띈다.

세트를 벗어나 실제 거리 촬영을 원칙으로 삼은 뮤지컬 시퀀스에서는 생동감이 넘쳐난다. 인물들의 춤과 노래를 타고 청년들의 치기 어린 충동과 사랑, 젊음의 에너지가 스크린 밖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토니를 연기한 안셀 엘고트, 마리아를 연기한 레이첼 지글러뿐 아니라 베르나르도의 연인 아니타를 연기한 아리아나 데보스, 제트파의 공동 수장이자 토니의 절친한 친구 리프 역의 마이크 파이스트 등 신예들의 활약이 거장의 부름 아래 자신의 능력을 펼친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의 포스터ⓒ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탐욕의 이름 《하우스 오브 구찌》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시선은 세계적인 명품 구찌(Gucci)로 향했다. 브랜드 탄생 스토리가 아니라, 가족기업의 왕국이라는 전설을 써내려가던 구찌 가문의 몰락 이면을 다룬다. 2001년 사라 게이 폴든이 출간한 《더 하우스 오브 구찌: 어 센세이셔널 스토리 오브 머더, 매드니스, 글래머, 앤드 그리드(The House of Gucci: A Sensational Story of Murder, Madness, Glamour, and Greed)》가 원작이다.

중심에는 파트리지아 레지아니라는 문제적 인물이 있다. 회사의 창립자 구치오 구찌의 손자며느리로 가문에 입성한 그는 기업 경영에는 관심이 없던 남편 마우리치오 구찌를 부추겨 가업을 잇도록 만든다. 이후 파트리지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안 식구들의 회사 지분을 차지해 마우리치오를 최대주주로 만들었지만, 이들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 두 사람이 이혼한 뒤인 1995년, 마우리치오는 피격 사망했으며 파트리지아는 살인청부 혐의로 18년을 복역했다. 극화된 내용이 아닌 실화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의 포스터ⓒ·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의 한 장면ⓒ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영화는 전통적 3막 구조 안에서 파트리지아(레이디 가가)와 마우리치오(아담 드라이버)의 만남부터 비극적 최후까지 짜임새 있게 그려 나간다. 재벌가를 배경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천박한 부의 세계, 추악한 범죄를 다룬다는 점에서 감독의 전작 《올 더 머니》(2017)와의 유사점이 엿보인다. 범죄물 성격을 띠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탐욕과 유혹이 만든 쓰디쓴 ‘돈의 맛’을 재연한 드라마에 가깝다. 파트리지아는 권력과 자부심에 사로잡혔고, 결국 그의 욕망은 모두의 비극을 부른다. 영화에 등장하진 않지만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자전거를 타고 웃는 것보다 롤스로이스를 타고 우는 게 낫다”는 명언 아닌 명언을 남긴 바 있다.

영화화를 위한 각색은 실제 구찌 가족의 즉각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다만 악녀를 중심으로 다시 쓴 가문의 이야기는 분명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영화 전체에 야만적이고 동물적이기까지 한 에너지를 불어넣은 레이디 가가의 연기 덕분이기도 하다. 다만 그는 연기를 위해 파트리지아를 만나는 일을 거부했으며 “살인을 저질렀다고 여겨지는 인물을 미화하고 싶지 않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영국판 ‘보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속적으로 불운한 상처를 입었고, 악착같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던 여성에 대한 존중을 표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때론 영화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혼재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유머와 긴장을 조율하는 관록의 연출은 ‘구관이 명관’임을 매 순간 넉넉하게 증명해 낸다.

시상식의 단골손님으로

두 영화는 오는 3월말 열릴 아카데미시상식 레이스가 시작되자마자 각종 시상식에서 유력하게 거론되는 중이다. 특히 연기 파트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는 중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1월9일(미국 현지시간) 열린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작품상, 여우주연상(레이첼 지글러), 여우조연상(아리아나 데보스)까지 3관왕을 차지하며 수상 릴레이에 청신호를 켰다. 《하우스 오브 구찌》의 레이디 가가 역시 골든글로브 시상식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를 비롯해 각종 시상식에서 이름이 호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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