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병원이 되고, 피트니스센터가 된다 
  • 고종관 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 (kojokw@hanmail.net)
  • 승인 2022.01.17 10:00
  • 호수 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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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 CES 등장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기술들
‘피 안 뽑고 혈당 재는 옷’ 최고 혁신상
“2027년 시장 규모 580조원”

발 매트라고 얕보지 마라. 흔한 욕실 깔개가 아니다. 대형 TV 화면보다 작은 면적에 족압을 측정하는 센서가 무려 4000개나 깔려 있다. 당신이 발판 위에 올라가는 순간 매트는 몸무게와 몸의 밸런스를 측정하는 건강계기판이 된다. 이른바 스마트 매트. 할머니에겐 낙상 위험을, 아빠와 엄마에겐 척추 건강과 비만을 경고한다.

이뿐인가. 스마트 거울 아르테미스는 턱밑에 생긴 검은 점이 의심스럽다며 피부과 진료를 권한다. 머리카락 톤을 밝게 하면 예쁠 것이라고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1월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종료된 세계가전박람회 ‘2022년 CES’에서 기술혁신상을 받은 프랑스 바라코다 데일리 헬스텍사의 ‘미래의 욕실’ 일부 얘기다.

ⓒ미러 홈페이지 화면캡처
사용자가 미러의 화면을 보며 운동을 따라 하고 있는 모습ⓒ미러 홈페이지 화면캡처

요즘 건강 관리 시장의 화두는 홈코노미

요즘 건강 관리 시장의 화두는 디지털 헬스케어로 무장한 홈코노미다. 1인 가구 증가와 재택근무,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사회적 결과물이다. 집이 건강 진단을 할 수 있는 병원이 되고, 운동을 하는 피트니스센터로 바뀐다.

2017년을 시작으로 미국 FDA(식품의약국)를 통과한 디지털치료제는 35~40개에 이른다. 우울증, ADHD, 치매, 수면, 식이 조절, 혈당 관리, 암환자의 증상 완화까지 전방위로 진화하고 있다. 이번 CES에선 미국 스타트업 모라리 메디컬(Morari Mediacal)이 개발한 남성을 위한 해피드럭도 소개됐다. 회음부에 패치를 부착하면 이곳에서 전기신호가 발생해 성기능을 45% 개선한단다. 또 다른 스타트업인 엘리톤은 임산부들을 위한 요실금 치료기를 개발했다. 역시 같은 원리로 늘어진 골반저 근육을 강화시킨다.

홈트레이닝도 디지털 기술 도입이 한창이다. 코로나 감염이 걱정돼 물리치료실 가기가 꺼려진다면 디지털치료제 카이아 헬스(Kaia health) 애플리케이션을 깔면 된다. 휴대폰에서는 가상의 트레이너 ‘모션 코치’가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휴대폰 카메라가 이용자의 움직임을 스캔해 동작을 분석·평가한 뒤 운동방법을 가르쳐주면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 컴퓨터 비전 기술이 핵심이다.

스마트 홈트레이닝의 대표주자는 미국의 스타트업 미러(Mirror)다. 거울처럼 생긴 대형 스크린을 터치하면 신나는 음악과 함께 트레이너가 나타난다. 코치의 동작은 물론 자신의 모습도 거울에 비춰주기 때문에 정확하게 동작을 따라 할 수 있다. 근력운동이나 타이치, 요가, 복싱, 스트레칭 등 1만 종류의 운동법과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소모 칼로리와 심박수 등 운동량을 화면으로 실시간 볼 수 있다. 거울 뒤에 운동기구가 내장돼 있어 패키지 구성에 따라 가격이 100만원을 호가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매출이 배 이상 늘었다.

국내에서도 홈트를 겨냥한 스타트업들이 닻을 올렸다. 올댓비젼이 곧 출시할 ‘스마트 피트니스 미러’는 사용자의 체성분과 체력, 운동기록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최적화한 맞춤형 운동처방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학생이 창업한 럭스랩은 저주파 진동을 활용한 피트니스 매트 럭스소닉핏을 선보여 CES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운동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압전필름을 깔아 10~20Hz의 저주파 진동을 발생케 하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다. 운동효율을 30% 높일 뿐 아니라 앱을 통해 건강 정보를 관리할 수도 있다.

언택트 메디컬 제품들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비대면이 일상화하면서 자고 나면 새로운 기술이 나올 정도로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혈압과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들. 평생 관리하지 않으면 심·뇌혈관질환 등 중증 질환으로 이환돼 삶의 질이 떨어지고, 막대한 의료비가 지출되는 생활습관병들이다.

오므론 헬스케어 앱ⓒ
오므론 헬스케어 앱ⓒ오므론 헬스케어

‘디지털 헬스케어’ 성패의 관건은 기술 아니라 규제

애보트(Abbott)는 원래 병원에 진단키트를 공급하는 시약 전문회사다. 하지만 올해 CES에선 전자기기 5개 제품이 혁신상을 받았다. 이는 전통적인 의료기업들이 병원 밖으로 행군하는 헬스케어 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애보트 회장인 로버트 포드는 이번 CES 기조연설에서 링고(Lingo)라는 바이오 웨어러블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공개해 이목을 끌었다. 링고는 체내 포도당이나 케톤, 젖산 등 생체물질의 변화를 측정해 건강 관리를 돕는 웨어러블 기기다. 올해는 혈액을 뽑지 않고 혈당을 측정하는 ‘프리스타일 리브레3’를 출시해 CES 최고혁신상을 거머쥐었다. 14일 동안 혈당을 연속 모니터링할 뿐 아니라 지금까지 나온 당뇨측정기 중 가장 작고 얇아 사용자 편의성을 최대한 높였다.

일본의 오므론 헬스케어(Omron Healthcare)는 1973년 디지털 혈압측정기를 시장에 내놓은 뒤 최근까지 110개국 누적 판매량 3억 개를 기록한 회사다.

하지만 오르론은 더 이상 혈압계를 생산·판매하는 굴뚝사업에 머무르지 않는다. 올해 내놓은 상품인 ‘오므론 커넥트 2.0’ 앱을 보면 회사 전략이 제품 판매에서 플랫폼 사업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측정한 환자의 혈압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심근경색과 뇌졸중을 예측해 주는 비즈니스를 한다. 매달 환자로부터 일정액의 돈을 받는 구독경제로, 의사와 연결하고,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수많은 고혈압환자를 가입시켜 ‘심·뇌혈관질환 제로시대’를 여는 것이 이 회사의 목표다.

이 같은 원격 혈압 모니터링 기술은 우리나라도 확보하고 있다. 예컨대 2020년 삼성전자는 갤럭시 워치에 탑재하는 ‘삼성헬스 모니터 모바일 앱’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받았다. 스마트 워치로 측정된 혈압을 보며 스스로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다.

문제는 혈압 정보를 의사가 공유해 환자에게 위험을 예고하고, 맞춤식 정보를 제공하는 데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사례는 앞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경쟁이 기술보다 규제와 사용환경에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의사들이 수용하지 않고, 정부가 규제의 칼로 의료 이용을 제한한다면 시장이 형성될 수 없는 것이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세계 ‘디지털 헬스산업’ 규모는 2020년 약 170조원에서 2027년 580조원으로 급성장이 예상된다. 시장이 커지는 만큼 만성질환 관리를 비롯한 건강증진, 가정용 조기진단기 개발 등 재택 건강 관리 기술의 혁신 또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사라진 시장에서 차세대 먹거리인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승자가 되는 길은 누가 소비자 이용 중심으로 시장환경을 만드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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