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법으로 본 김정은의 불꽃놀이 [쓴소리곧은소리]
  •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 (songw2000@daum.net)
  • 승인 2022.01.24 08:00
  • 호수 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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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때문”으로 둘러댈 수 없는 내부 정책 실패에 대한 두려움 커
문 대통령을 괘씸하게 여겨…히틀러도 ‘기적의 무기’에 끝까지 집착

북한을 연구하며 가진 접근법의 하나가 관심법(觀心法)이다. 수령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그의 말이 곧 법이자 총알인 사회가 북한이다. 수령이 벌이는 행동과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혹은 향후 수령의 행태를 예측하기 위해 수령의 속마음을 짐작해 보려는 것이다. “내가 만약 김정일이라면” “내가 만약 김정은이라면”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이다. 관심법을 통해 나름 현상을 설명하거나 예측할 수 있었다. 2022년 1월부터 연일 탄도탄을 쏘아올리는 김정은의 심정을 들여다본다.

잠이 오지 않는다. 문제는 경제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주체경제의 구조적 문제야 어쩔 수 없다. 사상을 바꿀 수 없다. 핵무력은 체제의 안전판이자 근본인데 폐기란 있을 수 없다. 적당한 동결을 미끼로 들씌워진 대북 제재를 적당히 풀어야 하는데 남쪽과 달리 미국 대통령은 간단치 않다. 꿈쩍을 않는다. 미국을 구슬리기 위해 세 번이나 만나주고, 평양 시민 15만 명이나 모아주었는데 ‘미국 때문에’를 핑계로 남쪽 대통령 문재인은 입을 다물고 있다. 대미 설득 능력도 의지도 없는 문재인의 말을 믿었던 자신이 부끄럽다. 미국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문재인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는 그가 괘씸하기 그지없다. 분단 민족 간 만남이란 특수성을 주장하며 대북 제재 속에서도 금강산 관광 정도는 뚫어줄 줄 알았다. ‘삶은 소대가리’라 퍼부어도 분이 식지 않는다.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로 인한 경제난이야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고, 그 역시 ‘미국 때문에’라고 책임을 미국에 미룰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까지 미국에 전가할 수는 없다. 그나마 있는 자원을 퍼부어 동해안 원산 일대, 평양 근교, 백두산 일대에 조성한 관광단지는 파리만 날리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역병까지 관광의 씨를 말리고 있다. 숨통을 트기 위해 탄도탄 불꽃놀이를 한다. 수령의 위대함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신민(臣民)으로서의 자긍심을 주민들에게 심고, 고통과 고난의 원흉이 미국과 그 앞잡이들에 있음을 상기·환기시킨다. 당분간 지속할 수밖에 없다.

ⓒ조선중앙통신 연합
북한 국방과학원이 1월11일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성공시켰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조선중앙통신 연합

대대적으로 조성한 관광단지에 파리만 날려

남쪽이야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때문인지 알아서 기는 문재인이다. 도발이라고 말도 못 하고, 남조선 구석구석을 일순간에 강타할 다양한 탄도탄을 날려도 위협이 아니라 우려라 하고, 대화에, 다시 한번 자신의 손을 잡아보고자 몸부림치는 문재인이다. 남쪽 대중매체는 자신의 홍보 수단이다. 탄도탄을 날릴 때마다 앞다퉈 호들갑스레 자신의 의도를 분석하고 성능을 횡설수설 포장해 준다. 대문짝만 한 자신의 사진은 기본이다. 모두 공짜다. 남조선발(發) 스리쿠션 선전선동, 자신의 위대함을 주민에게 각인시키는 데 더할 나위 없다. 북쪽 매체 수십 배의 효과다.

지지율이 형편없이 떨어진 바이든 대통령에게 오는 11월 중간선거 승리는 매우 절박하다. 미국 내 여론을 더 흔들어야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변죽을 잘 울려주고 있다. 쇼를 중단할 수 없다. 이판사판이다. 더 밀어붙여야 한다. 효과는 남쪽에서 즉시 왔다. 이재명 후보가 통일의 현실적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소통과 교류협력, 공존과 공동 번영을 계속 확대·발전시키겠다고 공표했다. 통일부의 명칭도 남북협력부, 평화협력부로 변경을 고려한다니 기특하기 그지없다.

이재명이 대권을 잡으면 문재인 몫까지 수금(收金)해야 하니 그에게 지금 힘을 실어줘야 한다. 탄도탄의 불꽃을 지펴야 한다. 시진핑 주석이 자신을 얼마나 기특히 여길까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넘버 원’ 자리를 놓고 미국과 다투는 그에게 힘을 보태는 불꽃이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미국과 기 싸움에 돌입한 러시아에도 힘이 된다. 미국이 아무리 왕왕거려도 추가 대북 제재는 중국과 러시아에 의해 간단히 제압되었다.

관심법의 결론. 김정은 불꽃놀이, 당분간 지속할 수밖에 없다. 그가 놓인 처지와 상황에서 애타는 몸부림이다. 국내외 정치적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의 통치도 당분간 연장될 것이다. 문제는 불꽃놀이로 주민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현실이다. 핵무력과 탄도탄이 식량, 생필품, 물자와 달러를 낳지는 못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경제적 성의 표시는 할 것이나, 김정은이 원하는 양만큼 얻을 수 없는 국제정치 정세다. 그렇다고 핵무기나 탄도탄을 사용할 수도 없다. 발사 단추를 누르는 순간이 김씨 가문의 최후란 사실을 김정은이 누구보다 잘 안다. 아무리 곤혹스러운 바이든이라 해도 넘버 원 미국이 대북 저자세를 보일 수 없다. 중간선거에 확실히 지는 길이다. 시간은 자기편임을 미국은 너무나 잘 안다. 이재명이 대권을 잡는다 한들 미국의 신뢰를 얻을 때까지 문재인과 달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인민은 속일 수 있지만 당·군·정 핵심 간부들 신경 쓰여

세뇌와 통제로 허리띠를 계속 조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훤히 알고 있을 당·군·정 권력 핵심들은 다르다. 경제난이 지속되고 기득권이 유지될 수 없다면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히틀러는 자살의 방아쇠를 당길 때까지 ‘기적의 무기(Wunderwaffen)’에 집착했다. 필승의 무기로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장군들의 동요와 모반을 막고자 했다. 실험원자로를 가동했고, 세계 최초의 탄도탄, 유도탄, 스텔스기, 제트 전투기와 폭격기를 개발했고 실전에 투입하기도 했다. 그것을 받쳐줄 국가적 능력이 모자랐고, 군사전략가의 전문성을 무시한 히틀러 자신의 판단과 정책이 패전과 자살로 몰고 갔다. 암살 기도도 수십 차례나 있었다. 멋진 복장, 검은색 긴 가죽외투의 히틀러와 김정은, 결말이 다를 수 있을까.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손기웅은 누구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독일에서 체험한 현장파. 학자의 길을 걸으며 통일연구원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한국DMZ학회장, 한독통일포럼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다. 《통일, 온 길 간 길》 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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