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핵 버튼’ 크기 자랑하던 5년 전으로 회귀하나
  • 이영종 전략문화연구센터 연구위원(북한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24 07:30
  • 호수 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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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의 불’ 된 北 미사일에 ‘우려’만 반복하는 한국 안보라인

최근 북한 내부에서는 “남조선의 ‘남’자도 입에 담지 말라”는 얘기가 번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만든 물품이나 영화·드라마를 엄격히 처벌하던 수준에서 아예 ‘남쪽 동네’ 관련 사안에 대한 발설 자체를 금기시하는 쪽으로 옮겨갔다는 얘기다. 대북 소식통은 이런 분위기를 전하면서 “탈북한 뒤 한국에 정착한 가족들이 북쪽으로 보내오는 달러 송금까지도 단속 대상에 올랐다”고 귀띔했다.

북·중 접경을 통해 조선족 브로커가 주로 주선하는 대북 송금은 북한 경제를 돌리는 산소호흡기 역할을 했다. 북한 당국이 이 돈줄까지 죄고 있다는 건 대남 차단벽을 더욱 높이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이처럼 대남 문제와 관련해 북한 내부에 긴장도가 부쩍 높아진 건 지난해 말 노동당 제8기 4차 전원회의(12월27~31일)를 앞둔 시기부터였다고 대북 소식통은 전했다. 실제로 북한 관영매체의 대남 비난까지 줄었다. 아예 상대나 언급을 않겠다는 기류까지 감지된다.

노동당 총비서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원회의 연설 내용을 관영매체가 소상히 전하면서도 대남 문제와 관련해서는 “북남관계와 대외사업 부문에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적 문제들과 일련의 전술적 방향들을 제시했다”고 짤막하게 원론적으로 언급하는 데 그친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연합뉴스
1월1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전용 차량 안에서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장면을 지켜보는 모습을 조선중앙TV가 12일 보도했다. 발사 장소는 자강도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文 정부 예측과 다른 김정은의 도발 릴레이

안팎으로 대남 관련 말수를 줄인 북한은 미사일 도발 행보를 거칠게 내딛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각종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월5일 북부 자강도 일대에서 극초음속 탄도미사일을 동해상 목표물을 향해 쏜 북한은 엿새 만인 11일 속도가 좀 더 향상된 최대 마하10의 극초음속 기술을 과시했다. 14일에는 평북 피현군에서 열차형 이동발사대를 이용한 KN-23(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시험발사했고, 17일에는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KN-24(북한판 ATACMS)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보란듯이 쐈다.

특히 1월11일 시험발사의 경우 김정은이 직접 참관했고, 탄도와 궤적 등을 보여주는 모니터를 보며 기뻐하는 모습까지 관영매체에 공개했다. 김정은이 새벽에 이뤄진 발사 현장을 찾고, 연구자와 기술자들을 평양의 노동당 본부청사로 불러 기념촬영을 하는 등 환대한 대목에서 그가 상당한 만족감을 느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지난해 1월 노동당 8차 대회에서 자신이 직접 밝힌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의 핵심 5대 과업 중 첫 번째 성과를 거둔 것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조선중앙TV는 간판급 원로 아나운서인 이춘희가 읽은 보도문에서 “대성공”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북한의 미사일 연쇄발사 행보는 문재인 정부가 예측했던 것과 차이가 난다. 김정은이 지난해 말 전원회의를 통해 ‘사회주의 농촌발전’을 집중 의제로 다루는 등 2022년에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내부 체제 추스리기에 치중할 것이란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 성공 발사를 선언한 1월11일 문 대통령이 “대선을 앞둔 시기에 북한이 연속하여 미사일을 시험발사해 우려가 된다”고 말한 점에서도 고민이 묻어난다. 임기 말 종전선언 추진 구상이 사실상 어려워진 데다 대선(3월9일) 국면에서 북한의 도발까지 이어진다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성적표는 낙제를 면키 어렵고, 표심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다.

정부는 일단 분위기를 관망하며 상황 관리에 나선 모양새다. 잇단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도 ‘도발’이란 표현을 자제하는 등 신중 모드다. 지나치게 무르게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월18일 한 방송에 출연해 “언론에서 문 대통령과 정부가 북한의 행동을 도발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데 안보는 말로 하는 게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이 육해공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까지 타격 가능한 탄도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하는 상황에서 대북 경고성 메시지 하나 제대로 내지 못한 데 따른 비판 여론이 거세다.

정부의 이런 미온적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청와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깊은 우려(3월25일) △깊은 우려(9월15일) △유감(9월28일) △깊은 유감(10월19일)이란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올해 4차례의 미사일 발사에선 △우려(1월5일) △강한 유감(1월11일) △재차 강한 유감(1월14일) △매우 유감(1월17일)이란 표현을 썼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도발’이란 표현을 쓴 건 지난해 9월15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당시 한 차례다. 이마저도 열흘 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한국의 미사일 시험을 거론하며 “이중기준은 우리가 절대로 넘어가 줄 수 없다”고 비난하자 이후부터는 도발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 있다. 정부와 군 당국은 과거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불상 발사체’라는 표현을 동원해 미사일 도발이란 점을 누그러트리려 했다. ‘미사일을 미사일이라 부르지 못하고, 도발을 도발로 쓰지 못하는 홍길동식 북한 눈치보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정부의 모습은 미국과 일본 등 주변국의 북한 미사일 대처와는 확연히 다르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1월18일 언론 브리핑에서 ‘북한 미사일을 미국이 평가절하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우리는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평가절하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또 미국은 북한 미사일 도발에 따른 대북 추가 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잇달아 열고 있다. 일본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나서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출 것을 주문했다.

새해 들어 북한은 1월5일과 11일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발사했고, 14일과 17일엔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잇달 아 발사했다(왼쪽부터)ⓒ연합뉴스

文 정부에 불만 드러냈다는 해석도

북한이 대남 관련 언급을 하지 않고 있지만 잇단 미사일 발사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 표시 성격도 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그 연원을 따져 올라가면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당시 한국 정부의 잘못된 조언과 중재 역할에 대한 원망이다. 정부가 “영변 핵 단지를 포기하면 미국으로부터 대북 제재 해제를 얻을 수 있다”고 귀띔해 줬지만, 트럼프는 회담장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영변+알파’를 요구했다. 이른바 ‘최고존엄’이 크게 망신당했다는 생각에 북한은 문 대통령을 ‘삶은 소대가리’라고 비난하고, 김여정 부부장이 나서 “저지른 죄과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식의 막말까지 퍼부었다.

북한을 나름 잘 안다는 인사들로 꾸려진 문재인 정부 대북라인이 왜 이처럼 남북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이끌어왔는지는 미스터리다. 다만 북한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황당하고 불쾌할 만한 일이 적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1월5일 북한은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를 공언하며 “700km 표적을 명중했다”고 밝혔지만 우리 군 당국은 “사거리와 성능이 과장됐고 극초음속 기술도 도달 못 했다”고 깎아내렸다. 결국 북한은 엿새 뒤 김정은까지 나서 추가 시험발사를 했다. 지난해 9월15일 정부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발사한 뒤 “세계 7번째 성공”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뤄진 북한의 시험발사 성공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자 북한은 10월19일 SLBM을 쏘아올린 뒤 “5년 전 성공발사에 이어 또다시 성공”이라고 주장했다. 남북 간의 날카로운 신경전이다.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의 남한 방문에 합의한 청와대가 그해 말 구체적인 날짜까지 흘리며 김정은 방문설을 띄우다 결국 북한으로부터 반발만 산 경우도 있었다. 북한 입장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남한 여론을 내세워 김정은을 압박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향후 북한 행보를 컨트롤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정은이 미사일 도발 카드를 앞세워 연초부터 미국 등 국제사회를 흔들어보려는 심산을 드러낸 만큼 쉽게 중도하차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극초음속 미사일 성공에 탄력을 받은 북한이 지난해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제시한 국방발전 핵심 5대 과정 중 나머지인 △초대형 핵탄두 생산 △1만5000km 사정권 미사일 타격 명중률 확보 △수중 및 지상 고체발동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 전략무기 보유에 박차를 가할 공산이 크다. 이를 시험하고 과시하기 위해 2022년 김정은의 달력은 이미 빼곡하게 채워졌을 수 있다.

 

바이든 상대로 빅딜 시도하는 김정은

일각에서는 베이징동계올림픽(2월4~22일) 기간 중 북한이 중국의 눈치를 살펴가며 자제할 가능성을 점치지만 장담하기는 어렵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월14일 담화에서 “국가 방위력 강화는 주권 국가의 합법적 권리”라며 “우리는 정정당당한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며 미국의 추가 대북 제재에 맞설 뜻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대북 식량지원이나 코로나19 백신 제공 등 중국이 북한에 의미 있는 규모의 원조를 하지 못했다는 점은 김정은의 미사일 도발 행보에 부담을 더는 대목이다. 최근 재개된 북·중 간 열차 운행 재개나 신의주~단둥 간 물자교역 움직임도 북한 미사일의 발사 버튼을 묶어두는 보증수표가 되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를 시작으로 2022년을 핵 능력 향상과 ICBM 완성도 높이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도발 행보로 김정은이 나갈 경우 한반도 상황은 2017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해 11월말 북한이 미국 본토 타격을 공언한 ICBM급 미사일 화성-15형을 시험발사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서로 자기 책상의 핵 버튼 크기를 자랑하던 위기 시점으로의 회귀다.

북한의 연쇄 도발도 결국 미국을 다시 협상판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집권 1년을 맞았지만 대북 문제에 대해서는 꿈쩍도 않고 추가 대북 제재만 겹쌓는 바이든 행정부를 향한 무력시위 성격이란 얘기다. 하노이에서 속절없이 훌쩍 떠나버린 트럼프를 떠올리며 김정은은 바이든을 상대로 또 한 번의 빅딜을 꿈꿀 수 있다.

이런 김정은의 마음을 아는지 트럼프 전 대통령도 북한 미사일 사태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1월15일 애리조나주 플로렌스에서 가진 올 첫 선거지원 유세에서 자신의 집권 기간에 북한이 미사일을 자제했다면서 “김정은이 미사일을 다시 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2024년에는 우리가 백악관을 다시 찾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물론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불확실한 재회보다 2022년 올해 바이든과의 승부에 마음이 더 끌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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