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며 ‘성폭력 피해’ 폭로하면 명예훼손?…대법원 “무죄”
  • 이은진 디지털팀 기자 (eunjinlee525@gmail.com)
  • 승인 2022.01.2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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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비방했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1·2심, 벌금 30만원 선고
대법원, 하급심 파기 “2차 피해 불안감…성희롱 피해는 공적 사안”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퇴사하면서 직원들에게 직장 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렸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1, 2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피해자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대법원은 “이메일은 A씨의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사례에 관한 것으로 회사 조직과 구성원들의 공적인 관심 사안”이라며 “B씨를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 문화와 인식, 구조 등에 비춰볼 때 A씨로서는 ‘2차 피해’의 불안감을 가질 수 있다”며 “신고하지 않다가 퇴사를 계기로 이메일을 보냈다는 사정으로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추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16년 4월 회사를 떠나면서 회사 소속 전국 2백여 개 매장 대표와 본사 직원 80여 명에게 ‘성희롱 피해 사례에 대한 공유와 당부의 건’ 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냈다. A씨가 보낸 이메일에는 ‘직장 상사인 B씨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B씨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테이블 밑으로 손을 잡으며 성추행이 이뤄졌고, 문자로 추가 희롱이 있었다’ 등의 내용과 함께 B씨가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도 포함됐다. 기혼자인 팀장 B씨는 ‘오늘 같이 가자’ ‘옆에 앉자’ ‘남자친구랑 있어서 답 못하는 거냐’ 등 부적절한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A씨는 고용부에 대표이사를 상대로 진정도 제기했지만 사건은 혐의없음(증거불충분)으로 행정종결 처리됐다. 오히려 이러한 내용의 이메일을 사내에 전송해 B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7년 내려진 1심과 2심은 A씨가 비방을 목적으로 이메일을 보낸 것이라며 유죄로 판단했다. 본사에서 일하다가 지역 매장으로 인사 발령을 받게 되자 돌연 B씨의 1년여 전 행동을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무죄 판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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