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보다 더 무서운 간암의 복병 ‘간염’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2.02.10 07:30
  • 호수 168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간염, 간암 원인의 80% 이상 차지⋯최근 음주로 인한 간경변증도 증가 추세

매년 2월2일은 대한간암학회가 제정한 ‘간암의 날’이다.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2019년 기준 간암의 5년 생존율은 약 37%로 전체 암 생존율 약 70%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간암 환자 3명 중 2명은 5년 안에 사망하는 셈이다. 특히 경제활동이 왕성한 40·50대 암 사망률 1위를 차지한 암이 간암이기도 하다. 흔히 간암이라고 하면 술을 떠올린다. 알코올 과다 섭취는 간을 망가뜨린다는 인식 때문인 듯하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간암 원인 가운데알코올 비중은 약 10%이고, 80% 이상을 간염이 차지한다.

간염은 글자 그대로 간에 생긴 염증이다. 간염은 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발생한다. 간염바이러스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발견 순서에 따라 통상 간염을 A형부터 E형까지 분류한다. 이 가운데 간암과 관련이 깊은 것은 B형 간염과 C형 간염이다. 특히 B형 간염은 간암 원인의 70%를 차지하는 최대 위험요인이다. 환자 수도 B형 간염이 C형 간염보다 많다. 대한간학회는 인구의 약 3~4%가 B형 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됐고, 이 가운데 만성 B형 간염 환자는 약 4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B형 간염은 주로 혈액이나 체액을 통해 전파된다. 혈액 감염 중에서도 어머니와 신생아 사이에 발생하는 수직감염이 국내 B형 간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수직감염된 아이는 20·30대에 만성 B형 간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약 90%에 이른다. 비위생적인 기구를 사용한 문신·침·피어싱 시술을 받거나 환자의 면도기·칫솔·손톱깎이 등을 같이 사용할 때도 감염된다. 문손잡이나 식기 등을 통해B형 간염에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 국민 대상 C형 간염 선별검사 필요”

성인이 된 후 B형 간염에 걸리더라도 대부분은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아도 회복된다. 임영석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현재 성인 간 B형 간염 전파는 거의 없다. 또 1983년 개발된 B형 간염 백신으로 B형 간염은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가 백신 접종 비용을 지원한 때는 2002년으로 늦은 편이었고, 1990년생 이전 출생자는 수직감염이 많았다. 수직감염자의 만성 간염 가능성은 90% 이상이다. 이들에게 간암이 나타나는 시기는 60세 전후”라고 설명했다.

B형 간염에 걸렸을 때 주요 증상은 피로감이며, 그 외에 복부 불쾌감, 식욕 부진, 근육통, 미열 등이 오래 나타난다. 사실 이런 증상은 애매해서 일상에서 그냥 지나치기 쉽다. B형 간염을 방치해 만성 B형 간염이 되면 간암에 걸릴 확률이 일반인보다 100배 이상 높아진다. 증상 여부와 상관없이 간염을 방치할수록 간암 위험이 커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한 번쯤은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받아 B형 간염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만일 B형 간염 진단을 받으면 주사제나 경구용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받으면 된다. B형 간염바이러스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병의 진행을 막아 간암을 예방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B형 간염은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다. B형 간염바이러스 항체가 없는 성인이나 신생아에게 총 3차례 백신 접종이 권장된다.

B형 간염 다음으로 국내 간암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C형 간염이다. C형 간염의 문제는 환자 대부분이 자신이 감염자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자신이 C형 간염에 걸린 사실을 아는 사람은 100명 중 35명에 불과하다. 또 B형 간염과 달리 C형 간염에는 예방 백신도 없다. 사회적 인식이 낮고 국가건강검진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은 탓에 C형 간염은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국내 C형 간염 환자는 인구의 약 1%로 추정된다. B형 간염보다 유병률은 낮지만 C형 간염은 간암 원인의 약 10%를 차지하므로 무시할 수 없다.

C형 간염도 B형 간염처럼 혈액과 체액으로 전파된다. 다만 수직감염보다 비위생적인 수혈·문신·침술 등이 주를 이룬다. C형 간염에 걸려도 초기 증상이 없어 발견하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감염 20~30년 후에 혈액검사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는 이미 만성 C형 간염, 간경변증, 간암 등으로 발전한 뒤다. 너무 늦게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 대한간학회와 한국간재단은 2030년 국내 C형 간염 종식을 목표로 조기 선별검사와 치료에 대한 정책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

임영석 교수는 “간암의 고위험군은 간염 환자다. 이는 바꿔 말해 간암을 미리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C형 간염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선별검사를 할 필요가 있다. 비용이 많이 들어 정부가 아직 시행하지 않고 있지만 선별검사로 C형 간염을 찾아내 치료하면 향후 간암 발생을 10~15% 줄일 수 있다. 간암 치료에 쓰는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pixabay
ⓒpixabay

간경변증은 금주 절대적으로 필요

C형 간염에는 예방 백신이 없다. 그렇지만 조기에 발견해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면 C형 간염의 95% 이상은 완치된다. 김하일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최근에는 효과도 좋고 부작용이 거의 없는 경구용 약이 있어 자신이 환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40세 이상 성인이라면 한 번쯤 C형 간염 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권장한다. 병원에서 간단한 혈액검사를 통해 감염 여부와 치료 필요성을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만성 간염이 되면 수많은 염증으로 간세포가 파괴된다. 간세포가 파괴된 자리에 상처가 나면서 섬유화가 진행된다. 피부가 화상을 입으면 울퉁불퉁하고 딱딱해지는 현상과 같다. 이것이 간경변증이다. 흔히 간이 딱딱해진다고 해서 간경화라고도 부른다. 간경변증은 간암의 전 단계라고 말할 만큼 간암과 직결된다.

간경변증의 주요 원인은 B형 간염(약 70%), C형 간염(약 10%), 술(약 10%) 등이다. 만성 B형 간염의 4분의 1은 간경변증으로 진행한다. C형 간염의 70~80%는 만성 C형 간염으로 발전하고 이 가운데 30~40%는 간경변증과 간암으로 진행한다.
간경변증이 발병하면 전반적으로 간 기능이 저하된다. 단백질 합성이나 해독 작용에 장애가 생기고 면역 기능도 떨어진다. 또 간에 섬유화가 과도하게 진행된 경우에는 간으로 혈액이 유입되지 않아 간세포 수까지 적어진다. 문제는 이렇게 될 때까지도 환자는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으면 이미 간경변증이 상당히 진행된이후다.

복수가 차거나 혈변을 보는 정도의 증상이 나타나면 이미 여러 합병증까지 생긴 상태다. 무엇보다 간암 위험이 매우 커진다. 이런 합병증이 심해지면 치료를 받아도 4년 생존율이 20~40%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증상이 없더라도 간경변증을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최근 술로 인한 간경변증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건국대병원 소화기내과와 전남대병원 소화기내과 연구팀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국내 간경변증 환자 1만6800여 명의 임상기록을 분석했다. 분석 기간 첫해인 2008년 기준, 전체 간경변증 환자의 주요 발병 원인은 B형 간염(38.6%)과 알코올 섭취(39.7%)가 차지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B형 간염으로 인한 간경변증 환자가 더 많았지만, 2013년부터 알코올 섭취로 인한 간경변증이 추월하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B형 간염이 원인으로 작용한 간경변증 비중이 34.1%까지 떨어진 반면 알코올성 간경변증은 41.1%로 늘어났다. 또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사이에 B형 간염으로 인한 간경변증은 매년 2.5% 감소했으나, 알코올성 간경변증은 매년 1.3% 증가했다.

간경변증은 한 번 생기면 평생 간다. 그러나 원인을 치료하면 정도를 완화할 수 있다. 치료 방법 가운데 하나는 금주다. 알코올은 B형 간염과 C형 간염을 악화시키므로 간암 위험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술은 또 그 자체로도 지방간과 간경변증을 일으키므로 역시 간암 위험을 높인다. 한두 잔 정도의 술 섭취는 괜찮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삼성서울병원 연구팀은 2020년 일반인과 만성 간염 환자의 음주 정도에 따른 사망 위험을 비교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간염 환자가 한두 잔의 가벼운 음주를 하면 비음주자보다 사망 위험이 19% 높아지고, 보통 정도로 음주하면 그 위험도는 23%로 오르며, 폭음하면 69%까지 치솟는다. 곽금연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만성 간염 환자에서는 가벼운 음주 즉, 여성의 경우 하루 소주 1잔, 남성은 하루 소주 2잔 미만의 음주도 사망 위험도를 높일 수 있다. 만성 간염을 앓는 사람은 적은 양의 음주조차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비활동성 간염’도 안전하지 않아

한편, 간염 환자 가운데 자신은 비활동성 간염이어서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간염바이러스가 활동하지 않아 병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과거에 사용했던 ‘간염 보유자’라는 용어를 ‘비활동성 간염 환자’로 변경한 것도 비활동성 간염이 안전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다. 

국립암센터는 간염바이러스 보유 자체만으로도 만성 간염의 초기 단계라고 본다. 실제로 의학계는 비활동성 간염 환자라도 0.7%는 간암으로 발전한다고 경고한다. 즉 일반인보다 병이 진행할 위험이 수십 배 높다는 말이다. 따라서 비활동성 간염 환자도 안심하지 말고 6개월마다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간 건강을 잃으면 간에 좋다는 음식을 챙겨 먹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간 건강을 생각한다면 간에 좋다는 음식을 찾기보다 나쁜 음식을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충고다. 임영석 교수는 “진료실 외부에서 접하는, 이른바 간 건강에 좋다는 음식이나 건강기능식품은 검증되지 않았다. 검증이란 효과뿐만 아니라 안전성까지 따져야 한다. 실제로 그런 식품을 먹고 1~2개월 만에 간 이식을 받아야 할 정도로 간이 악화되는 경우가 있다. 검증된 약이나 음식은 진료실에서 안내받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