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외교안보] ‘북풍’은 좌우 어느 쪽으로도 불지 않는다
  • 구민주·김종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02.04 10:00
  • 호수 1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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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사일 도발에 따른 ‘이재명·윤석열 후보 유불리’ 전문가 분석
李, 한계 드러난 文 정부 대북정책과 함께 비판받아
尹, 남북관계 궁극적 해법 제시보다는 강경일변도 의존

[편집자 주]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가장 민감한 이들과 둔감한 이들은 누굴까.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한국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북한은 새해 들어 미사일을 연이어 발사하며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대폭 높이고 있다. 한국 정부는 물론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불확실성은 커졌지만 우리 주식시장은 북한 변수로 흔들리지 않았다. 오래된 학습의 결과다. 그만큼 북한의 도발은 역사가 깊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우리는 놀랐지만, 놀라지 않았다. 역설적이고 미묘한 상황이다.

북한 변수는 불과 30여 일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주요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또는 의도적으로 발생한 북한 변수가 표심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뜻하는 ‘북풍(北風)’의 역사도 깊다. 때때로 북풍은 대선 정국에서 돌풍이 되기도 했고, 찻잔 속 태풍에 그치기도 했다. 이번엔 과연 어떨까.

사실 북한의 도발은 그 자체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해온 문재인 정부에는 악재다. 정권교체론이란 구도를 더 굳어지게 할 수 있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북한의 최고권력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과거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최근 북한의 잇단 도발은 유권자들에게 ‘지금 방식으론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해 여당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을 싣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반대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국민은 2017년 한반도에 고조되던 전쟁 분위기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보수 정부에서 이어졌던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에 대한 우려도 상당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국민에게 북한 위협까지 더해지는 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즉 평화 대 갈등이란 구도에서 오히려 북한 변수는 야당에 부정적으로 작동할 여지도 있는 셈이다.

북한이 지대지 전술유도탄 시험발사와 1월25일 장거리 순항미사일 시험발사에 각각 성공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월28일 밝혔다. 사진은 1월25일 순항미사일이 이동식 발사대(TEL)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발사되는 모습ⓒ조선중앙통신 연합

1. 고도화된 학습효과…북풍 노리다 역풍 맞을 수도

과거 북풍은 실재하는 듯했다. 선거 때면 찾아오던 그 바람은 방향도 비교적 선명했다. 그로 인해 웃는 쪽과 우는 쪽이 명확히 갈렸다. 유권자들은 그 바람에 적잖이 흩어지기도 또 결집하기도 했다. 이를 이용한 우리 정치는 그 바람에 쉽게 올라탔고 도리어 입맛에 맞게 키우려 하기도 했다.

바람도 맞다보니 무감각해진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선거 때마다 단골손님처럼 찾아오던 북풍은 이제 구시대적 언어에 가까워졌다는 게 보수와 진보를 불문한 대다수 전문가의 견해다. “북한의 미사일보다 당장 눈앞에 시급한 문제가 많기 때문”(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이라고도 하고, 또는 “긴장 국면이 오래 반복되면서 더는 불안하지 않아졌기 때문”(정대진 한평정책연구소 평화센터장)이라고도 분석한다. 분명한 건 이제 선거에서 북풍으로 인한 극적인 반전은 어느 쪽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오히려 섣불리 그 바람에 올라탔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분위기도 있다.

즉 유권자들도 정치권도 북풍에 대한 ‘학습효과’가 이미 충분히 갖춰져 있다는 얘기다. 지난 20년간 유권자들은 남북관계에서 극적인 평화도, 극도의 긴장도 모두 겪었다. 이와 동시에, 잠깐의 국면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궁극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경험했다. 이들에겐 최근의 북한 도발 역시 기시감이 들 뿐이다. 이는 곧 유권자들이 최근 대북 변수로 기존의 표심을 바꾸진 않을 거란 관측으로 이어진다.

정대진 센터장은 이러한 상황을 ‘위드 코로나’와 같은 ‘위드 북한핵’, 즉 북핵 리스크와 오래 공존해 오면서 얻은 익숙함으로 정의했다. 북한의 미사일 한 방으로 즉각 안보의식이 발동해 한쪽에 유리하고 다른 한쪽에 불리하게 흘러가는 기존의 공식은 더는 먹히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자연히 이번 북한 도발의 직접적인 영향력도 이미 끝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회사진취재단

2. 그럼에도 이재명에겐 유리하진 않다

북한의 도발은 더 이상 그 자체로 대선 정국의 태풍이 되진 못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굳이 유불리를 따졌을 때, 현재로선 여당에 유리한 점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이번 사안은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로 직결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부터 야당은 즉각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 ‘완전한 실패작’이라는 혹평을 쏟아냈다. 문 대통령의 최대 치적으로 꼽아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중대한 한계에 부닥쳤는데도 임기 말이기에 뚜렷한 묘수가 없어 여권 내부에서도 고민이 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당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대북정책에 대한 검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후보는 대선 출마 후 지속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주요 성과로 남북관계를 꼽으며, 정부의 외교·안보 기조를 기본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문 대통령이 강조했던 ‘한반도 운전자’ 역할 역시 이어갈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야당은 당장 “실패한 대북정책을 계승하려 한다”며 이 후보를 옥죄고 있다. 이 후보가 국익을 우선하는 ‘실용외교’를 앞세우고 최근 “(북한이) 대한민국 내정에 영향을 주려 한다”는 등 수위 높은 비판을 하며 현 정부와 선을 긋고 있지만, 여전히 문재인 정부의 계승자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

가능성은 작지만 대선 전에 남북이 극적으로 화해하는 모습이 연출될 경우, 국면은 여당에 유리하게 전환될 수도 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만약 종전선언이 성사된다면 미미했던 북한 변수는 상당히 크게 작용할 것”이라며 “대부분 이 가능성이 아예 끝났다고 생각하겠지만, 경험상 남북관계나 북·미 관계는 어느 날 갑자기 일이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3. 그렇다고 윤석열에게도 유리하진 않다

이재명 후보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곧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의견 또한 많다. 윤 후보는 지금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종료’를 선언하며 이를 뒤집는 강경일변도 정책을 내놓고 있다. 북한 선제타격론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번 북한의 도발이 윤 후보의 대북 강경 공약에 일견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윤 후보의 대북 안보 기조에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한다. 진영을 막론하고 남북 간 ‘평화’가 기본값이 된 상황에서, 윤 후보의 강경 전략이 궁극적인 해법으로 인식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남북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컨센서스(합의)가 이뤄져 있는 상황에서, 보수 지지층이라고 해서 무조건 강력한 대북 제재와 군사력 강화 방향을 지지하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물론 윤 후보가 밝힌 안보 전략의 지향점 역시 힘을 갖춘 ‘평화’다. 그러나 그 내용을 뜯어봤을 때 평화와 대치되는 ‘안보 포퓰리즘’이란 우려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후보가 남북관계론과 관련해 착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지금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향한 국민의 비판은 북한과의 관계를 풀어내지 못한 문 대통령의 무능에 대한 비판이지, 기본적인 발상이나 방향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느 진영이든 남북관계에서 안보만 튼튼히 한다고 안정된 후보로 인정받는 시대가 아니다. 동시에 평화 관리도 신경 쓰며 균형 잡힌 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윤 후보가 한쪽 방향으로 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를 의식한 듯 윤 후보도 강경 발언 이후 북한과의 대화의 문을 항시 열어두고,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하면 대북 경제 지원에도 나서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선제타격론과 같은 윤 후보의 강경 기조가 크게 논란이 되거나 불리하게 작용하진 않고 있다. 오히려 일각에선 ‘사이다’ 정책이라고 호평하기도 한다. 이 역시 북한에 지나치게 유화적이었던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작용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원색적인 비난에도 정부가 강하게 반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자존심을 긁힌 유권자들에게 윤 후보가 “할 말은 할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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