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불평 “내 불쾌함을 트럼프 당신에게 숨길 생각 없다”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07 07:30
  • 호수 1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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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트럼프 비공개 친서 23통 , 일본 NHK 《클로즈업 현대+》에서 단독보도
트럼프 “Beautiful letter” 언급한 편지에 실제론 金의 불평 가득

설 연휴 직전인 1월26일, 일본 NHK의 시사보도 프로그램 《클로즈업 현대플러스》에서 주목할 만한 단독보도를 했다. 2018년부터 2019년 사이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교환한 27통의 친서를 입수해 보도한 것이다. 특히 이 보도는 2022년 들어 연일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고 있는 북한의 행보와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김정은과 트럼프는 친서에서 서로를 ‘존경하는 대통령’ ‘친애하는 위원장’으로 호칭하고 있었다. 북·미 정상 간 친서 교환은 2018년 봄, CIA 국장 마이크 폼페이오의 방북을 계기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세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2018년 6월~2019년 6월) 전후로 교환된 김정은과 트럼프의 친서 중 일부(4통)는 이미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공개된 바 있다.

그러나 NHK는 나머지 23통의 비공개 서한 전문을 추가 입수했다. 문서의 출처는 과거 미국 닉슨 행정부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보도하고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유명 저널리스트 밥 우드워드(Bob Woodward)다. NHK와의 인터뷰에서 우드워드는 “편지의 실물을 보고 직접 받아적었다” “이런 특별한 문서를 입수했을 때, 내용 분석을 위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2019년 6월11일(현지시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친서를 받았다고 밝히며 “이번 친서로 뭔가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AP 연합

“상황 조금도 안 변한다면 비핵화 조치 취할 수 없어”

친서 내용의 구체적인 분석을 위해 NHK는 전직 미 행정부 관계자와 북한 전문가를 인터뷰했다. 먼저 트럼프 행정부에서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맡았던 존 볼턴은 “우리는 김정은이 보낸 편지로부터 그의 목적을 파악하고자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편지를 읽은 소감에 대해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와 어떻게 교섭해야 할지에 대해 전략을 짜고 있는 듯 보였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친서에 트럼프의 자존심을 치켜세우는 최상급 찬사들이 사용되고 있던 반면 실질적인 정책과제에 대한 내용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볼턴은 2018년 9월6일 발송된 김정은의 친서에 ‘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그대로 전달한다고 생각되지 않는 폼페이오와 대화하기보다, 비핵화와 같은 중요 과제에 대해 대통령과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 건설적이라고 생각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과 관련해 “북한은 트럼프와의 직접 교섭이 좀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즉, 김정은은 트럼프를 측근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함으로써 트럼프와 직접 협상하는 전략을 취했다는 것이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로서 북한과의 교섭을 수차례 맡은 바 있는 조셉 윤은 북한의 이러한 전략에 대해 “과거부터 이어져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셉 윤은 북한과의 협상 당시 북한 측 카운터파트가 “당신과 내가 100번을 만나도 소용이 없다. 우리는 당신의 대통령(트럼프)과 직접 이야기하고 싶다”고 발언한 것을 들어 “(북한 측은) 관료급 협상으로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없으며 최고위층의 관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비핵화에 대해 어떤 인식을 보이고 있었을까. 전 CIA 분석관 로버트 칼린은 트럼프에게 보낸 친서(2018년 9월6일)에서 김정은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서명한 역사적 공동성명을 충실히 수행한다는 우리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들은 핵무기연구소 및 위성 발사시설의 완전한 폐쇄, 핵물질 생산시설의 불가역적 폐쇄 등 단계적으로 하나씩 조치를 취해갈 의향이 있다. 단, 조금이라도 주위 상황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노력이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게 돼 이러한 노력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언급한 점에 주목했다. 칼린은 “김정은은 비핵화를 들어 다음번 회담에서 협의할 의사가 있음을 계속 밝히고 있었다”며, 비핵화와 관련된 북한의 단계적 어프로치 제시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놓는다”는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NHK가 입수한 친서 중 가장 마지막 날짜의 서한은 2019년 8월5일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보낸 것으로, 당시 트럼프가 이를 “Beautiful letter(매우 아름다운 편지)”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서한에는 ‘나는 기분이 너무 나쁘고 이 기분을 트럼프 당신에게 숨길 생각이 없다. 너무나도 불쾌하다’는 김정은의 불평이 가득 담겨 있었다. 김정은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한 이유는 바로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재개되었기 때문이다. 해당 서한에서 김정은은 한·미 군사훈련 재개와 관련해 ‘미국이 압력과 대화에 의한 대북정책에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있다면 이는 큰 실수다. 남한과의 전쟁게임(한·미 군사훈련)이 종료되면 다시 말을 걸어 달라’고 말했다.

 

“만나서 뭐가 바뀌었는지, 우리 인민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해당 서한에서 조셉 윤이 주목한 부분은 ‘나(김정은)는 당신(트럼프)과의 신뢰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책임을 갖고 가능한 것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나는 당신과 만나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우리 인민에게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대목이다. 조셉 윤은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회담에 굉장히 큰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 같다”면서 “우리는 왜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회담에서 이렇게 실망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에도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것과 관련해 “김정은은 미국과의 협상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달았을 것이며, 이를 교훈 삼아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강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관측을 제시했다.

북한 정치 전공의 이소자키 아쓰히토 게이오대 교수는 북·미 정상 간 친서를 확인한 뒤 “그동안 북·미 간 대립이 길었기 때문에, 상호 불신감을 어떻게 풀지에 대해 논의한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또한 북·미 협상 후반부로 가면서 “북한으로서는 (미국에 대한) 불신감이 더 커지게 되었을 것 같다. 불신감을 갖고 있는 국가와의 교섭에서 어떤 국가도 요구 내용을 100% 전달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앞으로의 북·미 관계에 대해 이소자키 교수는 “미국의 움직임에 달렸다”며, 북한이 반대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향후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에 주목하고 싶다고 밝혔다. 조셉 윤 전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북·미 대화가 계속되는 한 북한은 미사일 발사, 특히 ICBM 발사나 핵실험 같은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은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와 제스처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중국이 비핵화 문제에 제대로 책임을 지도록 관계국들이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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