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옵션, 노후 ‘안전판’ 역할 할 수 있나
  •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17 07:30
  • 호수 1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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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_연금] 장기수익률 제고로 더 나은 노후 준비 가능
연금제도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 예상

지난해 12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하 근퇴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퇴직연금에 대한 사전지정운용제도(이하 디폴트옵션)가 도입됐다. 디폴트옵션 도입은 근퇴법에 국한된 내용이지만 연금제도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이번 호에서는 디폴트옵션이 무엇인지, 왜 도입됐는지를 살펴보고 제도 시행에 따른 시사점을 얘기하려고 한다.

우선 퇴직연금의 유형을 살펴보자. 퇴직연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근로자가 퇴직 시 받을 퇴직급여는 사전에 확정된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제도(Defined Benefits Retirement Pension·이하 DB)와 사용자가 납입할 부담금이 사전에 확정된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도(Defined Contribution·이하 DC)다. 이 외에 상시근로자 수가 10인 미만인 사업장에 특례 적용하는 개인형퇴직연금제도(Individual Retirement Pension·이하 IRP)가 있는데, 이는 근로자가 이직 때 활용하거나 은퇴 후 퇴직급여를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수령해 계속 운용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된다. 기회가 될 때 IRP는 별도로 다루기로 하자.

ⓒ연합뉴스
2월7일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서 열린 20대 대선 공적연금 토론회에서 이찬진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진통 끝에 국회 통과

퇴직연금의 유형을 간략히 정리한 이유는 디폴트옵션이 바로 DC와 관련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DB는 사용자가 금융회사에 적립해 운용하며, 근로자는 사용자의 운용 결과와는 상관없이 사전에 정해진 퇴직급여를 수령하는 제도다. 퇴직 시 30일분의 평균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한 금액이 DB에 가입한 근로자의 퇴직급여다. 반면 DC는 매년 연간 임금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사용자가 근로자 개별계좌로 납입하면 근로자가 직접 적립금을 운용하고 그 운용잔액을 퇴직급여로 지급받는 제도다. 그럼 왜 이렇게 구분해 제도를 만들었을까? 근로자 입장에서는 복잡하니 그냥 DB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임금 상승률이 높고 근속기간이 긴 경우에는 DC보다 DB가 분명 유리한 측면이 있다. 반면 임금 상승률이 높지 않거나 근로 중 이직이 발생한다면 DC가 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최근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지만 임금 상승률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DC의 운용 수익률이 임금 상승률보다 높다면 대체로 DC가 DB보다 더 많은 퇴직급여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장기근속에 대한 안정성과 높은 임금 상승률이라는 단서조항이 붙는 경우를 제외하면, DB가 DC보다 좋은 때는 근로자가 DC 운용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다.

2018년 이후 추세를 보면 DB는 비중이 감소하고 있는 반면, 근로자가 스스로 운용해야 하는 DC와 IRP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퇴직급여의 장기수익률 제고를 통해 근로자의 노후를 개선하려는 제도 도입의 취지가 무색하게 제대로 운용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도입된 디폴트옵션은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됐다. 디폴트옵션은 DC와 IRP에서 가입자 운용지시가 없을 경우 사전에 미리 정한 방법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제도다. DC와 IRP 가입자가 관심이나 시간이 부족해 원리금 보장형 금융상품을 주로 편입할 경우 DB보다 못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 요컨대 디폴트옵션 시행을 통해 DC와 IRP의 도입 취지에 부합하도록 장기수익률 제고를 통해 좀 더 나은 노후를 준비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이미 2019년 11월 노후 대비 자산형성 지원방안을 통해 디폴트옵션을 발표한 바 있지만, 금융기관의 이해 등이 맞물려 실제 시행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원금보장형 상품은 주로 은행과 보험사가 취급하고, 실적배당형의 운용 및 주요 판매처는 자산운용사와 증권사다).

이미 미국, 영국, 호주는 각각 2006년, 2008년, 2013년에 디폴트옵션을 도입했다. 주요 옵션은 TDF(Target Date Fund) 등과 같이 장기투자에 적합한 펀드로 구성돼 있다. TDF는 은퇴연령(투자목표 시점)에 따라 위험자산 비중을 자동으로 조정해 주는 펀드다. 우리나라의 디폴트옵션도 TDF와 같이 분산투자와 주기적인 자산배분을 통해 장기수익을 추구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 외에도 MMF와 같은 단기 금융상품이나 국채 등을 통해 안정성을 확보하는 부분과 사회기반시설 사업에 투자하는 인프라펀드 등으로 구성된다.

디폴트옵션 시행은 매우 반길 일이지만 세부내용에서 필자가 아쉬운 부분은 옵션에 원리금 보장상품이 포함된다는 부분이다. 운용 전문성 및 시간 부족 등으로 원리금 보장상품 편입 비중이 너무 높아 만들어진 제도다. 그런데 디폴트옵션 중 또다시 원리금 보장상품이 편입된다. 요컨대 가입자가 사전에 지정한 옵션이 ‘원리금 보장’상품이라면 그 이전과 달라지는 점은 없다. 물론 퇴직연금 사업자가 어떤 디폴트옵션을 구성하느냐는 꼼꼼히 살펴봐야 할 부분이겠지만 현행 디폴트옵션 중 원리금 보장상품이 포함된 일본의 경우에서 동 제도를 시행하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게 나타나고 있다.

美·英·호주는 2010년 전후 디폴트옵션 도입

사실 이 디폴트옵션 도입은 퇴직연금 부분 이외에도 앞으로 큰 영향이 예상된다. 정부는 제도 도입 및 취지에 따라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여러 이해당사자를 고려해야 하고 특히 금번 디폴트옵션의 경우 수많은 DC와 IRP 가입자의 노후자금이 될 것이다. 제도 도입 취지를 ‘장기수익률 제고’라고 밝힌 바 있다. 요컨대 실적배당형 상품과 같이 일반인 입장에서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투자형 자산(위험자산)도 장기적으로 투자하면 안정적인 운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장기투자의 수익률이 안정적이라는 점은 최근에 새롭게 도출된 사실이 아니다. 해리 마코위츠가 1952년 발표한 ‘Modern Portfolio Theory’에서 시작한 내용이며 이미 시장의 실제 데이터를 통해 검증된 내용이다.

단기적인 전술적 투자방법은 짧은 기간에 큰 수익이 발생하기도 한다. 반면 짧은 기간에 매우 큰 손실이 발생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 확률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단기투자에서는 수익을 창출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것을 ‘장기적으로’ 지속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TDF와 같은 전략적 자산배분은 다르다. 특히 DC와 IRP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연금자산, 더 나아가 일반적인 자산배분 전략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요컨대 모든 사람이 주식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도 도입의 취지에 맞게 연금이 운용되고 가입자의 노후 복지가 제고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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