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은행 실적에도 씁쓸함은 가중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24 12:00
  • 호수 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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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금융지주 순이익 지난해에만 34.5% 증가…실적 견인 동력이 단순 이자 수익이어서 ‘뒷말’

KB금융과 신한, 하나, 우리금융 등 주요 금융사들이 모두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KB금융지주는 2월8일 공시를 통해 지난해 4조409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신한금융지주의 지난해 전체 당기순이익은 4조193억원이었다. 하나금융은 출범 후 처음으로 당기순이익이 3조원을 넘어섰다. 민영화에 성공한 우리금융 역시 지난해 전체 당기순이익이 2조5879억원으로 집계됐다고 2월9일 공시했다. 전년도 1조3073억원보다 98% 증가한 것으로, 역시 역대 최대 규모다.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순이익을 모두 합치면 14조5429억원이다. 전년 10조8143억원보다 34.5%나 증가했다. 4대 금융지주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치면 70조원 정도다. 시가총액의 20%를 한 해 동안 벌었다.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금융지주보다 실적이 더 좋았던 기업을 찾자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기아차, 포스코 정도밖에 없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에도 주요 은행 실적이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하면서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거리에 설치된 은행 ATMⓒ연합뉴스

예대금리 개선 위한 움직임 커져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의 회복도 아니고, 사상 최대 실적에 대한 반응은 별로 좋지 않다. 코로나19로 서민 경제가 극심하게 어려운 상태에서 나온 실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국회에는 예대금리차 공시 의무화와 금융위원회의 개선 권고 등을 골자로 하는 ‘은행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기도 하다. 개정안은 은행의 예대금리차를 대중에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금융위가 금리 산정의 적절성을 검토해 문제가 있으면 개선토록 한다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예대금리차 공시와 금융 당국의 가산금리 적절성 검토, 담합 요소 점검제도 도입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여론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금융그룹들의 실적 자체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은행도 하나의 기업이다. 은행이 계속기업으로서 존재하려면 미래의 지속 성장을 위한 투자를 이어가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평소 적정 수준 이상의 수익 확보가 필수적이다. 자칫 대출이 부실화하고 이를 쌓아놓은 충당금으로 해소하지 못하면 자기자본을 사용해야 할 수도 있다. 상장기업으로서 가진 의무도 있다. 수익을 내지 못해 주주에게 배당이나 주식 매매차익을 주지 못한다면 기업으로서 존재할 이유가 없다.

물론 은행은 주식회사이면서도 보통의 기업이 가지고 있지 않은 사회적 역할도 맡고 있다. 금융 시스템 자체는 공공재다. 은행이 자칫 부실해지기라도 하면 금융 시스템 복원을 위해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야 한다. 이 때문에 금융시장은 정부의 각별한 규제와 감독을 받는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와 감독은 다른 한편으로 보호를 의미하기도 한다. 은행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 영업하며, 사실상 독점 구조에서 사업을 한다. 정부가 관리·감독하고, 일반 기업 이상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배경이다. 물론 은행이 가진 공공적 성격도 적절한 수익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아쉬운 것은 실적 자체가 아니라 수익의 구조와 한계다. 금융지주들의 최대 실적은 외부 환경 덕이었다. 부동산 정책 실패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유동성 확대가 주요한 원인이었다. 최고의 실적을 견인한 동력은 바로 이자 수익이다. 대출로 벌어들인 이자에서 자금 조달 비용을 뺀 4대 금융그룹의 순이자 이익은 모두 34조7060억원으로 전년보다 14.5% 증가했다. 전 세계에서 반도체와 휴대전화를 가장 많이 파는 삼성전자의 지난해 순이익이 40조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이자 이익은 주로 가계대출 급증 덕분이었다. KB국민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은행의 지난해 말 원화 대출금 잔액은 1108조7110억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8.2% 늘어났다.

여기에 대출 규제에 따른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은행들의 주된 수익원인 예대금리차는 크게 벌어졌다. 지난해 말 은행권 잔액 기준 예대금리차는 2.21%포인트로, 2019년 8월 이후 2년4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4대 금융지주 모두 이자로 벌어들인 수익이 전년보다 늘었다. 우리금융은 16.5%, KB금융과 하나금융은 15%, 신한금융은 약 11% 증가했다. 지난해 금융사들의 실적은 실력의 결과라고 말하기 어렵다. 지속적으로 대출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와 기준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며 이자 이익이 늘어났다. 대출 수요가 존재하는데 공급을 줄이면 가격이 올라가는 게 당연하다. 가산금리는 높이고, 우대금리를 축소하는 것을 금융 당국이 사실상 유도하면서 은행의 수익성은 더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4대 금융지주는 말할 것도 없고 지방은행과 저축은행, 심지어 대부업체까지 줄줄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상 최대의 실적에 무슨 잘못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특별히 잘한 것도 없다. 그저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인한 부동산 시장 급등과 가계대출 억제가 은행의 돈벌이로 이어졌을 뿐이다. 결국, 은행들이 영업 개선 등 별다른 노력 없이 앉아서 이자 장사로만 역대 최대 수준의 돈을 벌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다른 지표를 봐도 마찬가지다. 은행 영업이익에서 판매·관리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는 이익 경비율의 국내 4대 은행 평균은 지난해 48.9%를 차지했다. 2020년 평균치보다 2.6%포인트 낮아졌다. 얼핏 보면 경영 효율화를 위한 비용 통제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판매·관리비가 줄어서가 아니라 영업이익이 더 빨리 늘어났기 때문일 뿐이다.

 

저축은행·대부업체 등도 사상 최대 실적

지난해에도 4대 은행 전체적으로 판매·관리비는 3% 늘었다. 이와 비교해 영업이익은 8% 불어나 이익 경비율이 낮아졌던 것이었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시장은 은행을 덩치만 큰 공룡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그 말 그대로다. 은행들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해외 진출 확대’ ‘플랫폼 확충’ ‘투자은행 강화’를 얘기해 왔다. 하지만 아직 성과를 거뒀다고 자신할 수 있는 곳은 없다. 국내 은행들의 수익구조는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많다. 글로벌 주요 은행들과 비교해도 국내 은행의 수익성은 낮아 북미 은행의 50%에 불과하다고 한다.

최근 금융산업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모바일뱅킹 중심의 핀테크 트렌드와 맞물려 은행권의 디지털 전환 전략에 대한 압력은 커지고 있다. 자산관리와 기업투자금융으로 영역도 넓혀야 하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신용평가, 마케팅 역량도 키워야 한다. 사실은 오늘의 실적도 불안하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대출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조치 때문이다. 2020년 4월 시행돼 3차례 연장됐다. 5대 금융그룹이 유예한 대출 원리금은 140조원에 이른다. 140조원 대출의 부실률이 10%면 14조원이다. 14조원은 지난해 4대 금융지주가 벌어들인 순익이다. 대출 만기 연장 기한은 3월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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