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올림픽 애국’뿐인 중국의 사회적 병리현상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20 14:00
  • 호수 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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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성적 따라 극과 극 대접받는 미국 영입 인재 출신 주이와 구아이링
지난해 11월 성폭행 폭로했던 펑솨이는 연출 아래 움직여

2월13일 한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SNS 글이 중국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2002년 태생으로 중국 여자 피겨계를 주름잡았던 천훙이 선수가 남긴 것이었다. 천훙이는 “최근 온라인에서 주이에 관한 여론을 봤다”면서 “어린 선수에게 처음 참가한 올림픽은 너무나 큰 도전이다. 실력적으로, 심리적으로 준비를 잘해도 경기에서는 여러 요소 때문에 실수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틀 뒤에 여자 피겨 싱글 경기가 열린다”면서 “우리 모두 중국 피겨스케이팅을 위해, 주이를 위해 응원하자”며 글을 맺었다.

천훙이는 주이·린산 선수와 찍은 사진도 공개했다. 천훙이의 글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던 이유는 주이·린산과의 라이벌 관계 때문이다. 특히 천훙이와 주이는 나이뿐만 아니라 태어난 날짜도 같다. 셋의 경쟁에서 천훙이는 2017년부터 중국 여자 피겨의 1인자로 승승장구하면서, 지난해 말까지 줄곧 압도해 왔다.

이번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중국 여자 선수 한 명이 피겨스케이팅 싱글 참가 자격을 얻게 된 것도 천훙이의 공로였다. 하지만 올 1월 열린 마지막 중국 대표 선발전에서 천훙이는 총점 724점을 얻어, 732점을 받은 주이에게 밀렸다. 그로 인해 천훙이가 탈락하고 주이가 여자 피겨 대표로 참가했다. 2월6일 베이징 서우두 실내경기장에서 올림픽 여자 피겨 단체전 쇼트프로그램 경기가 열렸다. 주이는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이라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서인지 첫 콤비네이션 점프부터 삐거덕거리며 넘어지면서 펜스에 부딪혔다.

ⓒ연합뉴스
2월7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중국 관중이 자국 선수를 응원하고 있다.ⓒ연합뉴스

“국가적 망신” 비난받은 초빙 인재 주이

뒤이어 3바퀴를 돌아야 하는 트리플 토루프에서 1회전하는 데 그쳤다. 결과는 처참했다. 개인 점수가 최하위에 그쳤고, 그 바람에 중국팀 순위는 3위에서 5위로 떨어졌다. 중국인들은 TV 생중계로 주이의 연기를 지켜보며, SNS를 통해 분노를 쏟아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서는 ‘주이 넘어지다’라는 해시태그를 단 동영상이 몇 시간 만에 2억 회 이상 조회됐다. “국가적 망신이다”는 댓글에는 ‘좋아요’가 1만 개 이상 달렸다. 무엇보다 본토 출신 선수들을 제치고 왜 주이가 중국 대표로 뽑혔는지 비난하는 댓글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마녀 사냥’식 여론몰이에 몇몇 네티즌은 대표 선발전의 결과를 제시하며 반박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런 상황을 주이 스스로 예견한 듯했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내가 여자 대표로 나서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것을 알고 있어 부담을 느꼈다”면서 “할 수 있는 것을 잘 연기하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월7일 열린 단체전 프리 경기에서 주이는 초반 트리플 플립 점프를 뛰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이날 붉은 경기복을 입은 채 빙판에 나동그라지는 모습도 생중계됐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주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하염없이 울었다.

하루 전날 중국인들이 쏟아냈던 엄청난 비난과 조롱을 알고 있는 듯했다. 본래 주이는 미국인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고, 양친은 중국 이민자 출신이었다. 8세부터 피겨스케이팅을 배우기 시작해 16세에는 모든 트리플 회전과 점프 기술을 터득했다. 따라서 당시 중국 피겨 대표팀 감독이었던 천루의 주목을 받았다. 2018년 천루는 외국에서 활동하는 화교 선수들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중국팀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여기에는 중국 정부의 뒷받침이 있었다.

베이징동계올림픽을 대비해 우수한 해외 자원을 중국에 귀화시켜 좋은 성적을 얻으려는 목적이었다. 피겨스케이팅에서는 천루의 이름을 따서 ‘천루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천루는 1994년 릴레함메르동계올림픽에서 중국 피겨스케이팅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달을 땄다. 또한 1998년 나가노에서도 2회 연속 동메달을 수상한 영웅이었다. 그렇기에 중국 정부는 전폭적으로 그를 후원했다. 이 천루 프로젝트에 10명이 참가했는데, 그중 끝까지 살아남아 베이징올림픽 대표에 선발된 이가 주이였다. 즉 주이는 중국이 초빙해 키운 해외 인재였다.

ⓒKyodo News 연합
2월7일 베이징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단체전 경기장에서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의 모습이 포착됐다.ⓒKyodo News 연합

중국어 능한 구아이링과 비교해 조롱하기도

주이가 통곡한 다음 날, 같은 미국 출신의 또 다른 영입 인재가 중국인들을 열광시켰다. 베이징 서우강 빅에어 경기장에서 열린 스키 프리스타일 여자 빅에어 결선에서 구아이링이 우승한 것이다. 중국 선수로는 스키 종목에서 처음 딴 금메달이었다. 이날 내내 중국은 온통 구아이링 이야기로 들끓었다. 국영 CCTV는 구아이링의 경기 장면을 반복적으로 방영했다. 모든 포털사이트는 구아이링 뉴스를 끊임없이 톱으로 올렸다. 심지어 베이징 올림픽스타디움 인근에서는 전통의상을 입은 구아이링을 그린 드론 500대가 밤하늘을 수놓았다.

분명 구아이링은 중국인들이 ‘대륙의 엄친딸’로 추앙할 만한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미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외모는 서양인이지만,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2019년부터 중국 국적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우수한 성적을 꾸준히 내, 올림픽 개막 이전부터 금메달 0순위였다. 지난해에는 스탠퍼드대학에 합격할 만큼 학업 성적도 뛰어나다. 사실 중국 소수민족 중 중앙아시아계 일부는 서양인과 외모가 비슷하다. 따라서 중국인은 중국어 구사력을 보고 자신과 같은 정체성을 판단하곤 한다.

주이는 부모가 모두 중국 이민자지만 중국어를 잘하지 못한다. 이에 반해 구아이링은 중국어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에도 익숙하다. 그렇기에 적지 않은 중국인은 “애국심을 얘기하기에 앞서 중국어부터 배워라”며 주이를 조롱했다. 주이가 중국에 오게 된 배경과 공정한 선발 과정을 거쳐 대표로 나선 사실은 무시한 채로. 심지어 주이는 2018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중국 국적을 취득했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손꼽히는 과학자로 캘리포니아대학 교수였으나, 딸의 장래를 위해 2020년 베이징대학으로 옮기기도 했다.

한편 구아이링이 출전한 경기장에는 또 다른 스포츠 스타 한 명이 등장했다. 지난해 11월 웨이보에 장가오리 전 국무원 부총리에게 성폭행당했다고 폭로했던 테니스 스타 펑솨이였다. 펑솨이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경기를 관전했다. 이번 베이징올림픽과는 전혀 무관한 그였기에, 뜻밖의 행보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개막 직후인 2월6일 펑솨이가 올림픽 격리구역 안 호텔에서 한 프랑스 스포츠신문과 가진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펑솨이는 “(웨이보) 글이 바깥세상에서 엄청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며 “나는 누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사라진 적이 없다”며 자신의 안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반박했다. 펑솨이의 이런 발언은 기획된 연출 아래 움직이면서 나왔다는 인상을 감출 수 없었다. 2월7일 인터뷰 보도와 동시에 IOC는 보도자료를 내 “2월5일 바흐 위원장이 펑솨이를 면담하고 저녁식사를 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월8일 둘이 경기장에 함께 참석했다. 누구 봐도 중국이 국제적인 파문을 일으켰던 펑솨이를 전면에 내세워, 떨어진 국가 위신을 다시 세우려는 행보였다. 중국에 이번 베이징올림픽 무대는 망신이 용납되지 않고, 애국이 우선시되는 장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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