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넘쳐나는 세상, 설탕세 도입해야”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2.02.24 07:30
  • 호수 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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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영호 서울대병원 교수 “가당 식품 줄이도록 유도…질병 치료가 아니라 예방에 필요”

최근 세계 각국이 자국민의 건강 유지와 질병 예방을 위해 공통으로 도입한 제도가 ‘설탕세(Sugar Tax)’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6년 가당 음료에 설탕세 부과를 권장했기 때문이다. WHO는 가당 음료에 20% 이상의 세율로 설탕세를 부과하면 가당 음료 소비와 칼로리 섭취가 줄어 비만·당뇨 등 질병 예방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설탕세를 도입한 국가는 45개국으로 증가했다. 

설탕세는 1922년 노르웨이가 최초로 도입했다. 비만 등을 예방하기 위해 초콜릿이나 설탕이 들어간 제품에 세금을 부과했다. 비만은 많은 질병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비만 자체가 합병증을 유발한다. 대한비만학회에 따르면 비만한 사람은 비만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관상동맥질환 1.5~2배, 고혈압 2.5~4배, 당뇨병 5~13배 발생 위험이 높다. 

통계청의 국가지표체계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인의 비만율은 38.3%로 국민 3명 중 1명은 비만인 셈이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유행으로 신체활동이 줄어 비만은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조사에서 응답자의 42%는 코로나19 유행 이전보다 몸무게가 평균 3.5kg 늘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비만을 줄일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한국건강학회 이사장)는 설탕세 도입을 주장한다. 설탕세는 건강한 사회환경을 만들고 건강 불평등(health inequality)을 해소하는 주요한 방법이라는 것이 윤 교수의 연구 결과다. 

ⓒ사저널 박은숙
ⓒ사저널 박은숙

설탕세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 유전이 5%, 의료가 10%, 생활습관이 30%이며 사회환경은 55%나 된다. 먹방(먹는 방송)이나 가당 식품이 넘쳐나는 사회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비만해진다. 비만율이 올라가자 정부는 가당 식품 섭취를 줄이라며 개인 문제로 치부한다. 비만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환경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부가 국민 건강을 위해 사회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예컨대 가당 식품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정보를 제공하고 기업에는 가당 식품 생산을 줄이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 한 가지 방법이 설탕세다.”

건강보험이 있는데 설탕세가 따로 필요한가.

“우리나라 건강보험 재정은 대부분 치료 목적으로 사용된다. 설탕세는 질병 예방 목적이다. 당류를 많이 먹어 질병이 생긴 후에 치료하는 비용과 이를 예방하는 비용을 따지면 당연히 예방하는 쪽이 바람직하다. 질병으로 인한 노동력 상실과 인력·시간 낭비도 상당하다. 설탕세를 부과하면 초기에 가계 부담이 생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국민 건강과 건강보험 재정에 유리하다.”

설탕세는 말 그대로 설탕에만 부과해야 하나. 

“비만 문제는 식습관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따라서 비만으로 인한 건강 문제에 대한 정책은 주로 식품에 대한 규제나 가격 수단이 포함된다. 나라에 따라 건강세, 교정세, 비만세, 가당 음료세, 탄산음료세, 과자세, 정크푸드세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나 일반인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설탕세가 흔히 사용된다. 설탕세는 설탕이나 감미료 등 모든 당류를 첨가한 식품과 음료에 부과된다.”

비만의 원인은 다양한데 왜 당류만 문제 삼나.

“아주 옛날에는 자연식품으로 당을 섭취했으나 현재는 산업 발달로 식품에 당을 첨가한 가공식품이 개발돼 그런 식품에 입맛이 길들어졌다. 그러나 비만과 질병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 몸은 아직 당분을 적절히 처리할 준비가 안 된 셈이다. 당류는 비만뿐만 아니라 각종 질병의 원인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당류는 당뇨, 비알코올성 지방간, 충치, 대사장애, 알츠하이머병 등과 관련이 있다. 암도 당분을 에너지로 삼아 증식한다. 그래서 가당 식품을 줄여야 비만뿐만 아니라 각종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당류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점은 과학적으로 확인됐나.

“유럽 10개국의 연구 결과를 분석해 보니, 가당 음료를 하루 2잔 이상 마신 사람은 1잔 미만 소비한 사람보다 사망률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가당 음료는 순환기계 질환과 소화기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과 명백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관찰됐다. 특히 유전적 변화가 왕성한 청소년기에 당류를 많이 먹으면 성인이 됐을 때 각종 질병과 암 위험이 증가한다. 어린 나이에 흡연할수록 건강에 더 나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청소년이 가당 식품 섭취를 줄이면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되나. 

“세계적인 의학저널에 발표된 연구 결과가 많다. 예컨대 과체중 또는 비만한 4~12세 아이들에 대해 가당 음료를 1년간 제한한 후 체중 증가를 비교한 임상시험이 있다. 가당 음료를 마신 그룹은 체중이 7.37kg, 무가당 음료를 먹은 아이는 6.35kg 각각 증가했다. 체중이 적게 증가하는 효과가 검증된 것이다.”

한국인의 당류 섭취량은 총열량의 7.4%로 WHO의 권고 기준 10%보다 낮다는 시각이 있다. 

“그것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분석 결과다. 그런데 당분을 줄이는 정책을 내놔도 시원치 않을 판에 식약처는 10%가 안 된다는 점에만 초점을 맞췄다. 총열량 가운데 당류 비율이 10%를 초과하는 사람이 국민 중 25%가 넘는다는 점, 특히 유아와 청소년 2명 중 1명은 10% 이상이라는 점은 강조하지 않는다. 정부가 당류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거나 축소한다는 인상을 준다. 국민 건강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다. 사실 WHO의 당류 섭취 권고 기준은 10%라고 하지만, 의료계는 5% 이내로 제한해야 질병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본다.”

한국의 비만율 5.3%는 OECD 평균 19.5%보다 낮으므로 설탕세 도입이 시기상조라는 시각이 있다.  

“그것은 BMI(체질량지수: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를 서양인 기준인 30으로 계산한 경우다. 서양인보다 체구가 작은 동양인 기준인 25로 계산하면 2018년 성인 비만율은 남성 42.8%, 여성 25.5%다. 남성 10명 중 4명, 여성 4명 중 1명이 비만인 셈이다. 절대로 시기상조가 아니다.”

설탕세를 도입해 효과를 본 외국 사례는. 

“2018년 설탕세를 도입한 영국에서는 1인당 설탕 소비가 28% 줄었다. 이에 따라 비만 환자는 매년 14만 명, 당뇨 환자는 1만9000명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2014년부터 가당 음료에 10%의 세금을 부과한 멕시코는 가당 음료 소비가 2014년 5.5%, 2015년 9.7%로 매년 감소했고, 생수 구매는 16% 증가했다. 멕시코는 설탕세를 10년 시행한 후 비만율이 약 2.5% 줄 것으로 예상한다. 그래서 2022년 당뇨병과 뇌졸중(심근경색 포함)이 각각 20만 건과 2만 건 감소할 것으로 추정한다.”

반대 사례도 있지 않나. 

“2011년 덴마크는 고열량 식품에 비만세를 부과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원정 쇼핑을 하거나 수입품이 늘어 나서 1년 만에 폐지했다. 그러나 이는 단기적 부작용이다. 수입품에도 관세와 세금을 이중으로 물리면 된다.” 

국민의 조세저항은 없을까.

“가당 식품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공감대가 먼저 형성돼야 한다. 건강에 좋지 않은 식품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데다 설탕세 부과로 가격까지 비싸면 소비자는 그런 식품을 외면한다. 식품기업은 당분을 넣지 않은 건강한 제품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선순환을 유도하는 것이 설탕세 도입의 취지다.”

국민 공감대를 어떻게 형성하면 좋을까. 

“담배가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금연학회가 발족하고 담뱃갑에 이를 알리는 사진이나 경고 문구를 붙였다. 가당 식품에도 열량과 당분 등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를 표기하고 과도한 당분 섭취는 건강에 해롭다는 경고도 부착해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설탕세를 도입한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가당 음료 용기에 비만과 당뇨 등을 유발한다는 내용을 표기하도록 했다.”

기업들이 설탕세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가당 식품의 가격이 오르면 해당 기업의 가격 경쟁력은 떨어진다. 따라서 건강 친화적인 제품을 생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런 제품을 만드는 기업에는 세금을 감면해 주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콜라에 설탕이 많이 들어가는 것을 지적하자 제로 콜라가 나온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

설탕세를 부과하면 가당 식품 소비가 감소하는 듯하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담뱃세에서 볼 수 있었던 현상이다. 오랜 기간 형성된, 단맛에 길든 입맛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으므로 시간이 걸린다. 그렇지만 점차 무가당 또는 저가당 식품을 찾는 식이 행태의 변화가 일어난다. 당분이 많은 제품에서 적은 제품으로 소비가 변화하면서 전체적인 가당 제품의 소비가 줄어든다.”

부자만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저소득층은 가격 부담을 느끼는 부작용은 없는가.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가당 식품이나 정크푸드와 같이 값싼 음식의 소비가 많다. 즉 건강하지 않은 식품을 많이 소비하는 저소득층이 건강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는 이른바 건강 불평등 문제가 발생한다. 설탕세 재정은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즉 저소득층, 고령자, 청소년 등을 위한 건강 프로그램에 사용해야 한다. 영국도 설탕세 재정을 학교급식 개선, 초등 체육 및 스포츠 개선을 위해 사용한다. 또 이들에게 건강 너지 포인트를 지급해 건강 친화 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면 소비자가 건강한 식품을 찾는 선순환 구조가 된다.”

소비자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저항도 있지 않나. 

“설탕세는 고속도로 통행세나 속도·신호 위반에 부과하는 과태료와 같은 효과를 낸다. 이는 운전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줄이고 교통신호를 지켜 교통사고를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설탕세도 소비자 선택의 자유를 막는 것이 아니라 질병을 예방해 건강 유지에 도움을 준다.” 

설탕세 비율은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나. 

“WHO는 설탕세 비율이 20% 이상은 돼야 효과적이라고 판단한다. 1000원짜리 가당 식품에 200원의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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