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전설 엘튼 존과 뮤지컬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20 12:00
  • 호수 168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 75세지만 현역으로 여전히 왕성한 활동
팀 라이스와 만나며 뮤지컬과도 인연

전 세계를 통틀어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아티스트를 꼽아본다면 아마도 다섯 손가락 안에 엘튼 존(Elton John)이 들 것이다. 그는 비틀스,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에 이어 ‘역대 음반 판매량 톱4’에 들었고 대중음악과 영화,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현존하는 모든 매체에 관여해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1947년 런던에서 태어나 올해로 75세의 노년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가 남긴 업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와 두아 리파가 함께 부른 《콜트 하트(Cold Heart)》란 곡이 1월15일자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7위까지 올랐다. 지난해 영국 차트에서 이미 톱10에 오르며 10년 단위로 무려 60년(1970년대~2020년대) 동안 톱10 히트곡을 발표한 첫 솔로 아티스트라는 대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번 앨범은 팬데믹 기간 동안 다른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곡들을 모은 생애 32번째 정규 스튜디오 앨범으로 제목도 ‘락다운 세션(The Lockdown Sessions)’이다.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아이다》의 한 장면ⓒ신시컴퍼니 제공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32번째 정규 스튜디오 앨범 발매

엘튼 존은 여전히 현역이지만 그의 전성기는 1970~90년대였다. 그 시기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영화 《로켓맨》(2019)에서 태런 애저튼이 연기한 실존 인물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뮤지컬 애호가들에게는 《라이온 킹》 《아이다》 《빌리 엘리어트》 등 많은 걸작을 쓴 뮤지컬 작곡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사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중음악 아티스트가 굳이 뮤지컬 작곡가로까지 활동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진 사람도 많다. 뮤지컬과 대중음악은 창작 방식도 다르고, 시장도 다르기 때문에 병행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다. 대중음악 작곡은 일반적으로 멜로디를 먼저 쓰고 가사를 나중에 붙이는 이른바 ‘뮤직 퍼스트(Music First)’ 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엘튼 존은 작사가를 별도로 두고 자신은 작곡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활동 초반에는 그도 작사, 작곡, 노래를 모두 담당하는 싱어송라이터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1967년 작사가 버니 토핀을 만나면서 그와 평생 창작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파트너가 먼저 써준 가사를 받아들고 ‘리릭 퍼스트(Lyric First)’ 방식으로 빠르게 곡을 완성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방식은 드라마 중심의 서사가 있는 가사가 필요한 뮤지컬에서는 일반적이기에 그의 작곡 방식은 뮤지컬에도 잘 맞았던 것이다. 두 콤비의 협업으로 엘튼 존의 히트곡 중에는 드라마적인 가사 구성의 곡도 많다.

그의 첫 뮤지컬 가사 파트너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에비타》로 유명한 팀 라이스였다. 1994년 발매된 디즈니의 《라이언 킹》 애니메이션 OST를 맡게 된 팀 라이스는 작곡가로 엘튼 존을 추천했는데, 엘튼 존이 대중음악을 넘어 ‘뮤지컬 작곡가’가 되는 커리어의 시작이었다. 두 사람은 가사가 있는 다섯 곡을 이 음반에 수록했다. 이듬해 《라이언 킹》은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고, 1997년에는 무대 뮤지컬로 제작돼 브로드웨이 걸작 반열에 올랐다.

팀 라이스와 엘튼 존의 콤비 플레이는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하지 않은’ 디즈니의 첫 무대 뮤지컬 《아이다》로 이어졌다. 변화가 있다면 《라이언 킹》은 엘튼 존 외에 다른 작곡가들의 곡도 함께 포함돼 있어 컴필레이션 음반에 가까웠지만, 《아이다》(1999)에 이르러서는 비로소 엘튼 존이 25곡을 쓴 단독 작곡가로서 크레딧을 올리게 됐다는 것이다. 《아이다》는 엘튼 존에게도 크나큰 영예를 안겨줬다. 2000년 토니상에서 작사·작곡상을, 2001년 그래미에서는 최우수 뮤지컬 앨범상을 수상했다.

사실 토니상은 대중음악 히트곡으로만 이뤄진 주크박스(Jukebox) 뮤지컬에 대해 인색한 편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이란 기계 안에 여러 장의 레코드가 내장돼 있어 동전을 넣고 원하는 음악을 선택해 감상하는 주크박스를 빗대, 기존 히트곡들을 모아 만든 뮤지컬의 부족한 오리지널리티를 지적하고 이를 비하해 표현하는 단어다. 단적으로 2002년 토니상에서 대표적인 주크박스 뮤지컬 《맘마미마!》는 후보에 오르지도 못했다. 아마 엘튼 존도 자신의 기존 곡들로 뮤지컬을 만들었다면 비슷한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이는 토니상 작사·작곡상의 명칭이 ‘오리지널 스코어 상’이기에 뮤지컬을 위해 새로 쓰인 음악과 가사가 필요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엘튼 존은 이미 너무나 유명한 대중음악 작곡가이자 가수임에도 뮤지컬 분야에서는 신인 창작자, 단독 작곡가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엘튼 존은 《아이다》를 위해 특유의 화려한 꾸밈음과 높은 음역대가 느껴지는 많은 명곡을 썼다. 암네리스의 오프닝 곡 《Every story is a love story》는 철학적인 깊이가 느껴지는 가사와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패션 애호가로서 암네리스의 열정을 코믹하게 표현하는 《My Strongest Suit》와 비록 노예로 끌려왔지만 누비아 국민을 생각하는 아이다 공주의 강인한 의지를 노래하는 《Dance of the Robe》, 그리고 이집트의 장군 라다메스와의 사랑의 듀엣곡 《Elaborate Lives》 등은 관객들에게 이 작품이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는 뮤지컬로 기억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특히 뮤지컬 《아이다》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한국 제작사가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프러덕션의 무대 세트를 인수해 라이선스 공연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5월에 서울 블루스퀘어 극장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왼쪽부터 가수 엘튼 존과 뮤지컬 《아이다》의 한 장면ⓒ1freewallpapers·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아이다》 통해 한국과도 첫 인연

엘튼 존은 최근 서울 디큐브 극장에서 막을 내린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가 2000년에 개봉한 동명의 원작 영화를 보고 창작진들에게 뮤지컬 각색을 제안해 성사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영화 시나리오를 쓴 리 홀 작가와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좌파 사회주의 성향의 예술가들로서 어찌 보면 화려한 이미지의 엘튼 존과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엘튼 존은 양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소위 ‘핵인싸’ 스타다. 쇠락하고 있는 탄광촌에서 태어났지만 발레에 재능이 있는 소년이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사랑으로 성장하는 드라마에 깊이 매료된 엘튼 존은 ‘사회주의자’ 동료들과 함께 뮤지컬 창작작업에 참여했고, 세 사람의 치밀한 협업으로 무대 버전 《빌리 엘리어트》 역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세계 정상에 오른 살아있는 전설이지만 여전히 동료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즐기고, 드라마에 꾸준히 도전하고 있는 엘튼 존의 뮤지컬 인생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가 작곡가로 참여한 뮤지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올해 해외에서 초연한다는 소식이 있다. 빌보드 차트에서도 그의 최신곡이 들리고 그의 손끝에서 쓰인 음악들을 뮤지컬에서도 계속 들을 수 있는 이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건 동시대인으로서 참으로 행운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