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재계 판도를 뒤흔들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02.24 11:00
  • 호수 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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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메타버스 플랫폼 주목
반도체와 2차전지 이을 신성장동력 될까

메타버스가 재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메타버스(Metaverse)는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상’이나 ‘우주’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가 합쳐진 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하고, 언택트(비대면) 문화가 확대되면서 MZ세대에게 친숙한 이 메타버스 플랫폼이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통계 전문업체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1년 시장 규모는 307억 달러(2월16일 환율 기준으로 36조7786억원)에서 2025년에는 2969억 달러(355조6862억원)로 10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30년이 되면 시장 규모는 5000억 달러(약 6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효자 산업인 반도체 시장과 맞먹는 거대 시장이 탄생한 셈이다.

ⓒ연합뉴스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인 ‘CES 2022’가 개막 한 1월5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 벤션센터에 설치된 롯데정보통신 메타버스 부스를 찾 은 관람객이 ‘버추얼 콘서트’를 체험하고 있다.ⓒ연합뉴스

글로벌 유수 기업 넘어선 美 게임회사 평가액

때문에 IT나 엔터업계는 시장 선점을 위해 ‘메타버스행’ 열차에 서둘러 올라타고 있다. 미국의 게임업체인 로블록스가 대표적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로블록스는 미국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서비스가 됐다. 일평균 이용자만 40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2월 로블록스는 미국 증시에 상장했는데, 말 그대로 대박을 터트렸다. 시장가치는 383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으로 약 44조원)로 글로벌 기업인 현대차나 포스코, LG전자, SK이노베이션의 시가총액을 넘어섰다. 미국의 유명 래퍼 트래비스 스콧은 지난해 PC게임 포트나이트에서 콘서트를 열었고, 우리 돈으로 216억원의 수익을 내기도 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메타버스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기회의 땅’으로 여기고 있다. 《메타버스-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의 저자인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전 세계 시가총액 1~8위 기업 중 절반이 이미 메타버스 관련 기업”이라면서 “이들 기업의 성장세 역시 오프라인 기반의 제조나 유통기업을 넘어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일까.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최근 “5년 이내에 페이스북을 SNS 기업에서 메타버스 기업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사명 역시 지난해 말 ‘Facebook’에서 ‘Meta’로 변경했다. 이미 페이스북 직원 중 20%가 AR이나 R 관련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간단한다. 메타버스가 최근 MZ세대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9~12세 어린이들이 유튜브에 머무르는 시간보다 로블록스에 머무르는 시간이 2.5배 길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결국 메타버스에 미리 올라타야 미래 고객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도 최근 메타버스 플랫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선두주자는 네이버 자회사 네이버제트(네이버Z)가 운영하는 ‘제페토’다. 지난해 가입자는 2억6000만 명으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업계 선두인 넷플릭스를 앞선 상태다. 이용자 역시 80~90%가 외국 어린이들이다. 이들은 직접 찍은 사진으로 자신과 닮은 아바타를 만들고, 다양한 테마 공간에서 다른 아바타들과 소통한다. 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된다면 메타버스는 포털이나 OTT의 영향력을 넘어설 것으로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LG 이노텍 제공
LG이노텍이 최근 실시한 메타버스 채용 설명회 모습ⓒLG 이노텍 제공

가입자 2억6000만 명 제페토, 넷플릭스 제쳐

국내외 기업들이 앞다퉈 제페토에 모여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이키와 푸마 등 글로벌 브랜드들은 최근 제페토에 브랜드숍을 오픈했다. 플랫폼 내 다운타운과 드라이빙 존에서는 현대차의 쏘나타를 시승할 수도 있다. CU는 제페토의 한강공원 맵에 편의점을 개설했다. 아이돌그룹인 블랙핑크는 제페토 안에서 가상 팬사인회를 개최했는데, 4600만 명이 참여했다. 명품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구찌는 제페토에 구찌 빌라를 지었다. 이곳에서 아바타를 이용해 패션 아이템을 착용해본 후 구매할 수 있다.

전통적인 꿀뚝기업들도 늦었지만 ‘메타버스 따라잡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국내 가전업계 양대 산맥인 삼성과 LG그룹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1월5일 제페토와 함께 ‘마이 하우스(My House)’ 서비스를 선보였다. 마이 하우스는 삼성전자의 다양한 제품과 가구, 조명, 패브릭 등 인테리어 아이템으로 가상세계에서 ‘나만의 집 꾸미기’가 가능한 서비스다. MZ세대가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 서비스를 개발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다. 출시한 지 한 달도 안 돼 글로벌 누적 방문 횟수가 400만 건을 돌파했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마이 하우스를 활용해 MZ세대와의 접점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영희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센터 부사장은 “마이 하우스의 성공을 기반으로 메타버스에 최적화된 고객 경험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면서 “현재 회사가 추진 중인 ‘YouMake’ 캠페인과도 시너지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G그룹 역시 메타버스를 활용해 ‘고객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다. LG의 경우 메타버스를 교육과 채용 분야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LG화학과 LG디스플레이는 최근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해 신입사원 교육이나 연수를 진행했다. LG이노텍의 경우 지난해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해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메타버스 채용 설명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들 회사는 향후 사내 임직원 교육에도 메타버스 기술을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LG전자는 최근 국내 메타버스 플랫폼 기업인 브이에이코퍼레이션과 공동 R&D(연구·개발)센터를 오픈했다.

ⓒ배스킨라빈스 제공
배스킨라빈스숍인 ‘배라 팩토리’ 모습ⓒ배스킨라빈스 제공

이 밖에도 SPC그룹이 운영하는 베스킨라빈스는 지난해 12월 제페토에 단독 공식 맵 ‘배라 팩토리’를 론칭했다. 배라 팩토리는 기존 맵 안에 단순 입점하는 것이 아니다. 가상현실 속 브랜드 체험 공간으로 차별화는 ‘월드맵’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XR(확장현실) 기반 에듀테크 전문기업인 엑스알터치는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실시한 ‘비대면 스타트업 육성사업’의 에듀테크 시스템 지원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 회사는 최근 국내 최초로 메타버스를 활용한 돼지 사육 가상교육장을 오픈했고, 양돈 분야 예비 종사자들을 상대로 실습을 진행했다.

ⓒ하나은행 제공
하나은행이 개최한 Smart 홍보대사 취업특강ⓒ하나은행 제공

코로나 확산에 따른 ‘반짝 유행’ 우려도

물론 일각에서는 메타버스 유행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싸이월드’나 ‘세컨드라이프’처럼 그동안 비슷한 기업이 반짝 유행하다가 경쟁에 밀려 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메타버스 서비스의 진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주 이용층 역시 MZ세대에서 중장년층으로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다. 일례로 하나은행은 최근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한 언택트 취업특강이나 맞춤형 금융교육, 신입행원 멘토링 등을 잇달아 실시했다. 이번 행사에는 기존 행원이나 인사 담당자뿐 아니라 박성호 행장이 아바타 캐릭터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신한은행 X GS25 편의점 혁신점포 개점식 모습ⓒ신한은행 X GS25 제공

신한은행도 지난해 10월 GS리테일과 손잡고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에 편의점 혁신점포 1호점을 오픈했다. 오픈식은 가상공간에서 진행했는데, 진옥동 행장과 허연수 GS리테일 부회장, 최문순 강원지사 등이 아바타로 분해 신한은행의 메타버스 공간에 구축된 ‘GS25×신한은행 혁신점포’에 참석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정춘화 입법조사관은 “지금은 MZ세대, 그중에서도 10대가 메타버스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향후 메타버스가 장년층이나 노년층으로 확대될 경우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면서 “이런 상황에 맞게 플랫폼 접근 방식이나 제도를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몰려오는 메타버스에 투자시장도 ‘지각변동’

메타버스가 각광을 받으면서 국내 투자시장 역시 변하고 있다. 메타버스가 국내 증시를 흔들 새로운 ‘테마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메타버스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특정 기업이 메타버스 관련 기업에 투자했다고 알려지면 주가가 ‘요동’을 칠 정도다.

지난해 3월 상장한 시각특수효과(VFX) 전문기업 자이언트 스텝이 대표적이다. 공모가는 1만1000원이었는데, 상장 첫날 ‘따상’(공모가의 두 배로 시작해 상한가)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주가는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2월16일 현재 주가는 4만4400원으로 고점 대비 많이 하락했지만, 공모가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7월에는 증강현실(AR) 개발 솔루션 업체인 맥스트가 코스닥에 상장해 대박을 터트렸다. 청약 당시 공모청약 경쟁률은 6762.75대 1로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상장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모가(1만5000원)의 두 배인 3만원에 시초가가 정해졌지만, 상장 첫날 ‘따상’, 다음 날에도 상한가인 ‘따상상’을 기록했다. 자이언트 스텝과 마찬가지로 현재 주가는 4만원대로 조정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이 밖에도 VFX 기술을 보유한 위지윅스튜디오나 덱스터도 메타버스 테마주로 분류되면서 최근 1년간 주가가 각각 269.3%, 191.7% 상승했다.

때문에 자산운용 업계는 물론이고 재계에 메타버스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KB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은 지난해 각각 ‘KB 글로벌 메타버스경제 펀드’와 ‘삼성 글로벌 메타버스 펀드’를 출시했다. LG그룹의 기업형 벤처 캐피털(CVC)인 LG테크놀로지벤처스도 지난해 하반기 미국의 가상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분야 스타트업인 웨이브(Wave)에 거액을 투자했다. LG그룹의 한 관계자는 “2019년부터 LG테크놀로지벤처스가  메타버스 분야에 투자한 금액만 1200만 달러 이상이다”면서 “향후에도 메타버스 구현을 위한 필수 기술인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분야의 글로벌 유망 기업에 투자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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