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에서 20대 여성이 길을 잃었다 [배정원의 핫한 시대]
  •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19 14:00
  • 호수 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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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적이고 비겁한 與에 등 돌린 ‘이대녀’, 反페미니즘 부추기는 野에도 부정적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시작부터 여야 두 거대 정당이 상대 후보와 가족을 둘러싼 흑색선전과 비방, 난타전을 벌이는 탓에 정작 유권자는 후보의 정책이나 인물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겼다. 언론매체의 객관성을 잃은 자극적이고 관음증적인 보도나 편향된 논평으로 유례없이 높은 후보자에 대한 비호감도 때문에 유권자들은 차선이 아닌 차악을 뽑는 괴로운 선택에 직면하게 되었다.

2022 대선의 특징은 무엇보다 ‘세대와 성별의 갈라치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전이라는 것 자체가 자신이 지지하는 당과 후보를 선택하는 유권자들의 권력 위임을 받아 정당성 있는 권력을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략은 필요하겠지만, 이번 양당의 전략은 이전투구의 장을 만들었다. 선거야 치르겠지만 당선된 새 대통령이 분열된 국론을 어떻게 봉합해 갈지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20대 여성들이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모두 부정적 인식이 강한 가운데 1월12일 기본소득당 대선 캠프의 여성 청년들이 국회에서 ‘여기 이대녀가 있다, 2022 서프러제트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기본소득당

20대, 개인 가치 중시하고 ‘공정성’에 민감해

2016년 총선 때부터 한국 사회의 모든 권력이나 인구, 문화에서 수도권과 세대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앞으로는 이 같은 경향이 더 뚜렷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전문가가 많았다. 이번 선거에는 이미 지지자를 정한 듯 보이는 4050세대와 60대 이상 유권자에 비해 과거 선거에서 항상 변방으로 치부되었던 20대가 놀라운 결집력으로, 심지어 대선 당락의 최대 캐스팅보트라 할 만큼 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20대라 통칭되는 18~29세 남녀는 그들의 윗세대가 개인보다는 사회와 공동체를 우선하는 사회적인 인간이었던 것과 달리, 훨씬 개인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개인 중심적인 인간들이다. 그들은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과거를 답습하지도 않는다. 또 무엇보다 ‘공정성’과 ‘정치적 올바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거대 양당으로 나누는 정치 프레임에서 자유롭고, 그보다는 이슈에 따라 지지 의견이 수시로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20대는 같은 세대임에도 젠더 갈등으로 인해 남녀가 지지 성향이 극명하게 나뉘는 양상을 보여 선거의 향방을 가늠하기 더 어려워졌다. 사실 20대가 이렇게 된 데는 싸움을 부추긴 거나 진배없는 정치권과 언론의 책임이 가장 크다.

이제까지 젊은 세대는 대체로 진보 성향을 보여왔다. 삶의 경험이 적고 선악의 흑백논리가 분명한 그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해 보궐선거부터 20대 남성 세대에서 다른 조짐이 나타났는데, 민주당을 지지했던 그들이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로 지지 대상을 바꿨다. 20대 여성 역시 그동안 민주당의 강력한 지지 세력이었고, 2012년 대선부터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그런데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적지 않은 수(22%)가 민주당이 아닌 소수 진보정당의 후보를 선택했다.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난 것일까?

20대 남성들의 변심(?)에는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편향되고 과장 선전된 페미니즘 정책이 있었다. 실제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 개념을 지독히 부정적으로 인식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페미니즘은 결코 여성우월주의가 아니며, 남성과 같이 여성이나 사회적 소수자도 똑같은 평등과 공정을 누리고 살자는 주의다). 취임 초 페미니즘 대통령을 자임한 문재인 정부는 여성의 불평등 제고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실행한 것이 사실이다. 비록 그것이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했더라도 말이다.

이에 대해 20대 남성들은 문재인 정부가 페미니즘 우호정책만을 폈기에 자신들에게 박탈감을 안겼다고 생각한다. 20대 남성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살기가 정말 더 힘들어졌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여성정책(실제 여성들에겐 크게 도움이 안 되었지만)은 젠더 갈등의 모티브를 제공했으며, 그 또래 남성들이 치러야 하는 병역 의무나 취업난에 대한 사회의 무시가 그들로 하여금 같은 세대 여성들을 적대시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20대는 남녀를 불문하고 경제적으로 불안한 세대인데, 몇 년 전부터 가속화되는 코로나19 팬데믹은 고용시장을 더욱 악화시켜 취업난을 부추겼다. 게다가 무엇보다 20대 남성들을 등 돌리게 만든 것은 현 정부 주요 인사의 불공정한 자녀 입시 문제와 부동산 정책의 패착이었다. 거듭된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서울과 수도권 집값이 너무 치솟았고, 이는 사회·경제적으로 독립 압박을 받는 20대 남성들에게 분노와 좌절감을 안겼다.

20대 여성에게도 여권 인사들의 내로남불적인 성희롱 범죄, 특히 여성인권운동에 앞장섰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범죄 후 침묵과 부인,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부르는 등 2차 가해로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극도의 실망감과 좌절을 안겨 주었다. 또 급증하는 여성 대상 폭력과 함께 장기화되는 코로나19는 그렇잖아도 어려운 20대 여성들의 취업시장을 악화시켰고, 실제로 많은 젊은 여성이 일을 못 하고 놀고 있으며 우울감이 커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

 

여성을 ‘생산과 돌봄’의 역할로만 자리매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20대 남성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마치 반(反)페미니즘으로 비칠 정도의 공약들을 내놓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여성가족부 해체와 성폭력 범죄 무고죄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20대 남성들을 위한 구애인데, 실제 이들은 윤 후보의 기대에 부응하는 듯하다. 윤 후보는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면서 마치 자신이 2030 남자들을 대변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함께 20대 남녀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렇듯 20대 여성들에게 윤 후보의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정치보복’을 연상시키는 듯한 발언부터, 배우자의 비리에 공정하지 못한 태도, ‘쩍벌’과 ‘쭉벌’로 소환하는 특권, 민폐, 권위의식, 공중도덕 문제 등을 20대 여성은 곱게 보지 않는다. 민주당의 이중적이고 비겁한 모습, 이재명 후보의 인격적 문제들 때문에 대다수의 20대 여성은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듯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지지 후보를 정하기도 쉽지 않아 고민을 하는 듯 보인다.

실제 전체 유권자의 19%쯤 되는 20대 유권자의 절반이 여성이다. 게다가 20대 여성들은 결집력이 강하다. 그런 여성들이 이번 대선에서 길을 잃은 이유는 어떤 후보의 정책에도 ‘20대 여성’은 들어있지 않다는 데 있다.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대부분 돌봄시설이나 육아휴직 확대 등 보육과 교육에 치우쳐 있고, 아이 없는 여성에게 난임시술비를 지원하는 등 여성을 ‘생산과 돌봄’ 역할로 자리매김할 뿐 비혼·독신 여성들을 위한 정책은 없다는 데도 문제를 제기한다.

학교에서, 또 밖에서 자신들을 위한 정책 제시는커녕 관심도 없는 것 같다는 소외감을 표현하는 20대 여성을 여럿 만났다. 그래서 많은 20대 여성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고 하고, 그들은 대표적인 부동층이 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과연 20대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일 차기 대통령은 누구일까.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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