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이래서 넷플릭스와 경쟁할 수 있을까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26 11:00
  • 호수 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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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는 물론 서비스도 기대 못 미쳐
로컬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 결정적

디즈니+(이하 디즈니 플러스) 서비스가 시작될 때만 해도 넷플릭스의 대항마가 될 거라는 비교들이 나왔지만, 현재 디즈니 플러스에 대한 관심은 조용히 가라앉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디즈니 플러스의 애초 기대들을 무너뜨리고 있는 걸까. 

2월16일 디즈니 플러스는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그리드》의 서비스를 시작했다. 어찌 보면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에 진출한 이래 가장 큰 기대감을 갖게 한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비밀의 숲》이라는 첫 작품으로 대중적 인기와 더불어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낸 이수연 작가의 첫 OTT 오리지널 작품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이수연 작가는 2017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국제TV드라마 톱10에 《비밀의 숲》을 올리면서 해외에서도 주목받은 작가다. 

태양의 흑점 폭발로부터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보호막인 ‘그리드’와 이를 운용하는 이른바 초국가적인 관리국이 등장한다는 점도 기대감을 높인 중요한 요소다. 어딘가 슈퍼히어로가 등장할 것 같은 이 작품의 설정은, 디즈니 플러스의 히어로물과 어울리면서도 동시에 로컬 색깔의 차별성이 분명한 작품일 거라는 예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리드》 첫 회는 이런 기대감이 고스란히 구현된 작품의 완성도를 보여줬다.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그리드를 만들고 사라진 미스터리한 존재가 등장하고, 역시 비밀을 숨기고 있는 관리국 직원 김새하(서강준)와 범인을 쫓는 형사 정새벽(김아중)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추적극이 이어졌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수연 작가 특유의 전개 방식이 몰입감을 줬다는 평들이 쏟아졌다. 

디즈니+ 웹드라마《그리드》의 포스터ⓒ디즈니+ 제공
디즈니+ 웹드라마《그리드》의 포스터ⓒ디즈니+ 제공

《그리드》 공개와 함께 터진 불만들 

하지만 《그리드》에 대한 이러한 호평과 동시에 불만들 또한 쏟아졌다. 이유는 이 몰입감 넘치는 작품을 1주일에 수요일 단 1회씩 공개한다는 서비스 방식 때문이다. 한 번에 전회를 공개하는 넷플릭스의 서비스 방식에 익숙해진 OTT 구독자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물론 첫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로 공개됐던 《설강화》도, 현재 방영 중인 《너와 나의 경찰학교》도 모두 일주일에 두 편씩 공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그 불만도 적지 않았지만, 《그리드》는 특유의 몰입감이 시청의 즐거움일 수 있는 장르물이라는 점에서 불만이 더 컸다. 

결과적으로 《그리드》는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공개 방식 때문에 생각만큼의 화제성이 나오고 있지 않다. 이를 두고 디즈니 플러스가 지난 3개월간 한국 서비스를 통해 보여준 약점들을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애초 넷플릭스와 비교되며 그 아성을 위협할 OTT로 지목됐던 디즈니 플러스지만, 콘텐츠도 또 서비스 측면에서도 비교할 수 없는 엉성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TDI(The Data Incubator)가 디즈니 플러스의 출시 직후인 지난해 11월 3주부터 올해 1월 4주 현재까지의 앱 이용 현황을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디즈니 플러스는 앱의 전체 설치기기 수는 증가했지만 앱의 신규 설치기기 수와 활성사용자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신규 가입자가 줄어들고 있는 데다, 이미 가입한 이들도 디즈니 플러스 사용이 갈수록 감소했다는 뜻이다. 특히 활성사용자 수는 서비스를 시작한 작년 11월 3주만 해도 93.9%로 높은 비율을 보였지만 올해 1월 4주에는 3분의 1이 줄어든 33.5%에 머물렀다. 도대체 무엇이 신규 가입자도, 활용률도 뚝뚝 떨어뜨린 걸까. 

서비스 시작과 함께 디즈니 플러스에 쏟아진 자막 논란은 이 OTT의 로컬 정책이 넷플릭스와 비교해 섬세하지도 않고 또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걸 드러내준다. 자막이 ‘불법 콘텐츠 같다’거나 심지어 ‘구글 번역기보다 번역을 못 한다’는 반응들이 나올 정도였고, 심지어 이런 불편 사항들에 대한 상담에서도 서비스 직원들의 한국어 사용이 어색하다는 지적까지 받았다. 

또한 넷플릭스의 편리한 인터페이스를 경험한 구독자들은 디즈니 플러스의 불편한 인터페이스를 지적하기도 했다. 즉, 시청할 작품의 회차를 고르기 위해 하단으로 계속 찾아 내려와야 하는 점이나, 작품이 끝나고 나서 다음 회로 연결해 주는 방식 등에서도 디즈니 플러스는 넷플릭스와 비교해 너무 느리고 불편하다는 목소리들이 나왔던 것. 심지어 최근 한 매체가 디즈니 플러스의 부진 원인을 지목한 기사에서, ‘한국 드라마’를 치면 검색창에 ‘검색 결과 없음’으로 나오는 상황을 지적한 대목은 이 OTT의 서비스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보여준다. 적어도 한국에서 서비스를 한다면 ‘한국 드라마’ 같은 기초적인 검색어 지원은 당연히 돼야 하는 게 상식이다. 

JTBC 드라마 《설강화》의 한 장면ⓒJTBC
JTBC 드라마 《설강화》의 한 장면ⓒJTBC

디즈니+에 로컬 정책이 있기는 한가 

그나마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로 성과를 낸 건 《설강화》다. 국내에서는 역사의식 부족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해외에서는 수치적으로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OTT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한때 이 작품은 한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 홍콩에서 TV프로그램 부문 차트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 오리지널로 세운 《너와 나의 경찰학교》는 너무 소품인 데다 연출 완성도도 떨어져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리드》도 마찬가지다. 첫 회가 공개됐지만 한국에서만 반응이 있을 뿐 해외에서는 전혀 반응이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주일에 1회씩 찔끔찔끔 내보내는 방식으론 제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글로벌한 반응을 얻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디즈니+ 웹드라마 《너와 나의 경찰수업》의 포스터ⓒ디즈니+ 제공
디즈니+ 웹드라마 《너와 나의 경찰수업》의 포스터ⓒ디즈니+ 제공

사실 디즈니 플러스는 서비스 시작 전부터 넷플릭스 같은 로컬 정책을 쓰지 않을 거라는 얘기들이 돌았다. 마블부터 픽사, 디즈니, 스타워즈에 이르기까지 워낙 독보적인 IP들을 확보한 캐릭터 공화국이어서 자사가 직접 제작한 작품들을 그저 글로벌 서비스하는 방식으로 OTT를 운용할 거라는 예측들이었다. 이것은 넷플릭스가 전 세계의 로컬 제작사들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운용되는 것과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그리고 이런 예측은 현재 현실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주목되는 건 한국 드라마 같은 새로운 로컬 제작사와 협업한 작품들이 아니고, 디즈니가 제작한 블록버스터들이기 때문이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북 오브 보바펫》 《프리가이》 같은 작품이 그것들이다. 

현재 디즈니 플러스는 그래서 한국 서비스 초반에 기대됐던, 로컬에 기반한 다양한 ‘오리지널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이 거의 사라졌다. 초반에 기대를 갖고 1년 치 구독을 한 이들은 그래서 간간이 올라오는 영화관에서 했던 영화들을 OTT로 챙겨 보는 정도로 디즈니 플러스를 활용하는 중이다. 

물론 디즈니 플러스는 그 거대한 캐릭터 공화국이 강점인 건 분명하다. 그래서 로컬과의 협업보다 블록버스터 자체 제작을 통한 글로벌 정책을 쓰는 건 나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영어권 국가에선 상대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아시아권처럼 로컬 문화가 확실한 지역에서는 효과를 낼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심지어 콘텐츠가 아닌 서비스까지 부실하다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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