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 저격수’ 자처한 이준석…두 정치인의 ‘10년 악연’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2.02.2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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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내부선 “자중하라” “단일화 걸림돌” 경고도

야권 단일화 결렬의 책임을 두고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간 책임 공방이 격화하고 있다. 그 중심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거친 언사가 있다. 이 대표는 ‘고인 유지’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데 이어, ‘국민의당 내 배신자’ 프레임을 꺼내들며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 대한 조롱을 이어갔다. 당 안팎에선 이 대표의 언사 수위가 금도를 넘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대표와 안 후보 사이 신경전 이면에는 뿌리 깊은 ‘악연’이 있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평가다. 2012년 무렵 비슷한 시기에 정치를 시작한 두 사람은 같은 당에 몸 담은 적도 있지만, 수차례 선거를 치른 뒤엔 사이가 완전히 어그러졌다. 두 사람 간 해묵은 감정의 앙금을 해소하지 않으면 야권 단일화를 재개를 기대하긴 어렵단 관측도 나온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 시사저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 시사저널

野단일화판 뒤흔드는 李의 조롱

이 대표는 2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안 후보를 겨냥해 ‘속 좁은 사람’이라고 지칭하며 야권 단일화 결렬의 책임을 물었다. 이 대표는 “(안 후보는) 속 좁은 사람이고 우리 후보(윤석열)은 통 큰 사람이다. 통 큰 사람과 속 좁은 사람이 만나면 복장 터진다”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들이 국민의힘 측에 ‘안 후보를 접게 만들겠다’는 제안을 해온 적도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국민의당 내에 배신자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단일화 물밑 협상’을 줄곧 부인해 온 안 후보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전날에도 페이스북에 안 후보가 선거 유세 현장에서 “윤석열 후보가 단일화 겁나서 도망쳤다”고 말한 기사를 공유하며 “‘ㄹㅇㅋㅋ’ 네 글자만 치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ㄹㅇ’은 ‘진짜(리얼‧real)’를 뜻하는 인터넷 신조어로, 사실상 단일화 결렬의 책임을 따지는 안 후보의 말을 조롱한 의미다.

이 대표가 국민의당 유세버스 사고를 비꼰 것도 화근이 됐다. 안 후보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대선 완주를 하겠다”고 하자, 이 대표는 “고인이 불시에 돌아가셨는데 유지를 어디서 확인하나. 국민의당 유세차량 운전자들은 유서를 써놓고 가시나”라고 했다. 이에 안 후보는 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의 해당 발언은 단일화 협상이 결렬된 주요 원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오른쪽)가 지난해 6월16일 국회에서 회동하는 모습 ⓒ 시사저널 박은숙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오른쪽)가 지난해 6월16일 국회에서 회동하는 모습 ⓒ 시사저널 박은숙

李와 安의 ‘10년’이 ‘남보다 못한 사이’ 되기까지

안 후보를 향한 이 대표의 거친 언사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두 사람은 2012년 무렵 정치에 입문한 동지였지만, 2016년 총선 당시 노원병에서 맞붙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공천 파동을 겪으며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를 ‘안티(Anti) 안철수’의 선봉장에 선 인물이라고도 평가한다.

이 대표가 쏟아내는 안 후보에 대한 비판의 요지는 “안 후보의 생각을 주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안 후보의 정치적 결정이 대부분 주변 인사들과의 협의 없이 독단적으로 이루어질뿐더러, 결정 자체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 대표가 이 같은 평가를 굳히게 된 계기는 4년 전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표와 안 후보는 각각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소속으로 손을 맞잡고 바른미래당을 출범, 서울 송파을과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준비했다. 이 대표는 노원병 당협위원장을 맡을 만큼 지역 기반이 있는 인사였던 터라 무난히 공천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안 후보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의 지역구이기 때문에 국민의당계가 공천되는 게 맞는다는 주장이었다. 국민의당계로 추천된 김근식 교수가 경선 직전 스스로 사퇴하면서 결국 이 대표가 출마를 하게 됐지만, 바른미래당은 당시 지방선거에서 전멸하는 대형 패배를 당했다. 

2018년 1월9일 당시 통합을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청년당원들과의 토크 콘서트 '청년이 미래다'에서 이태우 국민의당 청년최고위원과 이준석 바른정당 노원병 당협위원장으로부터 상대당 색깔의 목도리를 전달 받던 모습 ⓒ 시사저널 박은숙
2018년 1월9일 당시 통합을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청년당원들과의 토크 콘서트 '청년이 미래다'에서 이태우 국민의당 청년최고위원과 이준석 바른정당 노원병 당협위원장으로부터 상대당 색깔의 목도리를 전달 받던 모습 ⓒ 시사저널 박은숙

같은 시기 안 후보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자유한국당 소속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단일화 행보에 나섰다가 다시 독자 출마로 방향을 틀었다. 바른정당계 인사들은 이 같은 안 후보의 행보가 독단적이었다고 회상한다. 이 대표가 ‘안잘알(안철수를 잘 아는 사람들)’을 자처하면서도 “안 후보는 야권 전체로 볼 때 A급 X맨” 등의 평가를 내린 것은 이 같은 누적된 갈등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반면 국민의힘 안팎에선 이 대표의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안 후보에 대한 이 대표의 적개심이 야권 단일화 협상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이 만든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이 대표의 조롱이) 좀 심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동시에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행보와는 별개로 안 후보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며 단일화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단일화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고, 서병수 의원은 전날(22일)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진구 부전시장 인근에 있던 안 후보의 선거유세 현장에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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