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청년들은 왜 복합쇼핑몰을 꿈꾸는가 [임명묵의 MZ학 개론]
  • 임명묵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27 10:00
  • 호수 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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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판 뜨겁게 달군 광주 복합쇼핑몰 논란, 그 이면에는 지난 10년 동안 발생한 문화와 인식의 대격변이 있다

1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 청주 가경터미널은 스산했다. 아직도 매서운 겨울철 칼바람이 터미널 앞을 사정없이 할퀴고 있었다. 하지만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젊은 남녀들의 모습은 칼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없이 쾌활했다. 서울에서 청주로 내려온 필자는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는 그들과 잠시 스쳐 지나간 뒤 부모님이 계신 본가로 향했다.

지방에 살면 이런 풍경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우리 집 주변의 오송역에 정차하는 KTX는 세종, 청주와 서울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사람을 실어 나른다. 간혹 들르는 대전역이나 동대구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딜 가나 젊은 남녀가 기차를 타려고 바삐 움직이는 곳들이다. 하지만 이 익숙해 보이는 풍경 뒤에는, 청년층의 심리 깊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2월18일 광주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광주 집 중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2월16일 광주 광산구 송정매일시장에서 열린 거점유세에 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서울 못지않은 지방의 소비문화 욕구 팽창

변화의 물결은 한국이 1990년대 이후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시작되었다. 세계화는 지구 어디에서나 세계 도시로 자본·기술·인력이 집중되는 효과를 만들었다. 21세기 들어 한국 경제의 최전선은 지방의 각종 공단에서 세계의 나머지와 바쁘게 통신하는 수도권의 사무실로 옮겨갔다. 그 결과, 새로운 기회를 찾는 지역 청년들의 시선은 지역 중심지를 넘어 서울을 향했고, 광역시로 상징되는 지역 중심지의 청년들마저도 서울을 향해 움직였다.

서울의 힘은 지난 1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더욱 빠르게 커나갔다. KTX는 목포, 여수, 진주, 포항, 강릉 같은 도시까지 뻗어나갔다. 지리적 연결성의 증대는, 청년들이 자신의 주요 생활권역을 넘어 기회를 찾는 일을 아주 용이하게 만들었다. 인터넷은 어쩌면 KTX보다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지역 청년들은 인터넷을 통해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었다. 인터넷이 타 지역 사람들의 삶을 엿보게 해주면서 인식의 지평은 생활권 너머로 확대되었다. 그렇게 KTX와 인터넷은 소위 ‘인서울’ 대학 진학자 위주로 벌어지던 상경 흐름을 훨씬 크게 키워놓았다. 그 흐름은 서울을 경험하고 온 청년들이 자신의 주변인들에게도 영향을 주었기에 또다시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는 예상치 못하게 이 과정에 속도를 더했다. 저가항공 덕택에 마치 일상처럼 자리 잡았던 한국인들의 해외여행은 하늘길이 닫히면서 다시 ‘특별한 경험’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하늘길이 닫혔다고 해서 해외여행에 할애하던 시간과 돈, 그리고 여가를 ‘제대로’ 즐기겠다는 의지까지 변하지는 않았다. 수없이 많은 대체재가 코로나를 호재로 삼아 해외여행에 갈 돈을 흡수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국내여행이 새롭게 각광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울은 이제 단순히 교육과 일자리를 제공해 주는 기회의 공간을 넘어 ‘여행’의 대상, 즉 ‘특별한’ 경험을 주는 여가와 소비의 공간으로서 압도적 지위를 획득했다.

지역의 한 직장인이 다음과 같이 여가를 즐기리라 상상하는 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금요일 반차를 쓰고 친구와 함께 기차역에 나가 수서행 고속열차를 탄다. 강남 인근 호텔에 체크인하고 짐을 풀어둔 뒤 뮤지컬 공연이나 미술관 전시를 보고 온다. 그리고 저녁에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보며 미리 점찍어 두었던 고급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다음 날에는 눈여겨보았던 카페를 방문하는 등 서울에서 즐기리라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씩 수행한다. 일요일이 되면 수서역에서 다시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타며, 다음에 올라올 때는 어디에 가볼까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여가를 누리고자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기에 없는 것이 거기에는 있으니까”다. 서울의 거대한 규모는 공연·전시·식당·숙박을 비롯한 각종 여가, 문화 인프라에서 타 지역과 비교도 안 되는 다양성을 품을 수 있다. 게다가 문화 트렌드를 선도하는 인적 자원이 서울을 선호하기 때문에, 서울의 트렌드를 소비한다는 것은 곧 세계적 트렌드에 발을 맞춘다는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게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지 2년을 넘긴 지금, KTX와 인터넷을 통해 서울과 고향을 바삐 오간 청년층의 인식 속에 심대한 변화가 생겼으리라 추측하는 게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서울이 교육과 생산을 넘어 소비와 여가에서 또한 압도적 위상을 지닌 대상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이 같은 서울 중심성의 강화는 지역에는 양면적인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는데, 첫째 효과는 기존에도 존재했던 인구의 서울 유출 흐름이 더 가속화된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 효과는 서울을 경험하고 온 이들을 중심으로, 지역에서도 서울에 준하는 소비문화를 누리고 싶다는 수요가 빠르게 팽창한 것이다. 그 결과 지역 중심지에서도, 다양성이 어쩔 수 없이 떨어지기는 하더라도 서울의 유행이 사실상 시차 없이 전달되며 공유되는 동시성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영혼을 이루는 두 기둥, 소비와 문화

그런 와중에 최근 대선판에서 광주의 복합쇼핑몰 논란이 발생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2월16일 광주 유세에서 “광주 시민들이 다른 지역에 다 있는 복합쇼핑몰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더불어민주당이 이를 반대해 왔다”고 말한 게 발단이 됐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이틀 뒤 광주에 내려가 “복합쇼핑몰이 필요하다는 사람도 있고, 그것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다”고 반박했다. 이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광주 복합쇼핑몰의 2탄, 3탄 공약도 준비돼 있다”고 가세하며 논란을 더 키웠다.

몇몇 사람은 “대체 그런 마트가 들어오느냐 마느냐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투덜댔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발생한 문화와 인식의 대격변을 생각한다면, 복합쇼핑몰의 부재는 그야말로 결정적인 이슈라고 할 수 있었다. 광주뿐 아니라 어느 지역에서도 청년층은 이미 소비 요구 수준에서 서울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복합쇼핑몰은 ‘내가 바로 어제 다녀온 서울에서, 내가 당장 휴대전화를 켜면 보이는 게시글에서’ 볼 수 있는 너무나 익숙한 대상이다. 인식상 동떨어진 다른 세계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의 마음에 정말 불을 지핀 것은 서울이 아니었다. 서울은 어차피 ‘특별’한 공간이니, 서울과의 격차 자체는 본질적 문제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광주와 ‘같은 급’인 다른 광역시들이 광주보다 훨씬 빠르게 새로운 유행을 수용하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대구가 가능하고, 대전이 가능하다면 광주가 불가능할 이유는 무엇이 있겠는가?

따라서 광주의 복합쇼핑몰은 단순히 지역의 개발과 기존 이권의 충돌을 둘러싼 이야기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는 셈이다. 이는 서울의 패권과 교통, 통신의 급속한 발전이 지역에 제기한 질문이다. 소비와 문화, 나아가 삶의 방식 전체가 바뀌고 있는 지금, 지역은 청년들이 빠져나가 활기를 잃은 채 쇠퇴할 것인가, 아니면 서울과의 동시성 속에서 새로운 문화적 모색을 통해 도약의 기회를 만들 것인가. 물론 이 질문은 단지 광주에만 던져진 질문이 아니고, 지방에만 해당하는 질문도 아니다. 지역 없이 서울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비와 문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영혼을 이루는 이 두 개의 기둥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임명묵 작가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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