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1등” 우겨도 할 말 없는 TV토론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25 17:00
  • 호수 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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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尹 후보 간 아슬아슬 감정싸움만…변별력 없는 ‘평준화 토론’ 언제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하는 첫 번째 대선후보 법정 TV토론이 ‘경제 분야’를 주제로 2월21일 열렸다. 이날 토론에서 눈길을 끈 두 가지 장면이 있었다. 먼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공격적인 태도였다. ‘윤석열’ 이름이 등장하는 김만배씨 통화 녹취록을 담은 패널까지 들고 나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몰아붙였다. 윤 후보가 대장동 의혹을 거론하자 “허위사실이면 후보 사퇴하겠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이전까지의 토론회에서 보여준 포용의 기조에서 크게 달라진 이유는, 단기간 안에 역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윤 후보도 이 후보 관련 의혹들을 반복 거론하며 직격에 나섰다. “연일 나오는 경기지사 법인카드 공금 횡령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한다”며 김혜경씨 관련 의혹을 상기시키는가 하면, “이 후보 말씀이 작년부터 바뀌는 것을 보니 오늘 선언한 내용이 과연 지켜질지 믿기가 어렵다”며 이 후보의 말바꾸기를 비꼬기도 했다. 이재명과 윤석열, 두 후보의 공방전은 아슬아슬한 감정싸움의 경계선까지 도달한 느낌이었다.

ⓒ국회사진취재단
2월21일 MBC에서 열린 20대 대선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서 민주당 이재명, 국민의당 안철수,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왼쪽부터)가 기념촬영 뒤 각자 자리로 향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기계적인 시간 제약과 배분 등 구조적 문제도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윤 후보를 향해 꼬인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모습이었다. ‘디지털 데이터 경제’ 공약이나 경제정책에 관한 윤 후보의 설명이 나올 때 안 후보는 “말씀이 핀트를 못 잡고 계신 것 같다”고 빈정거리기도 했고, 급기야는 비웃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을 보였다. 안 후보는 토론이 끝나고 기자들 앞에서 “플랫폼 사업과 데이터 산업에 대해서 이해를, 구분을 잘하지 못하는 윤석열 후보의 발언이 가장 실망스러웠다”며 확인 저격까지 했다. 두 후보가 최근까지 후보 단일화가 예상되던 관계였음을 감안하면, 이준석 대표 등 국민의힘 사람들에게 맺힌 감정을 안 후보가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첫 번째 법정 토론은 정책에 대한 깊이 있는 비교가 아닌, 후보들 간 미묘한 감정싸움이 눈에 들어오는 시간이 되었다.

방송사들 주최로 열린 두 차례의 비공식 TV토론 때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TV토론의 승자는 ‘4명’이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TV토론 성적에 대해 “당연히 이재명 후보가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후보가 꼴찌”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양수 국민의힘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오늘 토론은 무너진 경제를 살릴 적임자가 누구인지 확인시킨 토론이었다”면서 윤석열 후보가 가장 잘했다고 주장했다. 이동영 정의당 선거대책본부 수석대변인도 “불평등·기후위기 극복·녹색전환 경제비전과 심상정의 1분이 빛났던 토론이었다”고 자찬했다. 홍경희 국민의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 역시 “왜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시간이었다”고 자평했다.

각 정당의 모습만이 아니다. 대선후보들의 TV토론이 끝나고 나면 각 후보 지지자들은 자기 후보가 가장 잘했다는 평가를 SNS에 경쟁적으로 올리곤 한다. 꼭 억지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판단하는 모습들이다. ‘우리 후보’가 가장 뛰어나다는 확증편향의 결과인 셈이다. 설혹 정책적 식견이 뒤지는 것으로 비춰졌을지라도,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며 인간미 같은 다른 채점 항목의 배점을 높여서라도 기어코 그처럼 억지스러운 판정을 내린다.

TV토론 과정에서 어느 후보도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 혹은 무지를 인정하는 일 없이, 일단 우기고 넘어가는 모습과 닮은꼴이다. 이 후보는 ‘법인카드 공금 횡령’에 대한 추궁이 나와도 대답은 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김만배 녹취록’이 담긴 패널을 들었다. 이 후보가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던 윤 후보의 발언에 사과를 요구했지만, 정작 윤 후보는 “이 질문에는 말씀을 많이 드려서 굳이 답변할 필요도 없다”며 그냥 넘어갔다. 중요한 사안에 대한 질문이 나와도 무엇이든 피해 갈 수 있는 것은 지금 방식의 TV토론이 갖는 한계다.

 

좀 더 다양한 방식의 토론 검토해볼 필요

그러면서 저마다 자기 후보가 1등이라고 주장해도 터무니없다는 비판을 받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다고 반박할 명약관화한 근거도 사실 없기 때문이다. 각자가 채점 항목과 기준이 다른 주관적인 채점표를 들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1등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후보 간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변별력 없는 토론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 일단 큰 목소리로 우기는 사람이 뭔가 자신감 있는 것 같은 인상만 준 채, 정작 시비를 가릴 실시간 팩트 체크 기능도 부재한 것이 지금의 방식이다. 그리고 기계적인 시간 제약과 배분으로 인해 추가적인 토론이 불가능하니 쟁점이 만들어지기도 어렵고, 그에 대한 심층적인 토론이 이루어지기는 더욱 어렵다. 이는 120분의 한정된 시간에 여러 후보가 함께 토론을 하는 데서 오는 피할 수 없는 한계다.

후보 등록 이전에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의 양자토론이 추진되다가 다른 후보들의 반발과 법원의 결정에 의해 무산된 일이 있었다. 그렇게 인위적으로 양자 구도를 만드는 토론은 문제가 있지만, 좀 더 다양한 방식의 토론을 검토해볼 필요는 있다. 일정 시점에서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 15% 이상의 유력 후보들만 참여하는 토론을 병행한다든가, ‘윤석열 대 안철수’ ‘이재명 대 심상정’ 같은 여러 조합의 양자토론을 하는 방식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기계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지금의 TV토론으로는 후보 간 우열이 제대로 드러나기 어렵다. TV토론을 직접 시청하지 못한 사람은 언론보도를 통해서는 대체 누가 잘했는지 분간하기도 어렵다. 언론들도 편파 시비에 휘말릴 수 있기에 좀처럼 후보 간 우열이 드러나는 방식의 채점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요란하기만 하고 변별력이 없어 판세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하는 ‘평준화 토론’이 되고 마는 것이다.

120분간의 TV토론을 통해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나을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TV토론은 유권자들이 후보들에 대한 정보와 판단을 갖게 되는 여러 경로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TV토론은 미디어들의 여과나 해석 없이 유권자가 직접 후보들을 지켜보면서 판단할 기회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과소평가될 수 없다. 따라서 유권자들의 관심과 요구에 부합될 수 있는, 좀 더 역동적인 토론으로 진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각 후보들에 관한 온갖 정치적·정책적 이슈들이 제기된 단계에서, 정작 TV토론이 뻔한 내용으로만 흘러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현재의 TV토론 방식이 유권자들의 선택을 돕는 데 한계가 있다면, 그 한계를 넘어설 다양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후보들의 TV토론은 지지자들의 응원의 장이 아니라, 후보들에 대한 바른 평가와 판단의 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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