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예술이 시장경제에 소비될 때의 역설
  • 반이정 미술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01 14:00
  • 호수 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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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웨이웨이 브랜드의 본질은 논쟁적인 양면성
생명력 분산돼 다양한 볼거리로만 소비 한계도

예술가 집단에서 옥석을 가리는 기준으로 고유한 자기 브랜드를 꼽을 수 있다. 작품의 가시적인 성격이나 예술가의 드라마적 삶을 반복하면 한 예술가의 브랜드는 강화되고 급기야 신격화된다. 반 고흐의 브랜드는 두터운 물감층, 스스로 잘라낸 한쪽 귀, 자살로 마감한 삶, 무명이던 생전의 불행이 사망 후 역전된 현실 등이 쌓여 생긴 것이다. 피카소의 브랜드는 기하학적으로 해체된 사물, 여성 편력, 90세가 넘도록 유복하게 장수한 삶 등이 쌓여 형성된 것이다.

국내 개인전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2021년 12월11일~2022년 4월17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를 개최한 아이 웨이웨이는 실존하는 현대미술 명망가 이상의 셀럽이다. 그의 브랜드는 방대한 전시 공간을 꽉 채우는 초대형 설치물, 그를 설명할 때 흔히 쓰이는 ‘중국 반체제 미술가’라는 수식어, 인권운동을 병행하는 작품 제작, 뚱뚱한 체형에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동양인 털보 남성 캐릭터까지, 서구의 전시 기획자들이 선호할 만한 요소를 고루 갖췄다. 여기에 더해 찬반을 이끄는 논쟁적인 양면성을 띤 작품이야말로 아이 웨이웨이 브랜드의 본질이라 하겠다.

2월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국립현대미술관 서 울관에서 세계적인 미술가이자 영화감독, 건축가, 행 동가인 아이 웨이웨이의 개인전 《아이 웨이웨이: 인 간미래》가 열리고 있다.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는 표현의 자유와 난민의 삶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발 표해온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1957~)의 국내 미술관 첫 개인전이다.ⓒ시사저널 최준필
2월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국립현대미술관 서 울관에서 세계적인 미술가이자 영화감독, 건축가, 행 동가인 아이 웨이웨이의 개인전 《아이 웨이웨이: 인 간미래》가 열리고 있다.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는 표현의 자유와 난민의 삶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발 표해온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1957~)의 국내 미술관 첫 개인전이다.ⓒ시사저널 최준필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 4월17일까지 개최

현대미술을 즐기며 감상하기란 여전히 까다롭지만, 아이 웨이웨이의 국내 전시는 입구 초입부터 해골과 내장 모양으로 제작된 무라노 유리로 샹들리에를 만든 《검은 샹들리에》(2017–2021)나 백악관, 에펠탑, 천안문처럼 세계 각지의 랜드마크를 향해 중지를 치켜세우고 찍은 사진 연작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를 찍느라 여념이 없는 관객들을 발견하게 된다. 유명 미술가의 전시는 흔히 세계 순회용으로 완성된 패키지를 옮겨오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 웨이웨이의 국내 개인전도 연대별 주요 작품들의 다양한 소품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이처럼 종합선물세트를 닮은 전시는 한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골고루 맛볼 수 있는 용이함은 있지만, 개개의 작품이 지닌 생명력이 분산돼 다양한 볼거리로만 소비되는 한계도 갖는다. 공간 전체를 동일한 재료로 꽉 채우는 아이 웨이웨이의 대표 작업들은, 전시장에서 관객과 작품이 일대일로 만나는 일반적인 형식을 뛰어넘는 스케일로 관객을 에워싸면서 묘한 압도감을 주는 것이었다.

요컨대 1200대의 자전거를 이어 붙여 전시장을 채운 《영원한 자전거(Forever Bicycles)》,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전시 중에 886개의 목제 의자를 이어 붙여 독일관 전시장을 채운 《꽝(Bang)》 같은 설치물, 2010년 영국 테이트 모던 전시 때 10cm 깊이에 1000제곱미터의 터빈홀 전시장을 해바라기 씨 모양으로 구운 1억 개 이상의 도자기 150톤으로 채운 《해바라기 씨(Sunflower Seeds)》의 스케일을 이번 전시에서 확인하진 못한다. 2017년 모네의 대표 작품 제목을 차용해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도착한 난민들로부터 수집한 3500개 이상의 구명조끼로 베를린 Kunsthal Charlottenborg 미술관의 창문을 메운 《해돋이》라는 설치물로 표현한 난민 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이, 국내 전시에선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국경의 이도메니 난민 캠프에서 수집한 옷과 신발 등을 전시장 중앙에 진열한 《빨래방》(2016)이나 그리스 남동쪽 레스보스섬에 난민들이 벗고 간 구명조끼 140벌로 제작한 《구명조끼 뱀》(2019)이 계승하고 있긴 하다.

이처럼 소품들을 나열한 전시회의 관전 포인트를 잡으려면 몇 점을 골라 집중하면 감상에 도움이 된다. 아이 웨이웨이의 작가 브랜드 중 하나가 양면성이라고 앞서 말했다. 그는 예술계의 권위 있는 키워드를 가져와 그것의 전복된 모습을 나란히 보여줘 왔다. 논쟁적인 양면성이 일련의 작업에 배어있는 셈이다. 작가 자신이 손에 쥔 도자기를 바닥에 떨어뜨려 파손되는 과정을 3면화 형식으로 구성한 《한대 도자기 떨어뜨리기》(2016)는 동일한 제목의 1995년 사진 작업을 레고 블록으로 옮긴 것이다. 원작은 기원전 200년 전후에 제작된 중국 한나라 왕조시대 항아리를 고의로 바닥에 떨어뜨려 파손하는 과정을 기록한 만큼, 반달리즘(예술 파괴 행위)으로 지탄받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작업은 당대에는 일개 항아리에 불과했을 일상품이 세월의 켜가 쌓여 후대에 유물로 격상되는, 예술품 탄생의 비일비재한 공식을 냉소하는 작업으로 풀이될 수도 있고, 마오쩌둥의 10년여 문화대혁명 시기에 “새로운 세계 건설을 위해 오래된 세계를 파괴한다”는 모토를 앞세워 중국 전역에서 자행된 문화유산과 전통유적 파손에 대한 풍자로 해석될 수도 있다. 많은 관객이 즐거워하며 사진을 찍은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를 보자. 원근법은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으로 옮기는 과학적인 방법론의 발견으로, 서양미술사를 한 단계 격상시킨 혁명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원근법의 권위를 제목으로 내세워 세계 곳곳의 권위 있는 랜드마크를 향해 거의 무의미한 야유를 던진 기록사진이 이 작품의 전모인데, 작가의 ‘반체제성’ 브랜드를 강화시킨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이 작업을 ‘권위에 대한 야유’라는 무거운 주제로만 한정해서 볼 필요는 없다. 흔들리지 않는 권위를 향해 가벼운 유희를 기록한 사진 연작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가도 된다.

2월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국립현대미술관 서 울관에서 세계적인 미술가이자 영화감독, 건축가, 행 동가인 아이 웨이웨이의 개인전 《아이 웨이웨이: 인 간미래》가 열리고 있다.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는 표현의 자유와 난민의 삶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발 표해온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1957~)의 국내 미술관 첫 개인전이다.ⓒ시사저널 최준필
2월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국립현대미술관 서 울관에서 세계적인 미술가이자 영화감독, 건축가, 행 동가인 아이 웨이웨이의 개인전 《아이 웨이웨이: 인 간미래》가 열리고 있다.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는 표현의 자유와 난민의 삶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발 표해온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1957~)의 국내 미술관 첫 개인전이다.ⓒ시사저널 최준필
2월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국립현대미술관 서 울관에서 세계적인 미술가이자 영화감독, 건축가, 행 동가인 아이 웨이웨이의 개인전 《아이 웨이웨이: 인 간미래》가 열리고 있다.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는 표현의 자유와 난민의 삶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발 표해온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1957~)의 국내 미술관 첫 개인전이다.ⓒ시사저널 최준필
2월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국립현대미술관 서 울관에서 세계적인 미술가이자 영화감독, 건축가, 행 동가인 아이 웨이웨이의 개인전 《아이 웨이웨이: 인 간미래》가 열리고 있다.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는 표현의 자유와 난민의 삶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발 표해온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1957~)의 국내 미술관 첫 개인전이다.ⓒ시사저널 최준필

풍자의 위력은 상실되고 진부한 기호처럼 와닿기도

관객의 기념촬영 세례를 받은, 대리석으로 오른 팔과 두루마리 휴지를 재현한 《대리석 팔》(2007)과 《대리석 휴지》(2020) 조각품을 보자. 그리스·로마 미술품이나 상류층 주거문화와 연결되는 흰 대리석으로 모욕감이나 다양한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치켜올린 손가락 중지를 고색창연한 고대 인물상의 상반신처럼 제작하거나, 세계 각지 화장실마다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두루마리 휴지를 사뭇 엉뚱한 조각 작품처럼 재현한 건데, 이는 고귀한 유물이나 예술과 연결되는 품격 있는 재료로 범속한 문화를 재현한 것으로, 뜻밖의 엉뚱한 농담 같은 질감을 준다.

아이 웨이웨이의 작업마다 따라붙는 양면성의 브랜드는 회의적인 관객에겐 부조리도 느끼게 할 것이다. 일상품이 예술품으로 둔갑하는 과정이나 마오쩌둥의 전통 파괴를 풍자하려고 굳이 한나라 왕조의 유물을 파손할 필요가 있는지를 따지는 흔한 불평부터, 테이트 모던 터빈홀을 채운 150톤 규모의 해바라기 씨 모양 도자기 중 일부(100kg)가 2011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29만 파운드(약 5억3000만원)에 낙찰된 소식에선 ‘반체제 예술가’라는 수식어가 왠지 무색해 보일 수도 있을 게다. 아이 웨이웨이의 브랜드로 안착한 손가락 중지를 세운 여러 작업을 반복해서 만나면 풍자의 위력은 상실되고 진부한 기호처럼 와닿는 질감도 불편하다. 이 모두가 저항 예술가가 시장경제 세상에서 주목받을 때 생기는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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