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자 출판기념회] 눈도장 찍으려는 을(乙)들로 ‘북적’
  • 정성환·조현중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2.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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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르포] 광주전남 지방선거 출마자 출판기념회 현장 가보니
선거철 되니 ‘묻지마 출판기념회’ 대목…“책값만 내는 사람 어디 있나”
출판기념회는 ‘出金’기념회…책 1권 사면서 돈 봉투엔 수십만 원 넣기도

[편집자 주] 오는 6·1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적으로 출판기념회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출마를 앞 둔 정치인이 자신을 알리고 사실상 선거자금을 합법적으로 모금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출마 예정자들은 선거일 90일 전인 3월 3일부터 공직선거법상 출판기념회를 열 수 없다. 그러다보니 2월에 출판기념회가 집중되면서 지역 사업가나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지역 유력 정치인들이 여는 행사를 마냥 모른 척할 수가 없어서다. 이제 합법을 가장한 음성적 정치자금 모금의 통로로 변질된 출판기념회에 대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출판기념회 현장과 이를 바라는 보는 두 가지 시선 등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3회에 걸쳐 싣는다. 

 

지난 12일 오전 11시, 재선에 도전하는 K구청장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광주의 한 대학교 강당 1층 로비. 행사장은 성별과 나이, 복장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대거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출판기념회로 하루 종일 행사장 주변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으며 각계각층의 인사들은 한참을 기다린 끝에 눈도장을 찍었다. 행사장 왼쪽 입구에 마련된 테이블 위에는 방명록과 후원금 모금함, 후보자의 책이 가득 쌓여 있었으며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참석자는 방명록에 이름과 소속을 적은 뒤 준비한 봉투를 상자에 넣고 책을 받았다. 

카드결제는 할 수 없었다. 책의 가격은 1만5000원이었지만 행사 진행요원들은 봉투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참석자들이 봉투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는 장면은 한 번도 없었다. 접수자도 영수증이나 기부금 증서를 발급하지 않았다. 또한 봉투 안에서 책을 꺼내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테이블에 놓인 봉투에 10만 원을 넣은 사람은 책 한 권만 받고 행사장을 떠났다. 

​2월 12일 오전 광주의 한 대학교 강당 1층 로비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수백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참석자들은 이날의 주인공 정치인과 악수하고 인사하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줄 선 사람들은 15분 정도 기다려야 K구청장을 만날 수 있었다. ⓒ시사저널 조현중​
​2월 12일 오전 광주대학교 호심관에서 열린 구청장의 출판기념회에 참석자들이 대거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참석자들은 이날의 주인공 정치인과 악수하고 인사하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줄 선 사람들은 15분 정도 기다려야 K구청장을 만날 수 있었다. ⓒ시사저널 조현중​

가격도 안 묻고 봉투만 투척…15분씩 줄서서 정치인과 인증샷

양손 가득 책을 사가는 사람도 있었다. 무슨 이유로 책을 이렇게 많이 사가느냐고 묻자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 심부름”이라고 답했다. 봉투에 얼마가 들어있는 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책을 받은 사람들은 행사의 주인공인 정치인을 찾아가 책에 사인을 받거나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나란히 서서 ‘인증샷’을 찍었다. 이날의 주인공 K구청장과 악수하고 인사하기 위해 선 줄이 약 40m에 달했다. 줄 선 사람들은 15분 정도 기다려야 구청장을 만날 수 있었다. 본지의 취재와 주최 측의 말을 종합하면 이날 출판기념회에 30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된다.   

같은 날 오후 3시, 전남 장성읍 문화예술회관 앞 광장과 로비도 전남도의장 출신 군수 출마 예비후보자의 출판기념 북콘서트를 찾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씩 손에 쥔 ‘노란 봉투’였다. 봉투 안에는 이날 출판기념회를 연 정치인의 자서전이 한 권씩 들어 있었다. 비닐 봉투 안에 서너 개의 노란 책봉투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띄었다.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에는 격조 높은 대화를 찾아 볼 수 없었다. 각계에서 보낸 화환만이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앞서 광주 K구청장 출판기념회에서 봤던 국회의원을 다시 만났다. 사실상 출판기념회를 통해 ‘품앗이 후원’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출판기념회에 온 사람들은 해당 정치인의 저서를 구입할 때 봉투에 책정가만을 넣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책값에 플러스알파가 붙는다. 몇 만 원부터 수백만 원까지 다양하다. 전남에서 건설업을 하는 이아무개(61)씨는 “정가로 책을 사는 사람이 어디 있나. 공무원도 최소 10만 원을 낸다고 들었다”며 “사업가들은 적어도 5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을 내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봉투 속에 조그만 한 인사 쪽지와 함께 얼마간의 현금을 넣고 봉투 앞면에 축하금이라는 글귀 대신 ‘미의(微意)’라는 글귀를 썼다. 미의라는 말은 ‘변변치 못한 작은 뜻’이라는 말이다. 한 때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던 촌지(寸志)라는 말이 어느새 미의로 바뀐 것이다.

​2월 12일 오전 광주의 한 대학교 강당 1층 로비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수백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참석자들은 이날의 주인공 정치인과 악수하고 인사하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줄 선 사람들은 15분 정도 기다려야 K구청장을 만날 수 있었다. 참석자는 방명록에 이름과 소속을 적은 뒤 준비한 봉투를 상자에 넣고 책을 받아갔다. ⓒ시사저널 정성환​
​2월 12일 오전 광주의 한 대학교 강당 1층 로비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수백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참석자들은 이날의 주인공 정치인과 악수하고 인사하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줄 선 사람들은 15분 정도 기다려야 K구청장을 만날 수 있었다. 참석자는 방명록에 이름과 소속을 적은 뒤 준비한 봉투를 상자에 넣고 책을 받아갔다. ⓒ시사저널 정성환​

책값에 플러스알파…‘며느리도 모른다’는 출판기념회 수입

돈 가뭄에 시달리는 정치인이 돌파구로 삼는 것이 바로 ‘출판기념회’다. ‘책’을 매개로 지지자를 끌어 모아 세 과시를 할 수 있고, ‘책값’ 명목으로 이른바 비공식 ‘후원금’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출판기념회에서 가장 문제되는 부분은 소위 음성화된 책값인 ‘봉투’다. “책 한 권 가격은 1~2만원에 불과하지만, 현장에서는 책값의 몇 배나 되는 현금을 넣어 구매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 정가는 1~2만 원 정도지만, 출판기념회에선 이보다 많은 금액을 내는 게 관례로 굳어져 참석자들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다. 현장에서는 봉투에 얼마를 넣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공무원과 기업인들이 자주 목격된다. 

책을 한권만 사는데도 5만 원권 2장을 봉투에 담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책값의 5배를 훌쩍 넘는 금액이다. 유력 후보이거나 현존 권력자의 출판기념회 돈 봉투는 100만 원이 ‘기본’이라는 소문도 파다하다. 심지어 이보다 더 많은 액수의 ‘현금’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심증도 있지만, 법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다. 봉투 속에는 얼마가 담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그날 봉투에 돈 넣은 쪽과 받은 정치인만 알 뿐이다. 그래서 출판기념회 수입은 ‘며느리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전남의 단체장 출신 정치인에게 출판기념회 수입을 묻자 그는 ‘당사자만 안다’고 잘라 말했다. “보통 모금함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 등 극히 소수다. 출판기념회가 끝나면 후원금을 해당 정치인이 직접 돈을 세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그 정치인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출판기념회는 말 그대로 합법을 가장한 정치자금 모금이 이뤄지고 있는 현장이다. 

2월 12일 오후 3시, 전남 장성읍 문화예술회관은 군수 출마 예비후보자의 출판기념 북콘서트장을 찾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 참석자가 축하금을 낸 뒤 받은 ‘노란 봉투’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쥔 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노란 봉투’ 안에는 이날 출판기념회를 연 정치인의 자서전이 한 권씩 들어 있었다. ⓒ시사저널 정성환
2월 12일 오후 3시, 전남 장성읍 문화예술회관은 군수 출마 예비후보자의 출판기념 북콘서트장을 찾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 참석자가 축하금을 낸 뒤 받은 ‘노란 봉투’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쥔 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노란 봉투’ 안에는 이날 출판기념회를 연 정치인의 자서전이 한 권씩 들어 있었다. ⓒ시사저널 정성환

상황이 이렇다보니 출판기념회 수입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하다. 선관위는 의례적인 ‘사적(私的) 축하금’이어서 정치자금에 해당하지 않아 규제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전남도선관위 한 관계자는 “저서 출판을 축하하기 위한 축하 금품은 정치자금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모금 한도도 없고 회계보고 의무도 없다. 무료나 싸게 파는 것을 제외하곤 책값 한도도 없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출판기념회에서 책이 필요해서 사는 사람은 없을 텐데 저런 식이면 규제를 전혀 안하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출판기념회 수입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뚜렷하다. 최근 출판기념회를 열었던 한 신인 정치인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정치인은 “출판기념회로 수억 원을 모금한다는 이야기는 극소수 거물급 정치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고 대부분 선거자금에 조금 보탬이 되는 정도”라며 “저 같은 경우 출판기념회를 처음 해봤는데 수천만 원도 아니고 고작 수백만 원 수익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나마 광주전남북의 경우 정치 지형상 출판기념회 기부금 수입이 여당 출신 정치인들에 집중되고 있어 야당 정치인에게 출판기념회 개최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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