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자 출판기념회] “갈 수도, 안 갈 수도”…초대에 ‘난감하네’
  • 정성환·배윤영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2.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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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합법적 고지서’된 출판기념회 초청장…공무원·기업인들 ‘부담’
울며 겨자먹기식 눈도장…‘보험용 봉투’에 얼마 넣을지도 고민

“자치단체장 출마 예정자가 출판기념회를 한다고 문자를 계속 보내는 데 축하금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으니 매우 난감합니다.” 전남의 한 군 단위 자치단체 공무원의 말이다. 안하려니 자치단체장 당선이나 도의원에 재당선될 경우 불이익을 당할 것 같고, 하려니 봉투에 얼마를 넣어야 하는지 등의 부담감을 토로했다. 

결국 대부분 축하금을 해야 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전남 A군청의 한 과장은 “출판기념회에 가지 않는 대신 봉투를 보낸다”고 했고, 또 다른 과장은 “우리 과가 속한 상임위 의원들은 최소한 봉투만 전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6급 팀장들도 “약소하지만 최소한의 책값이라도 보내드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이번 주말 교육감 선거 예비후보자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할 예정이라는 한 교육공무원은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봉투에 20만 원을 넣을 생각”이라며 “책 내용이 뻔해 읽지는 않고 얼굴도장만 찍겠다”고 말했다. 

2월 12일 오후 광주 조선대학교 해오름관에서 열린 광주시교육감 출마 예비후보자의 출판기념회에 수천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각계각층의 인사들은 수십분 동안 긴 줄을 서 기다린 끝에 겨우 후보자와 인사를 나눴다. ⓒ페이스북 캡쳐
2월 12일 오후 광주 조선대학교 해오름관에서 열린 광주시교육감 출마 예비후보자의 출판기념회에 수천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각계각층의 인사들은 수십분 동안 긴 줄을 서 기다린 끝에 겨우 후보자와 인사를 나눴다. ⓒ페이스북 캡쳐

‘출판기념회 계절’…난처한 상황에 놓인 공무원·기업인들

현역 정치인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의 출판기념회 초청장을 날아오면 이들을 ‘모셨던’ 공무원들과 지역 기업인들은 참석 여부를 두고 난처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참석했다가 ‘후보 줄서기’라는 비판에 시달릴 것이고, 그렇다고 마냥 외면하기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을(乙)’의 입장에 있는 공무원은 인사 불이익을 걱정해야 하고, 기업인은 소위 ‘보험용’으로 참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공무원과 사업가들은 4년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날아오는 초청장을 ‘합법적 고지서’고 표현한다.

특히 단체장으로 당선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에 공무원이나 유관 단체 관계자들은 이른바 성의 표시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 공무원은 “어느 직급 이상에 올라가면 출판기념회를 모른척하기가 어렵다”며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여러 명이 쌓이다보면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 공무원에 따르면 친분이 있는 사람의 출판기념회에는 10만 원, 그 외는 5만 원을 넣는다. 

지역 기업인도 책상에 쌓여있는 출판기념회 초대장에 속앓이 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광주 중견업체 한 대표는 “최근 한 달 새 출판기념회 초청장만 5~6개 넘게 받았다”며 “찍힐까봐 안 갈 수는 없는데 앞으로도 계속 초청장이 올 것이어서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전남의 한 중소기업 대표도 “출판기념회를 하는 정치인이 늘어나는 걸 보니 선거철이 왔구나 싶다”며 “지역 사업가로서 다들 아는 사이라 모른 척하기 어렵다. ‘울며 겨자먹기’로 출판기념회에 가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한 중량급 정치인 후보가 보낸 출판기념회 초청장을 보여주면서 봉투에 책값을 얼마나 넣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광역자치단체장과 시장군수 후보급에는 적어도 100만원 이상은 넣어야 ‘눈도장’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눈도장’은 사업을 원활하게 진행시켜 주는 아주 중요한 윤활제가 되기 때문이다.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직접 내미는 봉투뿐 아니라 행사장에 보내는 화환값 또한 만만치 않다. 

정치인들이 출판기념회를 선호하는 이유는 형식상 출판사의 주최 행사라는 점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수입과 지출을 신고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행사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가 책값을 지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무상으로 책을 나눠준 경우에는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반면 책값 상한선은 없다. 출판기념회에서 책값은 결혼식이나 장례식장에서 보듯 봉투에 넣어 투표함 같은 곳에 넣곤 한다. 1만 원짜리 책 한권을 살 때 1만 원을 넣든 50만 원을 넣든 주고받는 자만이 알 수 있다.

전남도선관위 관계자는 “출판기념회를 우리가 단속할 권한은 없어 출판기념회 현장을 감시하거나 관리하지도 않는다”면서 “다만 출판기념회에서 정치인이 무료로 책이나 홍보물을 배포하는 행위는 선거법에 저촉돼 처벌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책값으로 100만 원을 넣어도 선거법 위반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일단 선거법상으로는 제재할 근거가 없지만 뇌물죄나 다른 법령 위반이 될 수는 있다. 그 부분은 선관위에서 판단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2월 12일 오전 광주대학교 호심관에서 열린 광주의 한 구청장 출판기념회에 수천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각계각층의 인사들은 수십분 동안 긴 줄을 서 기다린 끝에 겨우 후보자와 인증샷을 찍었다. 한 참석자가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2월 12일 오전 광주대학교 호심관에서 열린 광주의 한 구청장 출판기념회에 수천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각계각층의 인사들은 수십분 동안 긴 줄을 서 기다린 끝에 겨우 후보자와 인증샷을 찍었다. 한 참석자가 여러장의 축하금 봉투를 모금함에 넣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선거용으로 몰락한 ‘출판기념회’…“규제책 마련 시급”

이 때문에 오래 전부터 출판기념회 개선 방안이 거론됐으나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지난 19대 국회 당시 ‘국회의원 윤리실 천특별법안’과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도서 정가 판매와 수입 지출 선관위 신고, 출판기념회 횟수 제한 등의 제한을 뒀지만 19대 국회 임기 종료에 맞춰 폐기됐다. 20대 국회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에서도 2016년 10월 책을 정가에 팔도록 하는 개선책을 내놨지만 제도적 보완까지는 되지 않았다. 제 밥그릇을 챙겨야하는 정치인들 입장에서 보면 ‘불법도 아닌데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책값을 빌미로 돈 봉투를 챙기는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더 이상 출판기념회가 편법으로 후원금을 더 걷는 창구로 활용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표적인 ‘정치 적폐’로 떠오르고 있는 출판기념회를 통해 편법으로 후원금을 모금하는 정계의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시민사회단체는 출판기념회 횟수를 제한한다거나 책을 정가로 구입토록 하고, 구매한도를 제한하는 등 회계투명성을 높이려는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또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정치인 출판기념회를 선거법 테두리 속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지역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이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정치권의 출판기념회 관행과 인식을 바꿀 때가 됐다”며 “정치권은 자신들만을 위한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출판기념회 모금도 정치자금에 포함시키는 등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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