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특유의 문화 유전자 이야기, 이어령 《너 누구니》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0 11:00
  • 호수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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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 듣다 걷다》에서 “진정한 복지는 감사 기도에서 시작” 강조

지난 2월26일 ‘시대의 지성이자 큰 스승’으로 불렸던 이어령 선생이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의 별세 소식과 함께 유작 몇 권이 출간됐는데, 그 책들 또한 생전에 펴냈던 저서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와 미래 세대를 위한 내용이어서, 우리와 후대가 함께 누릴 가르침은 더 풍성해졌다.

이 선생은 별세하기 전 두 번째 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열림원 펴냄)의 서문을 전화로 불러주면서 “네가 간 길을 지금 내가 간다. 그곳은 아마도 너도나도 모르는 영혼의 길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먼저 세상을 떠난 딸 이민아 목사를 향한 그리움이 사무친 이 시집은 종교에 의탁하면서 얻은 영적 깨달음과 참회, 모든 어머니에게 보내는 감사와 응원, 자라나는 아이들의 순수와 희망을 담았다.

이 선생이 말년에 의탁한 종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먹다 듣다 걷다》(두란노 펴냄)에서는 길을 잃은 한국 교회가 대사회적 정체성을 고민하고 회복하기를 바랐다. “진정한 복지는 물질을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가치를 제시하고 필요를 채워주는 데 있다”고 기준을 제시한 이 선생은 “진정한 복지는 감사기도에서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너 누구니│이어령 지음│파람북 펴냄│362쪽│1만9000원
너 누구니│이어령 지음│파람북 펴냄│362쪽│1만9000원

동양 사상과 아시아의 생활양식, 젓가락 문화로 함축

특히 눈길을 끄는 유고집은 《너 누구니》다. 생전 이 선생이 ‘백조의 곡’으로 여겼던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이는 백조가 평생 울지 않다가 죽을 때 한 번 우는 것에 빗대어, 자신의 많은 저작 중 백미이며 혼신을 기울인 후기 대표작임을 비유한 것이다.

이 선생은 《너 누구니》를 통해 동양 사상과 아시아의 생활양식을 한국의 젓가락 문화로 함축해, 그것으로 한국인 특유의 문화 유전자를 밝혔다. 단지 나무를 꺾어 두 막대기를 만드는 것으로, 서양의 나이프·포크 문화, 중동과 인도의 손으로 먹는 문화와 구분되는 동양의 독특하고 오랜 젓가락 문화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동양의 전통에 비춰보아도 한국의 젓가락 문화는 독창적이다. 숟가락을 같이 쓰고, 재질을 금속으로 하는 한국의 젓가락은 우리의 국물 문화, 짝 문화와 통하며, 그것들은 조화의 정신과 포용의 자세로 이어진다.”

이 선생은 생의 말년에 이르러 화려한 직함과 수사를 뒤로하고 그저 ‘이야기꾼’으로 남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평생 했던 이야기들을 ‘젓가락’으로 귀결시키며, 후대를 위한 걱정을 아끼지 않으니 말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많은 대립과 갈등을 안고 있다. 포르테, 목소리 큰 사람들이 지배하고, 피아노, 약한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약한 것과 강한 것이 서로 공명하면서, 젓가락의 두 짝처럼 짝을 이루는 그 정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다. 공동체 만들기는 힘들다 해도, 너와 내가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짝 만들기는 잘했는데, 요즘은 그 짝 문화가 사라졌다. 그게 없으면 하프시코드나 클라비코드처럼 강약 없이 단조로운 음밖에 연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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