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청와대’는 잘못된 개념… ‘청와대 정부’ 혁파해야 성공”
  • 김종일·구민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1 10:00
  • 호수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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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靑 정책실 폐지하고 인사수석 권한 대폭 축소해야”

“청와대가 지닌 집중된 권력을 내려놓고 원래의 기획과 조정의 역할을 담당하고, 대신 각 기관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의 분권적인 통치가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공저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에서 이렇게 글을 마무리 지었다. 강 교수는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청와대로 집중되는 ‘권력의 독점’을 민주화 이후 재임한 여러 대통령이 겪은 최대 실패 요인으로 꼽았다. 1987년 이후 우리의 대통령 대다수가 청와대에 권력을 집중시키고 책임지지 않는 소수에 의한 폐쇄적 의사결정과 집행을 반복함으로써 정책 실패와 권위의 손실을 가져왔다는 진단이다.

왜 강 교수는 대통령의 첫 번째 성공 조건으로 ‘청와대 정부의 혁파’를 꼽는 걸까.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강 교수를 찾았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윤석열 인수위의 첫 번째 의제가 ‘청와대 이전’이 되는 모습이다. 

“청와대를 통한 통치를 바꾼다는 일종의 정치적 제스처로 옮기는 거라면 괜찮다고 본다. 다만 청와대 이전보다 청와대 규모와 역할 축소가 핵심이다. 특히 본질적으로 국정 운영을 원래 헌법이 정한 대로 시스템에 맞게 돌아가게 만들어주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청와대 이전이 너무 빠르게 결정된다는 우려도 있다.

“그동안 대선에서 이긴 당선인들의 결정이 후임 대통령을 고려하지 않는 식으로 이뤄진 게 많다. 대통령의 공간은 분명히 필요하다. 청남대처럼 대통령이 쉴 곳도 필요하다. 지금의 청와대가 가진 공간적 기능도 유사시를 위해 남겨두는 게 좋다. 그런데 지금 당장 본인이 필요 없다고 후임자를 생각하지 않고 청와대를 없애버리는 건 옳지 않다. 아울러 당선인 측에서는 ‘국민에게 청와대를 돌려준다’고 말하는데, 돌려받기를 원하는 국민이 많을지 잘 모르겠다. 이게 지금 논의해야 할 최우선 의제일까.”

‘일하는 청와대’가 잘못된 개념이라고 했는데. 

“통상 청와대로 불리는 대통령비서실은 말 그대로 대통령의 역할을 보좌하는 기구다. 비서실이 국정 운영 전반을 주도하면 각 기관의 자율성은 약화되게 된다. 일반 회사를 생각해 보자. 삼성전자에서 비서실이 생산관리도 하고, 연구도 하고, 수출을 얼마 할지를 다 결정하는 게 말이 되는가. 똑같다.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이 핵심 의제, 주요한 정책 결정을 내리는 걸 보좌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처음부터 직접 전면에 나서 다 하겠다고 하면 국정 시스템이 제대로 안 돌아가게 된다. 국정은 국무회의를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 이야기다.”

문재인 정부는 어땠다고 보나.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국정을 다 담당하려고 했다. 그래서 국정 운영이 헛돌았다. ‘청와대 정부’가 되면 모든 공무원이 청와대만 바라본다. 장관은 ‘패싱’된다. 관료들이 청와대 의중만 살핀다. 코드에 맞춰 정책을 짠다. 부처가 가진 오랜 경험과 노하우, 여러 연구기관에서 나오는 정보와 판단이 다 무시되는 것이다. 그렇게 합리성은 무너지고 정책은 실패하게 된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같은 대재앙이 대표 사례다.”

청와대가 기획과 조정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집중된 권력을 내려놓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우선 단임제 대통령이 5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야 한다. 대통령 5년 임기는 그리 길지 않다. 따라서 제한된 임기 내에 너무 많은 일을 벌이거나, 지나치게 야심 찬 프로젝트를 추진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분명하게 제한된 목표를 설정하고, 정책 추진의 우선순위와 중요성을 대통령이 미리 정해 두는 게 중요하다. 즉 대통령이 한계를 인식하고 임기를 맞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이제 막 시작하는 새 정부는 귀담아듣기 어려운 이야기다.

“현 정부 5년을 되돌아보자. 문 대통령은 어느 때보다 강력한 대통령이었다. 취임 직후엔 야당이 탄핵 사태로 사실상 무너져 있었다. 이후 지방선거에서 압승했다. 총선에선 180석을 얻었다. 언론 환경도 유리했다. 사실상 모든 걸 다 갖고 있었다. 그런 막강한 문 대통령이 5년 동안 무얼 남겼나. 정책적 유산을 떠올려보면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대통령이 5년간 할 수 있는 일을 미리 정해 놓지 않으면 실제 성과를 내기가 매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동안은 대통령이 일상의 모든 걸 다루려고 했다. 그러니 효과도 없고 정책적으로 남는 것도 없었다.”

선거 공약을 다 지키지 말라는 도발적 주문도 내놨는데. 

“이번 대선에서 거대 담론은 제기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공약이 무엇이냐’고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탈모 공약’ 하나를 답하더라. 선거에선 당선이 최고 목표다. 득표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것도 공약으로 내놓는다. 실제 그 공약을 추진하게 될 때의 비용이나 부작용은 일단 뒷일이다. 이번에는 더 극심했다. 그러니 선거 공약을 굳이 다 지키려 하지 말고 원점에서 새로 고민하라는 얘기다.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나누고, 그중에서도 우리 여건을 고려했을 때 지금 가장 시급한 게 무엇인지를 전문가들을 활용해 다시 고민해야 한다. 지금 인수위 기간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

청와대 인사수석의 역할 제한을 주문했다.

“청와대 인사수석실은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됐다. 당초 취지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계속 인사가 문제가 되니까 우리가 제대로 검증해 보자는 거였는데, 조직이 점점 커지고 권한도 같이 늘어나면서 장관과 차관뿐만 아니라 부처 국장, 과장 인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기업과 정부 투자기관 인사까지 휘둘리고 있다. 낙하산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지 않나.”

인사수석 역할을 줄이면 대안은 무엇이 있나.

“청와대의 과도한 인사 개입은 각 기관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해치고, 공직 임명의 공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가진 가장 중요한 자원인 행정부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청와대 인사수석이 담당하는 인사의 범위를 고위 공직자를 중심으로 처음부터 명확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행정부 각 부서를 포함한 각 기관의 인사권은 장관을 비롯한 기관장에게 일임해야 한다. 인사수석은 정무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해야 하는 매우 제한된 자리에만 인사를 하고 나머지는 못 하게 만들어야 한다.”

정책실장직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와대 정책실은 행정부처의 옥상옥 같은 역할을 했다. 정책실 강화는 곧바로 부처의 자율성과 기능 약화로 이어진다. 인사 개입뿐만 아니라 구체적 정책 수립과 추진도 청와대가 직접 개입하기 때문이다. 정책에서 권한의 위임이 불분명해지고 그 과정에서 갈등과 대립이 일어나기도 한다. 2018년 있었던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간 갈등이 대표적 예다. 무엇보다 관료들이 청와대 눈치를 보게 되기 때문에 폐지되는 게 맞다. 그래야 관료들이 합리적 판단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선출된 권력’이 관료를 뜻대로 끌고 가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 비서실은 정책 현안을 주도할 직제 라인에 위치해 있지 않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 조직이다. 참모 조직이 정책 추진을 담당하는 부처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국정의 실천은 그 역할이 부여된 행정부를 통해 수행돼야 한다.”

그래도 누군가 정책을 조율해야 하지 않을까.

“맞다. 정책실장직을 폐지하고 비서실장이 정책 조정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거 비서실장은 각 부서 간 이견을 조정하고, 비서실 내의 입장 차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런 기능을 정책실장이 차지하면서 비서실장 역할이 정무적인 것으로 축소됐다. 안보실장이 생겨나면서 비서실장의 역할은 더 애매해졌다.”

그럼 안보실도 폐지해야 한다고 보나.

“국가안보 기능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청와대 안보실장은 NSC 위원장을 맡게 됨으로써 외교, 국방, 안보, 통일 분야와 관련된 사실상 대부분의 정책을 일상적으로 담당하는 권한을 갖게 됐다. 외교, 안보, 대북 관련 이슈는 국가안보실이 독점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실제 정책 집행의 책임을 맡은 외교부, 통일부 등의 부서가 핵심 정보의 공유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 현 정부에서 ‘외교부 패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외교안보 사안에 대해 NSC는 정책 총괄 조정의 핵심적 기구가 돼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안보실의 주요 업무는 NSC를 통한 외교안보 정책 총괄 조정, 그리고 대통령의 참모 조직으로서 역할에 국한돼야 한다. 이 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 한마디로 청와대가 틀어쥔 권한을 다시 일선 부서에 돌려줘야 한다.”

현재의 여소야대 정국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야당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노태우 정부 당시가 지금의 정국 구도와 상황이 비슷했다. 당시 노 대통령이 야(野) 3당의 공격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 대통령으로서 거부권도 많이 행사했다. 여기서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당시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이후 국회에서 집권여당이 야 3당과 협의해 4당 합의로 통과를 이끌어낸 경우가 있다. 1989년 12월 지방자치법이 대표적이다. 이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향후 야당과의 정치력이 발휘돼야 한다. 또 노태우 대통령은 당시 야당 대표와 자주 만났다. 영수회담을 많이 했다. 대통령은 야당과 계속 접촉해야 한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책임을 미루면 안 된다. 야당이 결국 바라보는 건 대통령이고, 대통령과의 직접 소통이기 때문이다.”

향후 정치권이 이것만은 꼭 했으면 하는 의제가 있다면.

“다당제로 가는 길을 열면 좋겠다. 이번엔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 다시 위성정당을 만들 수 있는 지금의 선거법을 계속 안고 가지 않을 거다. 민주당도 약속했다. 국민의힘이 받는 일만 남았다. 다음 총선에서 꼭 국민의힘이 다수당이 될 거란 보장은 없다. 만약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다면 나머지 3년도 강력한 야당 아래 국정이 운영된다. 그 리스크를 안는 것보다는 2~3개 야당을 만들어 협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좋을 거다. 그리고 이게 지금의 정치 양극화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조치라고 본다. 국가 행정 시스템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국가의 역할이 무엇이고, 국가와 사회 간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지 새 정부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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