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론] 이 놀라운 사람들
  •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5 17:00
  • 호수 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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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시작하는 건 이성일 수 있지만, 전쟁을 지속시키는 건 광기다.”

내가 소설 《흉터와 무늬》에 쓴 문장이 생각나는 요즘.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의 광기를 제압하지 못하면 인류에게 대재앙이 닥칠 것이다. 나토가 우크라이나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지 않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만 약속하는 동안, 마리우폴(Mariupol)엔 매일 10분 간격으로 폭탄이 떨어져 인구 43만 명의 아름다웠던 항구도시가 잿더미로 변했다.

러군 탱크 포격에 불길 치솟는 우크라 마리우폴 아파트ⓒAP연합
러군 탱크 포격에 불길 치솟는 우크라 마리우폴 아파트ⓒAP연합

러시아의 미사일 폭격으로 전쟁 개시 4주 만에 400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피란을 떠나야 했다. 혼자 피란하는 어린아이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한 손에 커다란 짐을 들고 비틀거리며 걸어가던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사히 국경을 넘었을까?

“하늘을 닫아달라!(Close the sky!)” 아니면 전투기라도 보내달라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간절한 호소를 서방은 끝내 외면하려나. 미국이 제안한 해외도피를 거절하고 키이우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대통령, 우크라이나 국민의 용기와 낙천주의에 나는 감탄했다.

러시아 탱크를 손으로 막아서는 노인, 침공이 임박했는데도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거리에서 국가를 연주하는 오데사 시민들, 해외유학을 중단하고 폴란드 국경을 넘어 (피란민들과 반대 방향의 버스를 타고) 귀국하는 젊은이들. 이 놀라운 국민을 보라.

이 놀라운 이웃들을 보라. 국경을 개방하고 난민들에게 집과 음식을 제공하는 폴란드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에 나는 감동했다. 이 놀라운 침략자를 보라.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대인 출신인데 우크라이나 정부를 ‘나치에 가까운 약물중독자들’이라고 비난하는 푸틴의 거짓말에 나는 질렸다. 20년간 러시아를 통치한 독재자의 선전선동에 속아 진실을 외면하는 국민. 베이징올림픽 여자 피겨 개인전을 앞두고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은 발리에바를 환영하려 모스크바공항에 나와 박수를 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이 나라 국민이 정상이 아님을 알았다.

최악의 인간과 최선의 인간들을 이 전쟁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마리우폴이 함락되었나, 키이우의 방어선이 무너지지 않았나, 걱정되어 텔레비전 켜기가 두렵다. 이것은 텔레비전으로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최초의 전쟁. 집에서 일하거나 잠잘 때를 제외하곤 BBC 혹은 CNN을 틀어놓고 사는 나로서는 뉴스를 볼 수도 없고, 보지 않을 수도 없다. 사과를 먹다 처참한 광경에 포크를 놓는다.

전쟁이 어서 끝나기를 바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페이스북에 들어가 ‘좋아요’를 누르고 영어로 댓글을 달았다. 3월4일에 “마크롱은 키이우에 가라. 인류평화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방문할 배짱이 있는 대통령은 없는가? EU 지도자들은 말만 늘어놓는다…우크라이나를 당장 EU에 가입시켜라(Let Macron come to Kyiv. Is there any president who have guts to visit Ukraine for the peace of mankind? The leaders of Eu just talk and talk…Let Uklaine join EU right now)”라는 댓글을 달았는데, 열흘 뒤인 3월15일 폴란드, 체코, 슬로베니아 3국 총리들이 키이우에 도착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다는 기사가 나왔다. 야호! 내 댓글을 보았구나. 본 게 틀림없어. 마리우폴 주민들을 대피시킬 묘책을 궁리해 또 댓글을 달았는데, 그건 비밀이라 공개할 수 없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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