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새 정부 유임설’ 김부겸 총리 “정계은퇴”…양평에 새 집 지어 전원생활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5 16:00
  • 호수 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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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근에 “이쯤 했으면 됐다…정계 은퇴한다” 밝혀
대구 집 처분하고 양평 땅 매입…전원생활 위한 주택 건축 준비

“내가 무슨 정치를 더 하겠나. 이제 이쯤 했으면 됐다.” 김부겸 국무총리(64)가 퇴임 이후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주변에 해온 말이라고 한다. 정계 은퇴 결심으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정치권에서 총리직은 더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겐 중요한 발판처럼 여겨지곤 한다. 총리직을 수행하며 얻은 인지도와 지지도가 밑거름이 돼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아니었음에도 퇴임 후 대선에 도전한 총리 출신 인사가 여럿이다.

선후가 다른 경우도 있다. 이미 대선주자로 거론되던 이들이 총리가 된 경우다. 이 역시 총리직이 정치적인 무게감을 이전보다 더 키워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김 총리가 바로 이 경우다. 그는 총리가 되기 전부터 여권의 대선주자 후보군으로 꼽혀왔다. 총리 임기가 끝나면 이제 꽃을 피워볼 수 있을 때였다. 그런 김 총리가 기회의 시간인 지금, 주변에 밝히고 있다는 정계 은퇴 결심은 다소 뜻밖이라는 평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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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5일 경남 창원시에서 열린 3·15 의거 기념식에 참석 하고 있는 김부겸 총리ⓒ연합뉴스

金 총리, 유임설에 “불가능한 일” 일축

최근 김 총리에게 관심이 쏠린 건 윤석열 당선인의 대선 승리 이후 떠오른 유임설 때문이다. 윤 당선인 측이 초대 총리를 새로 임명하지 않고 김 총리 유임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것이다. 직후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검토된 바 없다”고 부인했고, 총리실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지만, 180석 거대 야당을 맞닥뜨려야 할 차기 정부 입장에선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방법이며, 실현된다면 김 총리에게도 나쁘지 않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특히 김 총리는 평소 통합·공존·상생을 강조해온 정치인으로 보수진영에서도 호평이 상당하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총리이자 윤석열 정부의 초대 총리로 국론 화합에 기여한다면 정치적 입지를 더욱 키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김 총리는 단호했다. 그는 카타르 순방 중 직접 기자들과 만나 “개인이 협치의 상징이 되면 안 된다.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며 유임 가능성에 대해 일축했다. 마침 일각에선 그가 민주당 차기 당 대표 선거에 나선 뒤 차기 대선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김부겸 총리의 진짜 속내는 뭘까. 그가 어떤 사정과 상황에 있을지 궁금했다. 그의 가까운 지인 A씨에게 최근 그의 사정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예상 밖의 이야기가 돌아왔다. “김 총리가 총리를 퇴임하면 정계를 은퇴한다더라.” 총리 유임도 당 대표도 대권 도전도 아닌 정계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어 A씨는 직접 들은 김 총리의 퇴임 이후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풀어놨다. 경기도 양평에 전원주택을 지어 부부가 둘이서 소박하게 자연생활을 하면서 가끔 서울 나들이를 하는 삶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였다. 사실이라면 정말 정치권을 떠나겠다는 뜻을 확고히 가진 셈이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김 총리는 실제 A씨가 말한 계획대로 준비해 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계획 실행은 김 총리가 총리에 취임한 지난해 중순께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김 총리는 지난해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아파트를 처분했다. 대구는 김 총리의 정치적 근거지다. 경북 출신인 김 총리는 경기도 군포에서 국회의원 생활을 시작했지만, 3선을 한 뒤 대구로 지역구를 옮겼다. 2012년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2014년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으로 출마해 고배를 마셨지만, 2016년 총선에서는 대구 수성갑에서 기어이 당선됐다. 보수 텃밭인 TK 지역의 한복판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되는 대이변을 연출한 것이었다. 비록 2020년 총선에서는 낙선했지만, 그는 영락없는 ‘대구의 정치인’이었다.

그런 그가 대구의 자택을 처분한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미 대구 지역 정가에선 김 총리가 대구에서의 정치를 은퇴했다는 게 중론이라고 한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대구 집을 처분한 그가 비슷한 시기에 경기도 양평에 땅을 매입한 것이다. 지난해 5월 김 총리는 부인 명의로 양평군 강하면의 임야 약 178평(618㎡)을 1억9500만원에 매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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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총리가 지난해 매입해 주택 건축을 계획 중인 경기도 양평군 부지와 주변 풍경ⓒ시사저널 이원석

승효상, 본지 통화에서 “김 총리 주택 설계 중”

3월23일 기자는 해당 부지를 직접 찾았다. 서울에서 약 1시간15분, 양평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남한강변 도로를 10분 정도 달리면 나타나는 한적한 동네였다. 뒤로는 백병산이 마을을 품고 있고, 동네를 나서면 바로 앞에 남한강이 펼쳐지는 완벽한 배산임수(背山臨水)를 갖춘 곳이었다. 마을 곳곳에 새로 지은 전원주택들이 눈에 띄었다. 김 총리가 매입한 땅 역시 전원주택이 들어서면 딱 맞을 안락한 넓이의 공터였다.

취재에 따르면 김 총리는 실제 이미 주택 건축을 위한 의뢰를 마쳤다. 건축을 맡은 이는 유명 건축가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승효상 이로재 건축사사무소 대표다. 한창 주인 맞이 준비 중인 문 대통령의 양산 사저 또한 승 대표가 설계했다. 승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부겸 총리의 양평 땅 주택 건축을 맡고 계신 것이 맞냐’는 질문에 “맞다”며 “현재 설계를 하고 있고, 곧 짓기 시작하면 1년 내로 완공된다”고 설명했다. ‘김 총리가 총리 퇴임 후 정계 은퇴를 하고 그곳에서 살 것이란 이야기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엔 “그러한 부분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있고 더 이상은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지인 A씨는 김 총리의 퇴임 후 더욱 구체적인 계획까지 알고 있었다. 5월 문재인 정부가 끝나고 임기를 마치면 총리 공관에서 나와 당분간은 현재 계약돼 있는 서울 마포의 전셋집에서 지내다 12월쯤 양평에 주택이 완공되면 거처를 옮기려 한다는 것이다.

김 총리와 매우 가까운 정치인 B씨 역시 김 총리로부터 정계 은퇴 결심과 향후 계획에 대해 여러 번 들었다고 했다. 그는 비교적 상세하게 자신이 직접 듣고 느낀 김 총리의 속내를 전해 줬다. B씨는 “(김 총리) 본인이 ‘이제 이쯤 했으면 됐다’고 여러 번 얘기하더니 진짜로 대구 집을 팔아버리더라”며 “여러 번 말려보려고 했지만, 이미 완전히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굳은 결심의 이유는 뭘까. B씨의 전언에 따르면 김 총리는 ‘이제 정치를 그만할 나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김 총리는 주민등록상 나이로는 1958년생 64세지만 실제론 두 살이 더 많다. 출생신고가 2년 늦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 총리가 이 같은 얘길 하면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언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 총리와 이 대표의 부친은 경북고-서울대 동문으로 가깝다. ‘친구 아들’이 당 대표가 돼있는 셈이었다.

B씨는 “(김 총리가) ‘이제 물러나줄 때’라고 많이 얘기했다”고 말했다. 주변에선 김 총리를 말리며 같은 문재인 정부 총리 출신으로 나이가 더 많은 정세균(71)·이낙연(69) 전 총리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김 총리는 “그분들은 그분들의 정치가 있고, 나에겐 내 방식의 정치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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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5일 중소기업인 신년인사회에서 김부겸 총리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총리직이 공직자로서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

B씨는 “김 총리는 총리직을 공직자로서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사실 김 총리는 이미 지난해 5월 총리 청문회에서 이 같은 뜻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대선 출마에 대해 묻는 질의에 “(총리직이) 마지막 공직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일할 각오가 돼있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여기엔 총리직을 자기 정치에 활용하지 않으려는 의지도 있었다고 한다. B씨에 의하면 김 총리는 취임하면서 ‘자기 정치도 좀 하라’는 주변의 조언에 “대통령과의 의리가 있지 어떻게 나를 부각시킬 수 있겠나”라고 답했다고 한다. B씨는 총리 유임설과 관련해 “여러 상황상 절대 가능하지도 않고, 김 총리의 마음이 워낙 확고해 문재인 정부가 끝날 때 정치 인생을 마치겠다는 마음엔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총리실 역시 김 총리의 정계 은퇴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김보협 총리실 공보실장은 통화에서 “김 총리는 공개적으로도 마지막 공직임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고, 퇴임 이후로는 국민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기 위해 어떻게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공교롭게 김 총리와 매우 가까운 사이인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최근 정계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한때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에 몸담았다가 지난 2003년 탈당해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 창당에 합류한 김 총리와 김 전 장관은 동료들과 함께 ‘독수리 오형제’로 불릴 만큼 끈끈한 사이다. 차기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김 전 장관은 3월23일 입장문을 통해 “정치인의 생활을 청산하고 국민 속으로 돌아가려 한다”며 “다른 도전자들에게 기회를 넘겨주는 것이 옳지 않은가 생각했다.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정치를 해온 개인의 문제로 바라봐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일각에선 이들을 시작으로 윗세대의 정계 은퇴가 대거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정치인의 은퇴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 정계 은퇴를 하더라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황이 변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 민주당 관계자의 말이다. “후배들을 위하고 당을 위하는 선배들의 마음은 감사하면서도 더 당을 이끌어줄 훌륭한 선배들이 떠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크다. 그러나 정치인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국민 혹은 당의 부름에 따라 결국 결정되는 것이기에 언제든 또다른 선택의 순간이 올 수도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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