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김황식 “尹 당선인, 민주당 인사도 장관에 임명해야”
  • 대담=전영기 편집인 / 정리=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2.04.01 16:00
  • 호수 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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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식 전 국무총리 “청와대 용산 이전, 국민 설득 선행됐어야…아쉬운 대목”
“文 대통령의 ‘알박기’식 인사, 국민에 예의 아냐”
“정치·행정 경험 없는 당선인, 총리 역할 매우 중요해”

소통, 통합.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3월30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반복한 단어다. 자신이 총리 시절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태도이기도 하다. 작게는 삼청동 공관 앞을 지키던 경찰이 한겨울에 떨지 않게 소초를 개조해준 것부터, 크게는 국민 앞에서 울어주던 따뜻한 모습으로 기억되는 소통의 지도자가 김 전 총리다. 

김 전 총리는 윤석열 새 정부의 가장 큰 과제가 통합이라고 봤다. 구체적으로 “민주당 인사도 장관에 임명”하는 통합정부 구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대선 직후 논란이 된 청와대 용산 이전 문제와 관련해선 “취지는 좋을지 모르나 제대로 논의하고 진정성 있게 소통해 국민들을 설득하는 절차가 선행됐어야 했다고 본다”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김 전 총리는 정치 지도자의 덕목에 대해 관심이 많다. 2013년 공직에서 물러난 뒤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독일 정치를 공부하고 돌아온 경험으로 올해 독일 총리들의 정치 리더십에 대해 쓴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1》을 출간했다. 독일 총리 대다수는 ‘존경받는 독일인’ 여론조사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국민으로부터 매우 존경받는다. 그 이유는 뭘까. 김 전 총리는 국익을 위해 정치적 희생까지 감내하며 일을 추진했던 독일 총리들의 정치적 리더십을 ‘거룩한 몸부림’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한국의 대통령 또한 이처럼 거룩한 몸부림을 쳐야 성공하는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시대정신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새 정부, 윤석열 당선인의 가장 큰 과제일 텐데요.

“국민통합, 사회통합입니다. 지역, 이념, 성별, 세대, 노사 등 우리 사회 갈등이 곳곳에 존재하는데 이걸 잘 통합, 조정하는 게 정부의 역할입니다. 정치권과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이전 정부들의 통합 노력이 미흡했고, 오히려 더 심화시키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국정과제에 통합을 우선순위로 두고 모든 정책을 그 목적이 실현될 수 있는 쪽으로 염두에 두고 실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 윤 당선인과 문재인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신구 권력이 인사권을 놓고 벌인 갈등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전에도 임기 말에는 현직 대통령이 인사권 등에 대해 자제했습니다. 꼭 임명이 필요하다면 후임과 협의해서 하는 좋은 관례가 있었습니다. 언론에 나오는 대로 ‘알박기’식 인사를 하면서 신구 권력의 갈등으로 국민에게 비치는 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입니다.”

법관 출신 국무총리로서 소통·통합하는 모습으로 존경받으셨습니다. 윤 당선인도 검찰이라는 사법기관 출신으로 최고위 정치 지도자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됐는데 조언해 주신다면요.

“소위 사법기관은 위법 여부를 판단합니다. 거기엔 정무적인 판단이 개입해선 안 됩니다. 하지만 행정은 다릅니다. 위법해서도 안 되지만, 더 나아가 이게 타당하냐 부당하냐 하는 것까지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선 정무적 판단을 해야 하고, 일선에선 합리적으로 재량적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국민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 그리고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공직 사회를 경직되지 않게 이끌어가는 그런 노력들이 필요한 겁니다.”

검사로서의 법과 원칙에 대한 신념,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정무적인 판단 사이에서 충돌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물론 통치의 기본은 법과 원칙입니다. 그러나 법과 원칙에 따라 모든 것을 해결한다면 아주 차가운 사회가 될 겁니다. 제가 총리에 취임할 때 강조했던 게 법과 원칙, 그리고 소통과 화합이었습니다. 법과 원칙을 따르더라도 충분히 듣고 소통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치는 것입니다. 나누고 배려하는 정신도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총리일 때 전북 전주로 가려 했던 토지공사와 경남 진주로 가려 했던 주택공사를 토지주택공사(LH)로 합치는데, 그렇다면 어디로 갈 것이냐의 문제로 전북과 경남이 그야말로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당시 법과 원칙에 따라 방침을 정하면 30분 만에 진주로 가야 한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하지만 바로 결정하지 않고 좀 더 숙성하고 소통하는 시간, 논쟁의 장을 열고 신중하게 충분한 절차를 거치며 소통하고 화합하는 시간을 갖도록 했습니다. 전주를 위해선 토지공사와 규모가 비슷한 국민연금공단이 가도록 했고요.”

윤 당선인에게 필요한 건 소통이나 갈등 조정, 이런 부분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자기 생각에 결론이 났더라도 사회적으로 논의, 성찰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장애인 시위와 관련해 이야기가 많은데, 이 대표의 말도 일리가 있을 수 있지만, 대화하고 마지막까지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거죠.”

최근 윤 당선인의 청와대 이전 문제와 관련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벗어나려다 오히려 제왕성을 띠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지는 좋을지 모르나 제대로 논의하고 진정성 있게 소통해 국민을 설득하는 절차가 선행됐어야 했다고 봅니다. 아쉬운 대목인데 윤 당선인으로선 좋은 학습 기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독일 총리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자격과 역할에 대해 ‘거룩한 몸부림’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핵 배치에 대한 ‘이중 결정’을 하면서 국회에서 불신임됐고,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하르츠 개혁을 하면서 지지 기반을 잃고 정권을 넘겨줬습니다. 독일 총리들이 국가 이익과 장래를 위해 정말 심사숙고하고, 그 실현을 위해선 경우에 따라 정치적 희생까지 하면서도 국익을 위해 노력했던 모습들에 대해 참 거룩한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가 우리 대통령에게 적용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거룩한 몸부림을 치는 자세로 일을 해줬으면 합니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정치적 희생이나 자기 것을 내려놓고 그야말로 절실하게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사에 주목이 많이 됩니다. 새 정부에서 총리의 역할은 어때야 한다고 보십니까.

“솔직하게 지금까지 총리들이 크게 역할을 못 하고 심지어 대독 총리, 방탄 총리 이런 비아냥을 받는 애매한 위치였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윤 당선인의 경우 정치나 행정 경험 없이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총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시점입니다. 총리가 되는 분은 지금까지의 총리들과는 다른, 더욱 중요한 역할이 있고, 반드시 그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의 지시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좀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일을 하려고 하는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새 정부에선 총리가 인사권 등에서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결국 윤석열 정부가 성공하는 길은 최고의 실력자로 내각을 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타협해 누구 자리 하나 끼워주고, 누구 배려해 주거나 이런 게 아니라 진짜 실력 있는 팀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순간 대통령 지지율은 60% 이상 될 거라고 봅니다. 근데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을 뽑은 뒤 그 사람들에게 권한을 대폭 위임해 줘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역할을 줘야 합니다. 제가 MB(이명박) 정부에서 총리일 땐 그런 책임을 갖고 결정의 주체로서 일을 많이 했습니다. 대통령이 그런 공간을 만들어줬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책임이 넘어오면 창조적으로 일하게 됩니다.”

통합형 총리냐, 경제형 총리냐 하는 논의 등이 거론됩니다. 어떤 쪽이 맞다고 보십니까.

“둘을 꼭 분리해서 볼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통합이 돼야 경제도 발달합니다. 총리가 꼭 경제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제부총리가 있으니 충분히 경제에 대해 역할을 할 것이고, 서로 협의해 간다면 괜찮다고 봅니다.”

통합형 총리로 본인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합니다.

“(웃음)여러 가지 여건상 제가 이 시대정신엔 안 맞는다고 봅니다.”

172석 민주당이 거대 야당이 됐습니다. 윤 당선인이 일을 해야 할 텐데 일각에선 제왕적 국회 문제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민주당이나 보수정당이나 큰 차이는 없습니다. 보수정당도 과거 자기들이 다수일 때는 다수의 힘으로 모든 걸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보수나 진보 가릴 것 없이 국익 중심보다는 당의 이익을 중시한 것입니다. 대화와 타협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위해선 협치 정신으로 가야 합니다. 근데 머릿속으로만 협치를 하자고 하면 불가능합니다.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독일 같은 경우가 선거제도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을 통해 서로 대화와 타협을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사람 개인, 정치에만 맡길 게 아니라 시스템을 그렇게 정비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대통령의 역할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번 선거를 계기로 국민이 많이 낙담하고 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바꿔야겠다는 노력이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 있을 거고 국민도 기대를 하고 있을 겁니다. 대통령의 역할 중 하나는 그런 계기, 분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통합정부를 구성하는 겁니다. 합리적인 정치인들도 민주당에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정치를 해나간다는 협치의 정신으로 정부를 구성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당 인사들도 장관 자리 등에 임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민주당 인사나 민주당이 추천한 사람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다면 그 아래에서의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정치보복이란 얘기가 나오지 않을 겁니다.”

김 전 총리는 자신의 저서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1》에서 ‘무릎 꿇은 총리’로 유명한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외교장관 시절 나치 당원 출신을 기용하기도 했다는 점을 소개하며 이렇게 평가했다. “브란트는 과거를 묻어두거나 역사로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미래에 초점을 맞춰 통합을 활용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부분도 있습니까.

“지금과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가능한 권력구조를 변경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임기 초기에 개헌 논의의 장을 열도록 해준다면 여의도에서 개헌에 관한 논의가 이뤄질 겁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문제는 어떻게 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사면하지 않겠습니까. 과오가 있지만 가혹한 형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황식 전 총리는 누구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다. 880일간 총리직을 수행하며 문재인 정부의 이낙연 총리가 기록을 깨기 전까진 1987년 직선제 이후 역대 총리 중 가장 장수했다. 총리로선 드물게 ‘명재상’이란 평가가 붙기도 한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현장을 자주 찾았고, 공무원들로부터도 신임이 상당했다. 정치적으로도 진영을 가리지 않고 합리적 인사로 평가된다. 1948년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태어났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노무현 정부였던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대법관을 역임했고, 이명박 정부 초대 감사원장으로 취임했다. 2010년 총리로 발탁돼 880일간 일했다. 현재는 삼성의 호암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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