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친명?…민주당 주류 교체, 8월에 승부 갈린다
  • 송종호 서울경제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02 14:00
  • 호수 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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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전당대회 등판 기정사실화 분위기
곧 돌아올 친문 핵심, 본격 경쟁 예고

더불어민주당 새 원내대표에 3선 박홍근 의원이 당선되면서 당내에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대선에서 석패하면서 민주당 주류가 친문(文)에서 친명(明)으로 빠르게 교체되는 게 아니냐는 분석에서다. 이 전 지사가 1614만 표를 얻은 민주당의 유일무이한 ‘상징자본’을 갖춘 인물이라는 점에서 당내 질서가 이 전 지사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당이 위기 상황을 맞을 때마다 이 전 지사가 ‘호출 0순위’가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는 상황에서 이재명계가 민주당의 새 주류세력으로 거듭날 것이란 얘기다. 박 의원의 원내대표 당선이 ‘사실상 이재명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아직은 원내 지도부에 국한된 상황이다. 새 정부 출범 후 20여 일 만에 치러지는 6·1 지방선거는 주류 교체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박 원내대표가 국민의힘과의 협상에서 어떤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지방선거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협치를 하면서도 172석 거대 야당의 힘으로 새 여당을 리드할 경우 8월 전당대회에서 친명계는 당권까지도 거머쥘 가능성이 높다. 차분히 주류 교체에 나선 친명계를 견제하는 것은 기존 당내 주류 친문. 전해철·황희·박범계 의원 등이 당으로 다시 돌아오는 8월 전당대회는 민주당의 주류 교체 대전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22대 총선 전까지 윤석열 정부와 거대 야당의 관계 설정의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국회사진취재단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가 3월2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참배를 마친 뒤 방명록을 작성 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2년 전과 달라진 친명계 위상

이번 원내대표 선거는 친명계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는 결과였다. 21대 국회 첫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명계의 맏형인 정성호 의원은 9표를 받았다. 이 전 지사가 19대 대선 경선에 참여해 사이다 발언으로 지지율을 상당히 높였고, 경기지사로서 차기 유력 주자로 이미 떠오른 상황에서도 친문은 견고했다. 당시 원내대표 당선자는 친문을 자처했던 김태년 의원. 이어 4·7 재보궐 선거 참패로 당 쇄신 목소리가 뜨거웠던 지난해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친문 윤호중 현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선됐다. 당시 ‘도로 친문이냐’는 비아냥까지 들었지만 주류 친문의 아성은 공고했다. 이번 대선 패배 후에도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인 윤 의원이 비상대책위를 맡아서는 안 된다는 당내 반발에도 친문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친문이자 이낙연계인 박광온 의원이 원내대표로 유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친명계 박홍근 의원의 승리. 사실상 계파 대리전이나 다름없었던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문·이낙연계’가 패배하고 ‘이재명계’가 승리한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이재명계 핵심 그룹인 ‘7인회’와 ‘박원순계’ 및 ‘더좋은미래(더미래)’ 등을 사로잡으며 승리했다. 을지로위원장으로 오래 일하며 조직을 닦아왔던 점도 승리 비결 중 하나였다.

박 원내대표에 대한 기대감은 대여 강경 노선에 있다. 원내대표 선거가 있었던 3월24일 한 초선 의원은 “청와대 이전 문제나 여성가족부 폐지 등 윤석열 당선인과 국민의힘이 승리에 도취해 국민 여론은 안중에 없다”며 “국민의힘을 견제할 국회의 힘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박 원내대표에 대한 지지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 원내대표 후보군 가운데 박 원내대표는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당선 수락연설에서도 “개혁과 민생을 야무지게 책임지는 ‘강한 야당’을 반드시 만들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박 원내대표의 행보는 조금 다르다. 무엇보다 원내 지도부를 탕평인사로 꾸려 강성 일변도만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진성준 원내 운영 수석부대표와 박찬대 원내 정책 수석부대표 인선이 대표적이다. 각각 친문과 친명 대표의원을 투톱으로 내세워 당내 소통과 대여 투쟁 강온 전략을 병행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특히 7인회 소속으로 사무총장을 맡았던 김영진 의원이 사의를 표명하고 그 자리에 김민기 의원이 임명됐다. 김민기 의원은 계파색이 옅다. 지방선거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장에는 김태년, 전략공천관리위원장에는 이원욱 의원이 자리했다. 정세균계 의원까지 포함한 탕평인사는 싸우기만 하는 민주당이 아닌 잘하는 민주당으로 지방선거를 치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박 원내대표는 3월29일 “대선 공약 추진단 구성을 국민의힘과 윤 당선인에게 제안한다”며 “여야가 입을 모았던 대선 공통공약을 미룰 이유가 없다”고 했다. 협조할 것은 협조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발신한 셈이다. 민주당이 협치에 물꼬를 트며 정국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점에서 노련한 한 수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전해철·황희·박범계…돌아오는 친문

결국 새 정부 출범에 협조하면서 견제 능력을 발휘할 경우 지방선거에서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당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 새 정부 출범 20여 일 만에 치러지는 지방선거가 구도상 불리하지만 윤 당선인에 대한 낮은 지지율로 여론이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게 내부 판단이다.

박 원내대표 역할에 따라 지방선거에서 주요 광역단체장을 석권할 경우 이재명계는 8월 전당대회에서 본격적으로 당권 경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를 다지기 위한 방편으로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 김동연 경기지사 후보 차출론도 나온 셈이다. 송 전 대표는 이번 대선에서 이 전 지사와 호흡을 맞춰 ‘부상 투혼’까지 선보인 이재명 호위무사로 평가되고 있고,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 역시 단일화 과정에서 이 전 지사의 든든한 우호세력이 됐다.

이에 따라 이 전 지사의 8월 전대 조기 등판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 대선 이후 1~2년 휴식기를 가진 뒤 당권에 도전했던 문재인 대통령과 같은 행보를 걸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대장동 이슈 등 검경의 칼날이 바로 이 전 지사를 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권 도전에 빨리 나설 것이라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이재명 당 대표로 가는 이재명계의 큰 그림의 일환이라는 해석이다.

물론 주류 교체가 쉽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전해철·황희·박범계 의원 등 자타 공인 친문 의원들이 내각에서 당으로 돌아오면서 당권 경쟁에 뛰어들 경우 8월 전당대회는 민주당의 친명·친문 간 총력 투쟁의 장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지난해 당 대표 선거에 나섰던 친문 홍영표 의원까지 가세할 경우 당권 경쟁은 더욱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이 된다.

문제는 전당대회 이후다. 경선을 거쳐 대선 기간에도 이재명계와 이낙연계 간 앙금이 완전히 희석되지 않은 상황에서 8월 전당대회는 갈등의 용광로가 될 수 있다. 과거 국민의힘 친이(이명박)계와 친박(박근혜)계 간 갈등이 보수 붕괴를 가져왔던 것과 같이 민주당 내부에서 권력다툼이 극심해질 경우 분당으로까지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악하는 측과 실패하는 측 모두 상대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웃는 쪽은 국민의힘이다. 여소야대 국면을 해소할 마땅한 돌파구가 없는 현실에서 민주당 내부 갈등이 분출할 경우 국민의힘의 정계개편 시계는 초침이 돌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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