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천영우 “국정원, 대북정책에서 손 떼고 정보기관 역할에 충실해야”
  • 김종일·구민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16 14:00
  • 호수 1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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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정부 외교·안보 컨트롤타워, 靑 비서진 아닌 내각이 중심 돼야”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4월11일 서울 종로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새 정부가 국정 운영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청와대 조직과 직제를 ‘슬림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 이사장은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국정 운영의 중심은 청와대가 아닌 내각이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국정원 개혁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천 이사장은 “국정원은 대북정책 결정에 손을 떼고 정보기관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며 “장관급인 국정원장 직급 역시 차관급으로 조정해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임준선

새 정부의 외교·안보 컨트롤타워는 어떻게 정비돼야 할까. 

“차기 정부는 우선 청와대 직제의 슬림화와 함께 국가안보실 조직을 대폭 축소하고 안보실장의 직급도 장관급에서 차관급 외교안보수석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 한 명의 수석 밑에 3~4명의 비서관을 둔 옥상옥의 현행 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이 보좌 체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청와대 비서진의 계급이 높으면 대통령에게도 약보다는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내각 중심의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게 된다. 비서실이 책임지지 않는 사실상의 내각이 되고, 내각은 실권도 없이 책임만 지는 허수아비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관급 실장이 열심히 대통령을 보좌하겠다고 과욕을 부리다 보면 정부조직법이 장관에게 부여한 권한을 침해할 수 있고, 내각은 자발성과 책임 의식을 상실하고 무력해지기 쉽다. 다만 외교안보수석은 직급을 낮추더라도 비서실장의 통제를 받지 않고 매일 최소한 30분 정도는 대통령을 독대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조언할 부분이 있다면.

“대통령의 참모들은 대개 대통령에게 먼저 전화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따라서 대통령은 외교안보수석과 국방장관이 심야에도 먼저 전화로 보고하는 데 불편을 느끼지 않을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전시에 작전통제권을 행사할 한미연합사령관은 미국 대통령의 부하인 동시에 대한민국 대통령의 부하이기도 하므로 대통령이 연합사령관의 대면 보고를 받는 관행도 만들어둘 필요가 있다.”

위기관리의 컨트롤타워는 누가 돼야 하나.

“위기관리에는 대통령과 총리 간에 적절한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자로서 국가안보와 관련된 위기에 집중하고, 국내에서 발생하는 재난과 안전사고에 대응하는 책임은 총리에게 전적으로 위임하는 게 좋다. 대통령이 총리 직속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을 겸임하려고 하면 더 엄중한 국가안보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응에 집중력과 순발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진다.”

국정원 개혁을 주장한다.

“국정원 조직은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는 정책과 정보를 겸업하는 것이고, 둘째는 원장의 직급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정보기관이 정책과 정보를 겸업하는 것은 정보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해친다. 정책을 결정하거나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정보기관은 정보기관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정보기관장이 정책에 관여하고 정책에 대해 의견이나 입장을 갖게 되면 정보가 정책 목표에 맞게 선별, 가공, 왜곡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정보 선진국들이 정보기관의 정책 수립 참여를 제도적으로 금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국정원장의 직급은 왜 문제가 되나.

“국정원장의 직급을 장관급으로 한 것도 군사독재 시대의 잔재다. 국정원장 밑에는 3명의 정무직 공무원이 있다. 대통령과 집권 세력에 대한 충성심을 기준으로 임명되는 정무직 공무원이 4명이나 되는 조직은 정치적 중립을 유지할 수 없고 필연적으로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면하기 어렵다. 국정원장의 직급을 경찰청장과 같은 차관급으로 조정하고, 국정원장이 대북정책 결정에 개입하고 대북 협상에 나서는 것을 금지하는 게 답이다. 이런 개혁은 대통령의 결단 없이는 불가능하다.”

통일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까. 

“통일부의 업보에도 불구하고 폐지하는 것보다는 국정원의 대북정책 조직을 흡수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기회를 주는 것이 최선이다. 통일부를 폐지하더라도 현재 통일부가 수행하는 업무 자체를 모두 폐지할 수는 없고 정부 내의 어느 조직으로 업무를 이관할 것인지의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대북정책 조직을 통일부가 흡수해야 하나.

“국정원의 대북정책 관여는 주무 부처인 통일부의 대북정책 영역을 침범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 사실상 두 개의 통일부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상 두 부처는 대북정책을 두고 경쟁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보와 인력이 많은 부처가 정책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국정원은 가치 있는 대북 정보를 통일부와 공유하는 데 인색하다. 국정원이 대북정책의 단맛에 도취돼 여기에 가장 유능한 직원들을 투입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잘 준비하는 간부가 출세하는 조직으로 전락하면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통상 기능을 두고 부처 간 경쟁이 있다.

“새 정부는 외교부의 조직과 기능을 확대 개편할 필요가 있다. 정부 수립 이후 외교부가 맡아오던 통상교섭 업무를 박근혜 정부가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로 넘겨준 것은 큰 실책이었다. 통상교섭본부가 산업부 소관 업무와 가장 연관성이 많다는 착각을 근거로 졸속으로 결정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통상 외교의 위축만 가져왔다.”

근거는 무엇인가.

“통상교섭본부가 다루는 핵심 현안은 농림축산식품부 영역인 농산물 교역과 검역제도, 국토교통부 소관의 자동차 안전 기준, 보건복지부의 의약품 인증제도, 법무부 소관의 법률시장 개방 및 지식재산권 등 산업부 본연의 업무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통상교섭본부가 산업부에 편입된 이후 통상 외교가 사실상 실종되고 인재들이 떠나는 원인을 규명해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와 유사한 처지에 있는 캐나다, 호주 등 중견국가들이 외교와 통상교섭을 통합한 사례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경제안보가 외교의 핵심 과제로 부상한 시대에 통상교섭은 외교와 일체화돼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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