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무게에 함몰되지 않았던 ‘영웅’의 이야기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01 11:00
  • 호수 1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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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장애인의 성장 스토리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혈우병 환자의 수명이 일반인보다 크게 짧은 건 아니에요. 죽을 만큼 아플 때는 많아도 실제로 죽기는 쉽지 않죠. 이렇게 어른이 되는 것이죠. 그럼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파서 잠이 안 오니까 더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약이 거의 듣지 않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사례에 해당하는 중증 A형 혈우병으로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었던 소년. 2013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는 단 하루도 다닌 적 없이 집과 응급실을 왕래하며 10대의 7년을 보낸 그 소년은, 2019년 여름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했고, 2020년 봄 고졸 검정고시를 패스했다. 2020년 여름 국내에 번역된 적 없었던 J R R 톨킨의 책 《끝나지 않은 이야기》 번역 원고를 탈고해 출판사에 넘겼다. 역시 같은 해 12월 수능을 보고 서울대학교 입시에 도전해 합격했다. 겉으로 보기엔 단 1년 만에 서울대생이 되고 번역가가 됐다. 그의 이름은 박현묵이고, 2022년 현재 스물셋 청년이 되었다.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강인식 지음│원더박스 펴냄│276쪽│1만6000원

박현묵씨의 아픔, 강인식 기자가 풀어내

중증 장애인 박현묵씨의 이야기를 한 방송사에 재직 중인 강인식 기자가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라는 제목으로 풀어냈다. 강 기자가 박씨의 주치의와 똑같이 감탄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박씨의 긍정적 사고와 놀라울 정도의 단순함, 바로 낙천성이었다고 한다. 이런 평가에 대해 박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일단 낙천적으로 생각하면 어쨌든 멘털에 유익하잖아요. 그래서 저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있고요. 어머니께서 저한테 ‘내가 옛날에는 네가 아프게 태어나서 되게 슬프고 힘들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 정도부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마음가짐을 바꿨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런 얘기를 꽤 여러 번 하셨는데요. 잘은 몰라도 그 얘기가 좋더라고요. 그때부터는 확실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는 가치관이 정립된 것 같아요.”

한번은 박씨가 너무 아파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을 가야 했다. 거의 정신을 놓을 정도로 아픈 날이었는데 박씨는 어머니를 올려다보면서 “엄마, 걱정하지 마라, 나 안 죽는다”고 말했다. 신약이 효과가 있었던지 아프지 않은 박씨는 ‘최강’이었다. 번역가로 이름을 올리고, 고졸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대입 수험생이 된다. 서울대 입시전형에 제출할 추천서를 쓴 주치의 김준범 교수는 박씨에 대해 “본 추천인이 경험한 많은 인연을 통틀어 가장 위대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한 사례”라고 언급한다.

강 기자는 ‘박현묵 스토리’가 ‘장애인의 인간 승리’로 소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 책은 난치병을 가진 한 10대 소년이 스물두 살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 언제든지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비극 속에서 그 비극의 무게에 함몰되지 않고 그 위에 떠있을 수 있는 유연함을 잃지 않았던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공부란 본질적으로 어떤 행위인지, 어떤 태도를 통해 완성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에 추천사를 쓴 이는 박현묵을 진정한 영웅이라고 추켜세운다. 강 기자는 박현묵이라는 ‘영웅’을 만든 건 그를 둘러싼 인연들이라는 것을 확인시킨다. 일방적인 도움이나 배려가 아니라 상호 작용과 반작용을 통한 ‘임팩트’가 지금의 박씨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설명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떠올리게 하는, 5월은 어린이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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