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원전산업에도 민간방식을 도입할 때”
  • 이종호 전 한국수력원자력 기술본부장 (jhleeyy@naver.com)
  • 승인 2022.05.01 14:00
  • 호수 169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망친 원전산업, 윤석열 새 정부는 민간기업 참여시키길”
“기회 열린 원전 수출에서도 주도권 다툼...한전·한수원 체계 일원화해야”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불거진 에너지 위기를 볼 때 에너지 산업의 중요성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도 없다. 국제 에너지 가격 폭등은 지난 1월 기준으로 14년 만에 처음으로 두 달 연속 무역적자를 초래했으며, 4월20일까지 누계 무역적자도 91억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한전은 올 1분기에만 LNG 구입으로 지난해보다 2배인 10조원을 지불했으며 영업적자도 지난해 총 적자(5조8000억원)를 뛰어넘는 7조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에너지 문제가 국가경제의 근간이 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2021년 12월29일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현장을 방문해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각 재개 등 원자력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체감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

다행히 윤석열 새 정부는 탄소중립, 경제적인 에너지 공급 및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를 조화롭게 가져가는 에너지 정책을 표방했다. 그에 따라 최근 인수위원회는 신한울 3, 4호기 건설 조속 재개, 운영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원전에 대한 계속운전 추진 및 왜곡돼온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독립성 확보와 전문성 강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정부 5년 동안의 탈원전 대못 박기로 다 죽어가고 있는 원전산업 생태계를 살리는 조치로 환영할 일이다. 새 정부가 추구하는 ‘원전 최강국 건설’은 단순히 몇몇 실행계획의 변경만으로는 실현되기 어렵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시스템과 관행이 시대에 맞게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에 따라 원전산업 변화방안 몇 가지를 제시하려 한다.

첫째, 현재의 원전산업 체계를 원전 수출에 적합한 체계로 개편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는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 폴란드, 체코,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를 비롯한 전 세계 국가들이 원전의 추가 건설 및 신규 건설을 추진하고 있거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더욱이 국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영국, 체코, 핀란드 등 유럽 국가 대부분은 중국, 러시아의 참여를 배제하고 있어 결국 미국, 프랑스, 한국 등 3국이 경쟁하는 원전시장이 되었다. 다시 원전 수출을 달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그런데 원전 수출을 위해 우리의 경쟁 상대인 프랑스, 미국은 여러 차례 시대에 맞게 자국의 원전산업 체계를 변경해온 반면, 우리의 현 원전산업 체계는 40년 전, 1980년대 원전기술 자립을 위해 구성된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으로 기관 간 혼선만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으로 원전을 수출하는 기관이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으로 이원화돼 있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한수원은 2000년대 초, 이미 안전성이 개선된 제3세대 신형 원전(APR1400)을 건설하고 있음에도 한동안 한전은 제2세대 원전(OPR1000)을 외국에 마케팅하고 있었다든지, 유럽 진출을 위한 유럽형 원전 개발, 영국 원전사업 참여 및 UAE 사업의 역할 분담 등에서 양 기관이 시너지보다는 불협화음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후속 원전 수출의 조속한 실현을 위해 공약에 제시된 것과 같이 원전 수출체계를 일원화하고 시대에 맞게 산업체계를 개편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에너지 복지를 희생시키는 기관 이기주의나 보신주의는 버려야 할 것이다.

둘째, 원전산업 활성화를 위해 민간기업 참여가 필요하다. 현재 국내 원전사업 및 원전 수출은 한수원이 주도하고 한전기술, 한전원전연료 등 공기업과 기기 제작 및 시공에 두산에너빌리티(전 두산중공업)와 현대, 삼성 등 대형 건설회사, 그리고 여러 중소·중견 기업이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결국 한수원의 계획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면 최근, 새롭게 미래 먹거리로 부각되는 SMR(중소형모듈원전)사업에는 여러 기업이 앞다퉈 참여하고 있다. 일찍이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최초로 SMR 설계인가를 받은 뉴스케일파워(NuScale Power)사에 투자하고 있으며,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초소형모듈원자로 기술 보유업체인 미국 USNC에 지분 투자하고 올해 캐나다 초크리버 지역의 실증 플랜트 건설에 착수할 예정이다. 그 외에 삼성중공업은 덴마크 시보그(Seaborg)사의 부유식 해상원전사업 참여를, SK그룹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설립한 SMR 제조사 ‘테라파워’에 지분 투자를 검토하는 등 국내 기업이 봇물처럼 SMR사업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국내에서 사업을 수행할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SMR 시장 주도권을 외국 기관에 빼앗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석탄, LNG 등 화석연료 발전사업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것처럼 원자력 발전사업에도 민간이 참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원자력산업이 활성화하고 지속 가능하게 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중소형원자로 산업에서 외국 기업에 주도권 빼앗겨

셋째, 첨단기술로 이루어진 원전산업의 경험과 전문성이 중시되어야 한다.

원전산업은 무엇보다도 안전이 최고로 우선시되는 산업으로 다양한 첨단과학기술이 모여 이루어진 복합과학기술 산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오히려 전문성이 무시되는 경향을 보였다. 물론 원전 부품 비리 사건으로 원전력업계가 지탄받은 것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이러한 경향은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정부는 원전산업 기술개발계획을 수립·추진해 왔으나 자주 담당자가 바뀌는 정부 특성상 2012년까지의 계획(Nutech-2012)이 종료된 이후 2019년까지 공식적인 원전산업 기술개발을 수립하지 않았다. 요즘 부각되고 있는 혁신형중소형모듈원전(iSMR)도 이미 2012년 제안되었지만 최근까지 사장되다 이제야 겨우 계획에 반영됐다. 결과적으로 2035년까지 390조~620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SMR 시장 선점의 기회를 놓쳤다. 또한 2011년 전후 우리나라 원전의 10년 평균 이용률을 살펴보면 이전의 92.3%에서 이후 76.5%로 무려 15.8%나 떨어졌다. 미국의 경우에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이전보다 원전 이용률이 상승했다. 한국에서 전문성보다 정치가 우선된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원자력은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및 에너지 경제성 확보의 중요한 수단으로 국가 지속 성장의 기반이다. 이제 국민의 미래만 바라보는 원전산업 시스템과 관행의 시대적 혁신을 새 정부 탄생에 기대해 본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