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워킹 시대, 고객에 앞서 직원 섬겨라”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05.30 12:00
  • 호수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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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개리 데이비스 영국 MBS 명예교수 “종업원 신뢰(Trust) 높은 회사, 이듬해 매출 24% 증가”

“10년 전만 해도 유럽에서 한국의 위상은 크지 않았다.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일본 기업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현재 한국 제품은 프리미엄 이미지가 생겼다. BTS로 대표되는 K팝과 손흥민의 K스포츠, K푸드 등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의 브랜드 가치도 크게 높아졌다.”

5월25일 방한한 개리 데이비스(Gary Davies) 영국 맨체스터 경영대학원(MBS) 전략경영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는 브랜드 마케팅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분야에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리복과 브리티시 에어, 소니, 드비어스 등 쟁쟁한 기업의 자문을 맡았을 정도다. 한국과도 인연이 많다. 현재 KODIA(한국유통학회) 명예 평생회원이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면서 기술 변화가 심해지고 있다”면서 “기업들은 고객의 관점에서 비즈니스를 다시 바라볼 때가 됐다. 그게 바로 마케팅이다”고 강조했다.

최근 몇 년간 계속된 감염병 사태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속화시켰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되면서 재택근무나 원격교육 등이 일상화됐다. 최근 코로나 확산이 주춤해졌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과거로의 회귀를 주저한다. 출근과 재택근무를 겸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개리 데이비스 교수는 이 현상을 ‘하이브리드 워킹(Hybrid Working)이라 말한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영국 CEO들은 하루 두 번 대면회의를 하면 됐다. 지금은 줌으로 열 번 회의를 한다. 일의 품질이나 양은 오히려 증가했다”면서 “하이브리드 워킹 시대에 맞춰 기업들도 전략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개리 데이비스 교수는 ‘하이브리드 워킹’ 시대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종업원의 역할을 꼽는다. 그는 “유통업체의 평판에 영향을 미치는 3대 요소는 품질(Quality)과 정직(Honesty), 즐거움(Fun)이다. 이 중 즐거움은 고객과의 접점에 있는 종업원의 행동이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만큼 억지로 짜낼 수 없다”면서 “고객뿐 아니라 종업원과도 회사가 충분히 교감해야 한다. 회사와 종업원 사이에 신뢰(Trust)가 있다면 매출 증가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있다”고 강조했다.

시사저널은 5월25일 서울 용산 시사저널 사옥에서 진행된 개리 데이비스 명예교수와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대학 교수의 대담 내용을 정리해 게재한다.

5월25일 용산에서 개리 맨데이비스 맨체스터대 명예교수(왼쪽)와 서용구 숙대 교수가 대담을 하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5월25일 용산에서 개리 맨데이비스 맨체스터대 명예교수(왼쪽)와 서용구 숙대 교수가 대담을 하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서용구(이하 서): 영국은 작년 8월부터 마스크를 벗었다. 한국은 지금부터 벗으려 한다. 저희 입장에서 교수님은 미래에서 온 사람이다.

개리 데이비스(이하 개리): 영국은 1년 전에 엔데믹을 선언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영국 내에서 백신을 개발하면서 전체 인구의 70%가 2차 접종을 일찍 마무리했다. 집단면역에 다가가면서 보리스 존슨 총리 역시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굉장히 합리적인 의사결정이었다. 정치인의 리더십과 국민 소통, 기술 개발이 합쳐진 결과물이라고 보면 된다.

: 한국은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하는 것만으로도 우려가 나온다. ‘위드 코로나’ 정책을 먼저 시행한 영국의 경제 상황은 어떤가.

개리: 각종 수치로 볼 때 경제는 코로나 19 이전 상황으로 상당 부분 회복했다. 프리미어리그 경기장은 매번 티켓이 완판될 정도로 북적인다.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 초·중·고교는 모두 정상수업으로 돌아갔다. 일상의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업의 경우 3일 출근하고 2일 재택근무를 하는 ‘하이브리드 워킹’이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 ‘하이브리드 워킹’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다. 이 하이브리드 워킹으로 퍼포먼스가 더 좋아졌다고 생각하는가.

개리: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나타난 새로운 기업 트렌드가 ‘하이브리드 워킹’이다. 영국에서는 현재 재택근무로 인한 일의 ‘퀄리티 논쟁’이 한창이다. 관련해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영국 기업의 CEO는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하루 두 번 대면회의를 했다. 지금은 줌으로 열 번 이상 회의를 한다. 옆 사무실을 방문해 2분 정도 빠르게 논의하던 때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출근과 재택근무를 병행하는 방식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트렌드가 됐다. 공기업이나 금융원은 5일 출근을 요구하지만, 사기업은 2~3일만 출근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영국의 항공 대기업인 버진애틀랜틱항공의 경우 직원들에게 대면근무와 재택근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하이브리드 워킹’은 향후 기업 업무의 새로운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본다.

: 기업 트렌드가 바뀐 만큼 마케팅도 달라져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개리: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영국은 현재 세대 간 갈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나이가 있는 임원들은 서면 보고를 선호한다. 엑셀 프로그램보다는 계산기를 더 편하게 생각한다. 반대로 젊은 직원들은 이메일과 같은 디지털 보고를 선호한다. 이런 과도기적 상황에서 무조건 ‘혁신’이나 ‘변화’만을 외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젊은 세대와 실버 세대를 아우르는 투트랙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일례로 코카콜라는 1985년 제조 방식의 변화를 꾀했다. 이른바 ‘New Coke’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얼마 안 가 실패로 막을 내렸다. 미국인들의 경우 코카콜라를 과거로부터 내려온 하나의 유산으로 인식했다. 변화에 대한 고객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던 게 실패의 원인이었다. 영국의 국적 항공사였던 브리티시 에어웨이(British Airways)도 민영화 과정에서 비행기 꼬리 날개에 새겨진 국기를 제거했다가 소비자들의 반발로 원상 복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묻지마’ 혁신이나 마케팅을 고집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5년 후 성공할 확률은 10%도 되지 않는다. 기업 상황에 맞는 마케팅이나 CSR(사회적 책임) 활동을 강화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 교수님께서는 유통이나 서비스 기업의 CSR 활동을 틈날 때마다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고객과의 접점에 있는 종업원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개리: 영국의 에너지 회사인 브리티시 가스(British Gas)를 예로 들어보자. 20년 전만 해도 브리티시 가스는 영국 내에서 나쁜 브랜드였다. 고객들도 싫어했다. 현재는 영국 내에서 최고의 유틸리티 기업으로 평가된다. 그 이유는 직원들과 회사의 관계, 직원과 고객의 관계 때문이다. 이 회사 직원들은 자신들을 단순 고용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객과의 접점에서 회사를 대표하는 ‘앰배서더(ambassador)’라고 믿는다. 에너지 공급 회사니만큼 가정을 방문할 때가 많다. 이 과정에서 아픈 사람을 발견하면 직접 당국에 신고한다. 현장에서 소외 계층이나 문제 가정을 발견하고 돕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이 일종의 CSR 활동이다. 회사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이런 활동을 드러내놓고 홍보하지 않지만, 직원들의 자부심이 커지면서 브랜드 가치 역시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5월31일 시사저널 주최로 열리는 ‘컨퍼런스G 2022’에서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유통이나 서비스 업체의 평판에 영향을 미치는 3대 요소는 품질(Quality)과 정직(Honesty), 즐거움(Fun)이다. 품질이나 정직은 고객 응대를 위한 당연한 요소다. 즐거움은 얘기가 다르다. 서비스의 최전선에 있는 종업원의 행동이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만큼 억지로 짜낼 수 없다. 단순히 종업원 만족도를 높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고객뿐 아니라 종업원과도 회사가 충분히 교감해야 한다는 뜻이다. 회사와 종업원 사이에 신뢰(Trust)가 있다면 매출 증가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맨체스터대 비즈니스 스쿨(MBS)의 연구에 따르면 회사에 대한 종업원의 신뢰가 높을수록 이듬해 매출이 24%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교수님께서는 대담하는 내내 신뢰(Trust)를 강조했다.

개리: 기업 운영에서 ‘신뢰’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회사와 주주, 회사와 고객, 경영진과 직원 간에 신뢰가 있어야 회사는 성장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대기업에 비해 자금이나 마케팅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 이 신뢰가 더 중요하다. 최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이 영국과 중국의 종업원 10인 이하 소기업에 대한 마케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조사 대상 기업 중 상당수가 자신들이 얼마나 능력 있고 유능한지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정 부분 맞는 얘기다. 하지만 잘못 대처할 경우 제품이 비싸다는 이미지를 고객에게 심어줄 수 있다.

소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은 달라야 한다. 기업의 유능함과 신뢰도를 강조하는 것은 맞지만, 고급 시장이라 말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소비자들의 경우 웹사이트에 접속하고 2~3초면 기업의 신뢰성 여부를 판단한다. 이런 소비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

: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의 브랜드 마케팅도 중요하다. 유럽에서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브랜드 위상은 어떤가.

개리: 10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한국의 위상은 높지 않았다. 남한과 북한을 구별할 수 있는 유럽인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 글로벌 기업도 한국보다 일본 기업일 것이라는 인식이 많았다. 불과 10년 만에 이런 이미지가 180도 바뀌었다. 한국 제품은 프리미엄이란 인식이 심어졌다. 현재 영국에서 내가 운전하는 차는 기아 브랜드고, 휴대폰은 삼성 갤럭시다.

단순히 제품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BTS로 대표되는 K팝이나 손흥민·지소연 선수가 활동하는 프리미어리그, K푸드와 K방역 등이 상승 효과를 내면서 한국의 위상을 크게 변화시켰다. 영국에는 현재 한국 음식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슈퍼마켓 체인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나도 요리를 좋아해 불고기를 직접 만들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름이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언론에 오르내렸다. 이제는 대다수의 영국인이 남한과 북한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 또한 대단한 변화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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